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Sep 24. 2024

별다방 붙박이 그 손님

스타벅스에서 만난 뜻밖의 글쓰기 자극제

별다른 작업실이 없어 각 잡고 글을 써야 할 때는 집 근처 스타벅스를 종종 이용한다. 1층은 테이블이 3개뿐이라 주문 후 기다렸다가 완성된 음료를 받아 들고 2층으로 향한다. 음료가 쏟아지지 않게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다 중간층에서 한숨 돌리는 척하며 고개를 돌려 오른쪽 창가 일자 테이블 중간 자리를 확인하는 습관이 언젠가부터 생겼다. 통창 가득 쏟아지는 자외선 때문에 얼굴이 탈지 걱정되기도 하고 테이블 폭이 좁아 불편해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자리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그 자리를 확인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언제나 ‘별다방 붙박이 그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점심, 늦은 오후, 저녁까지 언제 가든 ‘그 손님’은 그 자리에 있다. 많이 쳐도 나이는 20대 중후반, 통성명을 한 적도 없다. 주로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등이 살짝 굽은 뒷모습만 기억할 정도지만 그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언젠가부터는 별다방 매장 안에 굳이 들어가지 않고, 인근을 지나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그 손님이 있는지 확인하는 상태가 됐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거의 매일 그곳에 있는 걸까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전철역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 그 별다방이 있다.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길 건너편에서 매장 2층을 올려 봐도 늘 그가 있다. 덥수룩한 머리에 톨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얼음컵에 담긴 생수 한 잔을 오른쪽에 놓고, 이어폰을 낀 채 까만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일주일에 2~3번은 그 별다방에 가고, 일주일에 5일 이상은 그 근처를 지나는데 평균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늘 그 자리에 있다. 주말도 연휴도 없다. 이보다 성실한 노동자는 없다. 내가 클라이언트나 오너라면 특별 보너스를 주고 싶을 만큼 열정적이다. 그를 둘러싼 숫자들을 깨닫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 그 손님의 존재감은 점점 선명해졌다.


디지털 노마드인가?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공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라고 보기에는 묘하게 결이 달랐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독하게 고독해 보인다는 점이다. 폭우가 내리는 날도, 태풍이 오는 날도, 대설경보가 내려도 무뚝뚝한 장승처럼 그 손님은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SNS 채팅은 몰라도) 통화를 하거나 누군가와 함께인 적도 없다. 늘 홀로 고독한 작업을 한다.     


대체 뭘 그리 열심히 하는 걸까? 호기심이 발동해 계단을 오가며 조심스러운 눈으로 흘깃 관찰했다. 그가 뚫어져라 보는 모니터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달랐다. 노트북 모니터를 세로로 3 분할 한 왼쪽에는 오래된 TV 예능 동영상이나 드라마가 재생되는 중이고, 가운데는 빼곡한 메모장, 그리고 오른쪽에는 빈 작업 창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내용은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모니터에 열어둔 텍스트 전용 창 툴을 봤을 때 웹 소설을 쓰는 게 아닐지 추측할 뿐이다. 어떤 장르인지, 활동명이 뭔지, 어느 플랫폼에서 활약하는지 알 순 없다. 세세한 전후 사정이나 구체적 사연은 몰라도 저렇게 쓰는 사람은 뭘 해도 하겠다 싶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쓰는 사람. ‘별다방 붙박이 그 손님’은 그런 사람이다. 통성명도 해 본 적 없는 사이지만 ‘별다방 붙박이 그 손님’을 볼 때마다 나태해지는 마음을 바짝 조이게 된다. 모니터 안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 목을 길게 빼고 토독토독 타자 치는 모습을 보면 쓰기 싫어 배배 꼬던 몸을 풀고 척추를 딱 세우고, 힘 없이 흐느적거리던 손끝에 힘을 팍 주고 키보드를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두드린다. 장르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겠지만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얄팍한 동지애와 은근한 경쟁심이 자랐다.      


포기는 쉽고, 결과 얻기는 어려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 쓰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지 쓰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의 꾸준함을 보며 무소음 물개박수를 보낸다. 글쓰기 싫은 이유 101가지 정도는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 랩으로 읊을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일부러 별다방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붙박이 그 손님’을 멀리서 훔쳐보며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는다. 스타벅스에서 찾은 글쓰기 자극제를 시원하게 마시고(!) 정신 차린 후 다시 글을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