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국판이 상대적으로 준수한 작품이었어요.
지난 주말엔 한일 양국에서 만든 영화판으로서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두 편을 차례대로 보았다. 교통정리 차원에서 설명하자면, 먼저 일본에서 원작이라 할 수 있을 시가 아키라의 소설이 출간되었고, 이후 나카다 히데오의 연출로 영화판이 개봉되었고, 현재까지 이 작품의 후속편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베이스로 천우희, 임시완 배우가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가 최근 공개되었다. 연출은 김태준 감독. 첫 데뷔작인데 필모를 보이 여러 작품들에서 연출부 담당이었던 모양이다.
줄 세우기를 하자면, 결과적으로 한국판이 양호하다. 피의 낭자함과 더불어 촌스럽지 않은 연출로 끈적하지 않게 관객을 덜 민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쪽에 손을 들어야겠다. 남국의 휴양 시즌 음악 등을 깔며 위악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본판의 의도는 알겠지만, 어쨌거나 촌스러운게 사실이다. 한국의 여러 장르 영화들이 그동안 서툰 충돌을 통해 그래도 성장했음을 이런 비교우위로 새삼 확인하게 된다.
언뜻 최근 2편을 개봉한 [서치]처럼, 모바일 디바이스와 스마트 플랫폼으로 삶의 범위와 풍경이 달라진 동시대 구성원을 대변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자신을 쇼윈도에 전시하며 우월감으로 만족하는 계층들, 벤처 붐의 몰락 이후 스타트업 생태계로 경력을 쌓는 젊은 구성원들, 사이버 해킹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호소를 쌓으며 서비스의 살집을 채우는 이들, 그 틈새 어딘가의 허점에서 기생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까지.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근간인 스마트폰을 통한 삶과 소비의 풍경을 캐치한다.
그러다 보니 실상 캠페인 같은 어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도 우려되는 작품이었고, 실제로 일본판이 그렇다. 소설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인물에 관련된 비극은 경제적 위기와 빚, 신분 세탁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같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전체적인 극의 해법은 온건한 사랑이니 다소 맥이 빠지는 구석이... 한일 공히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악행과 제약 없이 치닫는 광기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음에도 집중력은 일본 쪽에선 빠진다.
한국판의 임시완은 지난 [비상선언]에 이어 이번에도 자신의 손아귀에 쥔 패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의 숨통을 훼손하는 악인을 연기하는데, 어쨌거나 불쾌한 존재로선 유감없는 기량을 발휘한다. 일본판의 모성 탓, 한국판의 부성 탓 양쪽 모두 변명은 있는데, 관람하는 이들의 부릅뜬 안구와 꽉 쥔 주먹을 벌겋게 만들겠다는 심산 정도는 채워준다. 그 성패의 차이는 확연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