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레비(木漏れ日)」1.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드는 햇살 조각」
내 하루가 망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침에 하루의 다짐 같은 걸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잠들기 전에 한다.
내일은 열 시 전에 일어나서 남은 반죽으로 김치전 해 먹고 샤워하면서 아끼던 써니 칵테일 향 스크럽도 해야지. 가볍게 논문 두 편 읽은 다음에 설거지하고 예정보다 일찍 나가서 카페에서 캐러멜 라테도 살 거야. 텀블러 챙겨가야겠다. 학교 가서 강의 듣고는 바로 집 가지 말고 연구실에서 발표 자료 만들어야지. 거기서 할 일 다 끝내고 집에 와서는 옷 갈아입고 씻고 저녁으로 불닭볶음면 먹으면서 지난번에 보다가 만 ‘백만 엔 걸 스즈코’를 봐야겠다. 그리고 꼭 열두 시 전에는 자는 거야.
그러고는 열 시 전에 일어나는 것부터 실패한다.
기상에 실패하면 그다음부터는 허둥대는 것의 연속이라 당연히 줄줄이 실패한다. 아침에 하루의 다짐을 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서두르느라 다짐할 시간도 없고, 애초에 아침에는 잘 일어나 있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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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어제는 계절학기를 들으러 학교에 간 김에 강의가 끝나고 부실에 들렀다.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로 도예 부에 들어갔는데, 내가 만든 그릇들이 초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실에 있던 사람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내 그릇을 찾아왔다. 집에서 채색할 생각으로 룰루랄라 역으로 향하는데 이런, 기껏 챙겨온 텀블러를 부실에 그새 두고 온 것을 알았다. 역에서 부실까지는 걸어서 20분. 더운 날 다시금 오르막을 올랐다.
그런데 이럴 수가. 부실 문이 잠겨있었다. 그새 부실에 있던 사람이 집에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학교의 모든 부실 열쇠는 학생과가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열쇠를 빌려오면 된다고 생각하며 학생과 건물로 향했다.
말도 안 돼. 학생과 건물은 방학 동안 오후 다섯 시까지 운영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다섯 시 일 분이었다.
머리가 멍청하면 개고생하는구나 한탄하며 다시 역으로 향했다. 갈아타는 구간에서는 다음 전철을 타기 전에 배가 고파 치킨을 하나 시켜 먹었다. 600엔짜리 치킨이 뭐라고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개찰구를 통과하니 때마침 전철이 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내리는 사람들 틈으로 뛰어 전철에 올라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을 때, 반대 방향을 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기만 해도 삶이 벅차다. 나를 데리고 사는 건 꽤 힘들다. 바보력을 몸으로 때울 체력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당연히 없다. 운동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새벽 두세 시까지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내일은 아침 열 시에 일어날 것이라는 다짐을 또 한다. 나는 지키지도 않는 다짐을 꾸준히 하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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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으로 나는 일주일에 망한 날이 다섯 번 넘게 있다(물론 내 기준으로).
망한 날의 루틴은 대략 이렇다.
열한 시 반에 늦잠 잔 것을 깨닫고 일어난다. 알람을 여섯 개나 맞춰두었는데 왜 못 일어나는 건지 생각하며 초스피드로 샤워한다. 콘플레이크를 우유에 말아 흡입하고 동시에 화장을 한다. 충전기며 아이패드며 책이며 대충 가방 안에 다 때려 넣고 쓰레기봉투를 챙겨 집을 나온다. 그러면 이어폰, 텀블러, 우산 중 뭐 하나 까먹은 게 가는 길에 생각난다. 쓰레기를 내놓고 역으로 달린다. 겨우 전철에 올라서는 한숨 잔다. 환승역 개찰구 안에 있는 카페에 가서 아무 음료나 라지 사이즈로 시키고 땡볕에 강의동까지 걸어간다. 오늘이야말로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겠다 다짐하지만 중간부터 심심해져 친구들에게 라인을 보낸다. 수업이 끝나면 기력이 다 빠져 연구실은 패스하고 집에 간다. 그때는 꼭 집에서 공부하면 되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상 심리로 끝내주는 저녁을 시켜 먹고 빔프로젝터로 영화나 유튜브를 보다가 혈당 스파이크로 잠든다. 다시 깨어나면 밤 열 시고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그때부터 하루를 망쳤다는 죄책감에 되지도 않는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꼭 배고파져서 밤 열두 시에 감자튀김을 튀겨먹든지 만두를 삶아 먹든지 한다. 코코아도 한 사발 타서 들이킨다. 전혀 졸리지 않지만 지금 안 자면 다음 날 정말 위험할 것 같은 시간에 억지로 잔다.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꼭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자제력이라는 걸 자주 옆집 강아지한테 선물로 준다. 옷은 죄다 한철에만 입을 싸구려에,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바뀌는 추구미 탓에 옷장 안이 중구난방이다. 집에는 잡동사니가 늘어가고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인 사이트를 뒤진다.
나는 일본인에게는 한국어를, 한국인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가끔 선생님이나 센세-하고 불리면 흠칫 놀란다. 선생은 먼저 선에 날 생을 쓰니 먼저 태어나 본받을 점이 있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내 학생들은 모두 나보다 어른이고 사회인으로서 훌륭히 1인분을 해내고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번 돈으로 제2외국어를 나와 성실히 배운다. 나는 그 덕분에 집세를 낸다. 딱 40만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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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가게가 보이면 스크래치 두 장을 산다. 한 장에 200엔, 두 장이니 400엔. 보통 가장 낮은 금액인 200엔 정도는 한 번씩 나오던데. 나는 운이 더럽게 없는 건지, 게으른 삶에 신이 분노하고 있는 건지 죽어도 안 나온다. 그래도 복권에 당첨되는 꿀팁은 일단 복권을 사는 것이라 하니까. 복권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당첨될 일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10엔짜리 동전으로 마구 긁는다. 당첨되지 않은 것들은 쓸모를 잃은 채 다이어리에 붙여진다.
작년 9월부터 쓴 내 다이어리는, 영수증이나 티켓처럼 버리는 걸 까먹어서 가방 안에 처박아 두었던 것을 모조리 풀로 붙여놨더니 지금 어마어마하게 뚱뚱해졌다. 일기는 일주일, 이주일치를 한꺼번에 몰아서 쓴다. 지난번에는 다이어리를 몰아 쓰려다가 휴대전화 캘린더의 일정이 모조리 날아갔다. 누군가는 내 다이어리를 보고서 복권 수집하냐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왜인지 모를 재미 부심이 생겨서 이모에게 내 다이어리 웃기니까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이모는 그래도 다이어리인데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이건 괜찮다고 말했다.
“아, 이건 남이 읽어도 괜찮은 일기구나.”
맞다. 남이 읽으면 안 되는 일기는 따로 있다. 거기엔 망한 ‘날’에 대한 기록이 아닌, 망한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 있다. 망하기는 싫은데, 망했다는 이야기는 왜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을까.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따뜻한 것과 똑같다.
그리고 나는 줄곧 ‘남이 읽으면 안 되는 일기’가 ‘남이 읽어도 괜찮은 일기’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도 부끄럽거나 후회스럽지 않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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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그 일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발밑에도 우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중학교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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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꼭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친구가 모조리 없어졌었다.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사라졌다. 그 아이와 단둘이 걸어가던 하굣길에는 육교를 건너기 전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에 끼인 넓은 골목이 있었다. 그 골목 양옆으로는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 있어 한낮에도 해가 들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나는 웃고 떠드느라 종일 앞이나 그 아이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믿고 싶다.
사이가 멀어진 걸 처음 안 것은 그 아이가 자신의 다른 친구들을 우리 둘만의 하굣길에 데려왔을 때부터. 내가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인 그 아이를 보며 집까지 조용히 걸어가고는 했었다.
나중에는 간신히 끼어 있던 그 하굣길 무리에서도 튕겨 나와 혼자 집에 갔다. 앞을 보거나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며 걷던 골목을 땅만 쳐다보고 지났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엄청 큰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줄로만 알았다.
이후로는 다 말하지 못할 괴로움이 있었다. 학년이 바뀌고 엄마가 학교에 연락을 해주어서 겨우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과 다른 반이 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미움을 받으러 성실히 학교에 나갔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그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 친했는데, 나한테 왜 그랬냐고. 그 대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엄마가, 네가 집에 놀러 온 날이면 항상 그래. 너는 다리가 얇은데 왜 나는 두껍냐고.
싫을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나 비교당하면 기분 좋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살면서 많은 비교를 당하며 지냈다. 그럼 내가 밉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철이 없을 수도 있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 지 모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하는 편이 납득하기 쉬울 것 같았다.
3년간 그 골목길을 지나다 고등학교는 결국 그만뒀다. 1년 동안은 무엇도 제대로 못 해낸 채 방에 박혀 있었다.
친구가 없었고 자신이 없었고 곧은 마음도, 사랑도 없었다. 쫄쫄 굶은 사람처럼 영혼이 메말라갔다. 난 내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느꼈다. 그건 일주일에 망한 날이 다섯 번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하루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검정고시를 치러 가던 날, 또는 기절해서 머리에 커다란 혹이 난 날에 난 그 아이를 떠올려야 했지만, 그 아이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잠들지 못하고 우는 밤마다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옆 아파트가 생각났다. 현관문을 두드리고 괴로워해도 가시지 않는, 네가 다녀간 이후로 그렇게 망해버린 나에 대해 불친절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그 아이는 다 모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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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어느새 지나있었고 그동안 나는 어두운 줄로 알았던 골목 바닥에,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로 햇빛 조각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는 고개를 한껏 치켜올리지 않아도, 깜깜한 밤이 오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우주가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는 도마뱀 같은 것이 되고 싶었다.
계속해서 작은 빛을 쐬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무늬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룩덜룩하게 햇살이 묻은 도마뱀이 되어서 길바닥에 숨어 있고 싶었다. 실수로 밟을 수는 있어도 일부러 죽이려 들지 말라고, 울었다.
가끔은 그 아이를 완전히 미워할 수 없어서 슬펐다. 꿈처럼 비현실적이지만 우리에게도 분명히, 서로가 좋았고 서로를 위했던 나날이 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 되어줄 것이라고 상상하면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입체적이라는 것을 처음 안 기분이었다.
미워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데 다들 잘도 했구나 싶어서 놀랍기도 했다.
그 아이와 친구들에게는 후에 사과를 받았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던 마음도 서서히 없어졌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사과를 받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내게 정말 큰 잘못 또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것을 충분히 반성하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어딜 가든 모두가 나를 싫어할 줄 알았다.
그게 실은 아니었다니! 다들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랬다니!
나도 사랑받으며 지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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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혼자 살게 된 열아홉 살 때는 친구가 물리적(거리상)으로 없었다. 심지어 코로나와도 겹쳐 학원과 고시원만을 오가며 생활했다.
항상 이거나 저거나 별반 다르지 않은 추레한 옷을 입고서 책을 잔뜩 넣어 20킬로가 된 가방을 멘 채 대형 쇼핑몰이나 술집 거리를 지났다. 낮에는 놀러 나온 학생들이, 밤에는 술에 취한 청춘들이. 그 거리는 언제고 사람이 많아서 까딱하다가는 밟혀서 납작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외로운 마음에 본능적으로 코모레비를 찾았다. 그 안에 들어가 숨고 싶었다. 숨어서 영영 누구에게도 안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1년간 꾸준히 땅만 보고 걸어 다녀도 그곳에는 거의 그늘이 없었다. 드리워봤자 빌딩 숲이 일구어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고시원에서 학원까지의 길바닥에는 유흥업소 전단지가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길게 흩뿌려져 있었다. 그 투박함에 덤덤해지기까지도 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웃기게도 내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갈 힘이 있는 건지, 고집이 있는 건지 딱 하루 지낼 만큼의 의지가 매일 가난하게 샘솟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