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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Oct 24. 2018

일본 오사카의 네코리퍼블릭에 가다

살처분 당하는 고양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고양이공화국 <네코리퍼블릭>

일본 칸사이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위치한 고양이 빌딩


 <네코리퍼블릭>(Neco Republic, ネコリパブリック)(http://www.neco-republic.jp). 2016년 5월 22일에 오픈한 이 곳은 총 5층 건물로 1층은 인포 데스크와 굿즈 그리고 고양이 에이즈라고 불리는 FIV에 감염된 고양이들이 보호되어 있고 2층은 고양이 굿즈 판매, 3층은 고양이 보호 공간, 4층은 고양이 보호 공간 및 만화/책 카페, 5층은 고양이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무 공간이 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혹시나 해서 홈페이지로 방문 예약을 해 뒀더니 가기 전 며칠 간격으로 두 번이나 알람 메일이 와서 노쇼(No-show)를 방지하기 위한 철저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참고로 오사카 신사이바시점은 평일은 낮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주말은 낮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화요일이 휴일이다. 단 공휴일이 화요일일 경우엔 운영하고 그다음 날 쉰다. 


난 오픈 시간인 낮 2시부터 1시간 이용으로 예약을 했고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예약 관련 사항을 확인한 후엔 양말이나 스타킹을 신었냐는 말부터 들었다. 위생상의 이유로 맨발로는 고양이들이 있는 장소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곤 20개 정도의 주의 사항이 적힌 용지와 이걸 확인하고 읽었다는 의미로 체크박스에 체크를 했다. 주의 사항은 고양이들을 함부로 만지지 말고 너무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고 사진 찍을 때 플래시를 쓰지 말 것, 음식이나 먹을 걸 주지 말 것 등이었다. 이 용지는 일본어 버전 말고 영어 버전도 있다. 


1층에 자리잡은 귀여운 고양이들

안내 사항이 다 확인되자 1층에 있는 고양이들부터 소개를 받았다. 고양이 에이즈라 불리는 FIV에 감염된 아이들이라 분리해서 보호하고 있지만 사람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사람이 에이즈/HIV에 감염되었을 때처럼 약을 챙겨 먹고 관리만 잘 하면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아이들도 여느 고양이처럼 사람들을 좋아하니 같이 놀아주면 좋아할 거라는 말도 들었다. 


3층으로 올라가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발과 손에 소독약을 뿌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5층에 있는 고양이들과 밑 층에 있는 고양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으니 5층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목에 리본을 하고 있는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매우 익숙한 편이니 만져도 문제가 없지만 다른 고양이들은 피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는 곳곳에 고양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창가에 앉아 광합성을 만끽하고 있는 고양이들, 자리 잡고 쿨쿨 자고 있는 고양이들, 나를 반기는 듯 아닌 듯 도도하게 스쳐 지나가는 고양이들. 


3층엔 조그만 냉장고와 싱크대 그리고 장난감이 있는 공간이 있고 거긴 고양인 들어갈 수 없다. 냉장고에 있는 음료는 알아서 꺼내 마실 수 있다. 장난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단 쓰고 나면 꼭 다시 제자리에 갔다 둬야 한다. 장난감을 먹어버리는 고양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입양에 대한 안내 자료

고양이들의 이름과 성격에 대한 안내 사항은 벽에 붙어있고 입양 안내와 길고양이 구조 키트에 대한 안내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보호소에 있는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을 경우엔 먼저 개인 정보 등을 기입해야 하는 앙케트를 작성하고 1주일 뒤 면담을 한다. 면담은 꽤나 빡빡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고양이를 정말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집은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인지(고양이와 함께 살 수 없는데 억지로 데리고 갔다가 집주인과 문제가 생긴다는 등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함께 사는 가족들도 모두 고양이와 함께 살 준비가 되었는지 등에 대한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시험 입양기간이 시작되고 2주가 지난 후 최종 입양을 결정한다. 입양 시엔 보호 기간 동안의 의료비(중성화 비용 등) 20,000엔(약 20만 원)과 길고양이 구조 키트 13,000엔를 필수로 구매해야 한다고. 


길고양이 구조 키트 고양이 입양 안내 책자 및 네코 리퍼블릭에서 발행하는 신문이 필수로 들어가 있고 화장실 세트, 캐리어 세트, 고양이 밥 세트, 네코리퍼블릭 상품권 세트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이 키트를 구매하는 건 네코 리퍼블릭에서 길고양이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비용에 동참하는 의미라고 한다. 


2022년 2월 22일까지, 살처분 당하는 고양이 제로를 목표로


그러니까 네코리퍼블릭을 통해 길고양이를 입양하려면 약 한 달 간의 시간이 소요되고 약 35만 원의 돈이 들어간다. “'고작' 길고양이 입양하는데 왜?”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네코리퍼블릭>의 목표가 ‘2022년 2월 22일까지 일본에서 실행되고 있는 고양이 살처분(안락사)을 제로(0)로 만들기’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길고양이라고 하면 길에서 사는 고양이, 길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고양이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길고양이들도 많다. 의도적으로 버려졌거나 길을 잃은 후 다시 가족을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고 함께 살던 반려인이 사망해서 갈 곳 없는 고양이들이 어쩔 수 없이 길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돌봄이 필요 없는 길고양이들도 있지만 누군가의 돌봄이 반드시 필요한 길고양이들도 있다. 


이런 길고양이들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을 구조하는 과정, 그들이 가족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리고 입양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오히려 몇 가지 단계를 마련해 둔 거다. 


건물 곳곳엔 이 장소를 만드는데 후원 및 도움을 준 사람/단체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이 평일 낮이었음에도 방문객들이 계속 들어왔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방문객의 인원은 인포 데스크에서 조정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엄마와 초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두 딸이 오기도 했는데 고양이를 무척 귀여워하면서도 조심히 다루는 게 인상적이었다. 


4층은 만화카페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고 고양이 관련 책 및 만화책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언뜻 지나치면 못 볼 정도로 공간 공간에 고양이들이 있었는데 그 고양이들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물론 자고 있는 고양이들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만 했다. 자리를 잡고 드러누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싶었다. 


1시간을 예약해 뒀는데 시간은 의외로 금세 지나갔다. 5층에도 올라가 볼까 했지만 문을 열었을 때 고양이가 뛰쳐나올까 봐 걱정돼서 들어가지 않았다. 나중에 3층으로 내려갔을 때 일하시는 분이 ‘5층에도 들어가 봤냐며 문 열어줄까?’라고 하긴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일하시는 분들 모두 친절했다. 설명도 조곤조곤해 주시고 종종 마주치면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는지 물어봐 주기도 하고 고양이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5층 건물이라고 하지만 층별 공간이 넓은 건 아니다. 넓은 공간을 기대하고 가시진 말기를. 그래도 고양이들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도록 캣워크나 캣타워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데는 충분하다. 


네코리퍼블릭 입장권인 여권

<네코리퍼블릭>에 입장 시에 여권이라고 쓰인 걸 받게 된다. 그 여권을 펼치면 왼쪽엔 ‘네코리퍼블릭은 고양이와 사람이 <국민>인 공화국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헌법이 나와있다. 이 여권을 받아 든 사람들이 모두 이 헌법을 읽어볼지는 모르겠지만 꽤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른쪽엔 입국허가 도장을 받는 칸이 있다. 귀여운 고양이 도장이 하나만 찍혀 있어서일까? 다 채우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기도 한다. 이 도장을 다 채울 즈음이면 다들 이 헌법의 의미를 좀 더 가깝게 느끼지 않을까?


<네코리퍼블릭>은 고양이를 전시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고양이 카페’도 오히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양이 보호소’도 아니다.(모든 고양이 카페와 고양이 보호소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양이와 사람이 서로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만든 시작점이며 고양이와 사람이 조금 더 쉽게 접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공간이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분이라면 <네코리퍼블릭>에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건 여긴 관광지가 아니라는 것. 방문 시 예의와 매너, 주의사항을 꼭꼭 지켜주시기를. 


*고양이없는고양이카페 <냥토피아>와 함께 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nn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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