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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05. 2017

드니 빌뇌브의 원형적 세계, 컨택트

선형적 세계(인간의 언어와 시간)의 파괴를 통한 철학적 사유


시간과 (인간)언어의 선형성


인간의 기억이란 과거의 산물이다. 그리고 과거라는 시간은 인간이 경험의 체계화를 통해 인지가능한 영역이 된 시간이란 개념에 의해 구체화되는 영역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지나쳐온 시간과 경험들 중 소멸되지 않고 뇌 속에 남아있는 무엇, 그것이 바로 기억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기억이 과거가 아닌 미래에 맞닿아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인간에게 있어 경험하지 못한 시간적 세계, 이를테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이후의 모든 앞으로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그리고 주변인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다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컨택트>는 인간의 경험치와 과학적 근거, 즉 시간이 일정한 방향과 속력으로 흐른다는 학습화된 기억의 데이터들과 시간은 무조건 앞으로 전진한다는 선형성을 파괴하고 시간의 비선형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풀어낸다.



 Sf외피를 입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원형적 세계



지금까지 그의 영화들을 통해 단 한번도 유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지 않았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기묘한 Sf무비의 외피를 빌려 시간과 기억의 일반적 속성을 파괴한다.

명망 높은 언어학자 루이스와 시간 과학자 이안이 해독한 헵타포드('7개의 발'이란 뜻) 언어들은 인간의 언어처럼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으로 왼쪽을 향해 나아가는 선형의 구조를 띠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일반적인 시간의 선형적 속성을 파괴하고자 하는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가 읽히는 부분이다.


애봇과 코스텔로로 명명된 이들 헵타포드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원형적 특성을 지닌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시작과 끝, 한 쪽에서 다른 쪽을 향해서만 일정하게 나아가는 인간의 언어나 과거▷현재▷미래라는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지구라는 스페이스의 시간의 속성과는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의 세계와 언어는 시간의 구분에서부터 자유롭다. 즉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뚜렷한 구분점이 없이 하나의 원형 사이클처럼 표현되는 그들의 언어는 그대로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간의 기억 회로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래 3000년 내에 인간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외계 생명체의 신비한 능력은(이또한 어디까지나 인간의 뇌와 인간의 언어,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이들을 분석했을 때을 얘기이다) 그들비선형적(원형적) 세계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이들의 능력은 그들이 향후 인간으로부터 받을 도움에 대한 답례로 인간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미래라는 시간을 선물 하기 위해 지구상에 온다. 하지만 루이스에게만 그러한 능력이 생긴 것은 루이스만이 그들의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 때문이다.


영화의 오프닝과 함께 영화의 중간중간 불쑥불쑥 인서트 되는 루이스의 딸 한나의 존재는 루이스의 과거 안에 존재하는 기억이 아니다.  그리고 HANNAH라는 한나의 이름이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은 한나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함축한 메타포이다. 즉 문자로 시각화되는 특성을 지닌 인간의 선형적 언어와 시간에 대한 파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이스와 이안이 헵타포드들과 처음 의사소통을 할 때 그들의 언어가 시각화할 수 없는 일종의 청각음이란 사실 역시 이런 시간과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가 지니는 일반적인 속성에 대한 파괴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미래의 시간의 당도(Arrival)를 현재의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처럼 형상화해낸다. 그리고 그러한 형상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에게 하나의 물음을 남긴다.

인간의 선형적 시간 안에서 미래로 간주되는 시간은 헵타포드의 원형적 시간개념 안에선 미래가 현재도, 과거도 될 수 있으며 반대로 현재나 과거의 시간도 미래로 지각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시간의 선형적 개념이 파괴된 세상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컨택트>에 담긴 시간과 선택이란 키워드



영화 컨택트의 주제는 시간과 선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맞물려 있다.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 지구에 온, 자그만치 높이만 50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우주선은 그 자체로 인간세상에 공포로 인식 된다. 그들이 어떠한 공격적 의사와 행위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인간의 시각, 인간의 언어로 분석한 이 낯선 외계 물체에 대한 지구인의 인식은 그 자체로 공격과 침략이라는 언어로 시각화되고 단정된다. 정보= 도구=무기라는 언어로 손쉽게 치환된다.

그래서 그들은 정작 정보를 전해주러 왔음에도 인간은 그들의 목적과 의사를 무기로 인식한다.

사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의 제목은 컨택트란 국내 번안제목보다 Arrival이라는 원제가 훨씬 적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야 이 외계 물체와의 컨택트가 맞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지점은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즉 앞서 언급한 시간과 선택에 대한 물음.

(물론, 외계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화합과 소통을 일정 부분 다루긴 했다. 루이스와 딸 한나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인간과 헵타포드 사이의 대립이 어느 한쪽의 손해가 다른 한쪽의 명백한 이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를 두고 '넌 제로섬 게임'에 비유한 부분이 나온다)


이들 헵타포드들에 의해 위기감을 느낀 12개국에서 테러와 맞먹는 폭동이 일어나고 군대가 동원되는 양상은 사실 이 영화의 사족들에 가깝다. 이 영화는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소통이나 불소통을 다루고자 함도 이런 알 수 없는 외계 물체로부터 인류를 방어하고자 함도 아니다.


미래의 내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현재시점에서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미래를 안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인류가 지속되는 건 어쩌면 이 두려운 미래에 대해 인간이 조금도 예측할 수 없다는 축복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 이안과 루이스의 선택은 그런 미래에 대한 각자의 선택의 다름을 보여주는 장면이지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설정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그것은 결국 각자의 선택의 몫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어떤 미래에 일어날 우리의 불행들을 미리 인간이 인지할 수 있다면 그만큼 현재의 시간들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매 순간순간이 행복이고 축복이며 기쁨이란 사실을 미래의 불행이 닥쳐오기 전까지 인간은 인지하지 못하기에 말이다.

만약 인간이 헵타포드의 원형적 세계 안에 존재한다면 모든 시간이 현재일 수 있다. 지나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현재의 시간으로 붙잡아둘 수 있다. 그 현재 시간의 가치를 깨닫는 것.

어쩌면 드니 빌뇌브 감독이 지금껏 마주한 적이  없는 이 낯선 sf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지.


원형적 세계 안에서 기억은 미래로부터 자유롭지도, 과거로부터 얽매어있지도 않다. 당신은 이 낯선 세상 위에서 어떤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이 영화 컨택트의 물음이다.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이 없어지는 원형적 세계 안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원형적 시간 위의 한 점, 바로 내가 발 딛고 선 그 시간(인간의 시간으로 치자면 바로 현재) 위가 아니겠는가?




이 영화에 대한 사족을 약간 붙여보려고 한다. 먼저 이 영화의 원제는 Arrival, 말그대로 '도착'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도착이란 외계 물체인 헵타포드의 지구상의 상륙이라는 1차원적인 의미로 일단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이 영화의 내용과 연관시켜보자면 단순히 이런 1차원적인 의미만을 지닌 게 아닌, 보다 복잡한 층위의 의미를 지녔다 규정할 수 있을 듯 하다.


 여기에서 도착이란 헵타포드가 지구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어떤 미래의 시간과 사건(불행이 될 수도 있겠죠)에 대한 정보이거나 혹은 미래의 시간이나 사건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중할 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다층적이고도 중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컨택트라는 국내번제목처럼 단순히 외계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기 위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말 소통이나 화합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어쩐지 완전하지 못다. 그것은 웨버 대령이 이끄는 팀원들이 모두 그 자리를 떠난건 단순히 헵타포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들로부터 위협을 느꼈고 그들의 언어를 잘못 해독한데서 결정한 일이라는 시실.

물론 중국의 국방부 장관인 샹 장군헵타포드들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게 되지만 그것 역시 전적으로 외계 물체와의 화합과 상생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

그것은 루이스가 가진 특별한 능력의 도움을 받아 아내의 유언을 미리 들은 때문이지 군대가 철수하거나 샹 장군이 공격적인 행위를 거둔게 소통과 화합의 목적이었다 보긴 어려울 거 다. 


물론 영화 속에는 루이스와 딸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NonZero-sum Game'에 대한 언급이 한차례 나다. 제로섬 게임이란 내가 얻는 이득과 상대의 손실의 합이 제로가 되는, 절대값이 같은 한쪽의 이익은 절대값이 같은 다른 한쪽의 명백한 손해를 의미하는 경기를 일컫다. 

그렇다면 넌 제로섬 게임은 그런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게임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과 외계 생명체 사이의 전쟁은 결국 한쪽의 완벽한 희생이 다른 한쪽의 완벽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이런 싸움 자체가 인류에게 얻는 게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컨택트는 일정 부분 화합과 소통을 내세운 영화가 맞기도 다. 그렇지만 이 영화앞서 전술한 바처럼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두를 품은 철학적인 영화라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하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의 제목인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 참고로 영화 컨택트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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