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먼아프리카 Nov 27. 2022

청소부 아주머니, 타자 선생님으로 등극하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라! (Leave no one behind)”

  2015년에 유엔 총회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채택하며 외친 슬로건이다. 여성, 아동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자는 의미이다. 현실적으로 단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마음 깊이 담아두고 항상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말이기도 하다. 개개인의 능력과 역량에 따라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제각각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사회에나 남들보다 뒤처진 사람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한 발짝씩 양보하면 좀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머무르는 동안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이 누구 하나 소외를 받지 않도록 신경 쓸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잔지바르에는 의외로 미혼모 여성이 많았다. 홈스테이 집을 청소해주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어린 자식을 홀로 키우는 미혼모였다. 자주 가는 뒷골목 음식점 주인아주머니도 미혼모였다. 시내 골목골목마다 좌판을 깔고 과일을 파는 여성들 중에도 미혼모가 많았다.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보며 처음에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포대기로 아기를 등에 업고 힘겹게 일하는 여성 상인들이 파는 농산물이나 과일을 구매하는 날엔 웬만하면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콰라라미디어센터에서 친하게 지내던 직원이 내게 조심스러운 부탁을 했다. 1년 가까이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단 한 번도 개인적인 부탁을 하지 않던 직원이었다.


  “사무실에 청소부가 필요하지 않나요?”

  사무실을 시내로 이전하고 나서부터는 우리 직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미디어센터 직원이 사무실에 청소부가 필요하지 않냐고 내게 물은 것이었다. 마침 나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사무실을 청소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무턱대고 청소부로 활용하는 데 있어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무실을 청소해줄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기는 해요. 근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혹시 추천하는 사람이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척인가요?”

  이전 사무실에서 선임 매니저 가족들이 함께 직원으로 일하며 온갖 불상사를 일으켜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기 청소부라 할지라도 인력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항상 조심 또 조심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지인이 부탁해서 물어본 거예요. 홀로 어린애 두 명을 키우고 있는데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고용 계약이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얘기를 꺼낸 거예요.”

  그가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미혼모의 사정을 듣고 내게 사무실 청소 관련 일자리를 부탁했던 것이었다. 


  “직원으로 채용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3번 정도 사무실에 나와서 청소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게요.”

  그렇게 해서 미혼모인 마리아는 우리 사무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가 30대 중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40대 후반의 중년 여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키에 삐쩍 마른 몸, 쭈글쭈글한 손등, 이마와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 슬픔이 배어 있는 눈망울은 미혼모로서의 쉽지 않은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무실을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마리아 덕분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구한 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마리아는 첫날부터 사무실을 정말 깨끗이 청소했다. 마치 전문 청소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청소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청소한 곳을 또 청소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물걸레질로 사무실 바닥을 닦았다. 하루는 사무실에서 쓰던 문서 파쇄기가 고장이 났다. 기계가 작동을 안 하니까, 마리아는 매일 쏟아지는 종이를 일일이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손에는 청소 도구를 쥐고 쉼 없이 몸을 움직였다. 사무실 바깥 유리창 먼지도 신문지로 꼼꼼히 훔쳐냈다. 


  “마리아! 왜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는 거예요? 쉬엄쉬엄 일하도록 해요. 똑같은 곳을 또 청소할 필요는 없어요. 하루에 한 번만 청소해도 괜찮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그녀가 자칫 무리해서 건강을 해칠까 걱정되어 말을 건넸다. 한편으로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일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일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오전 중으로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남은 시간에는 타자 연습을 시키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나라도 배우고 실무 역량을 쌓는다면 언젠가 그녀의 경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마리아는 하루에 두 시간씩 타자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판을 하나씩 익히더니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난이도 높은 타자 연습 게임도 척척 해내는 수준에 도달했다.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열 손가락을 활용해 컴퓨터를 다루었다. 그리고 가장 빨리 타자를 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요청한 문서를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까지 척척 해내었다. 타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행여 사무소가 문을 닫게 되더라도 그녀는 다른 곳에서 행정업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리아는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주었다. 그녀한테서 힌트를 얻어 사무실 전 직원을 상대로 ’타자 빨리치기‘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더불어 상위 입상자들을 대상으로 소정의 상금을 내걸었다. 타자를 빨리 쳐서 얻게 되는 장점을 생각하기보다 소정의 상금을 받겠다고 다들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타자를 빨리 치면 일적으로는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개인적으로는 역량 개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주말 동안 사무실 노트북을 빌려가겠다는 직원까지 나타났다. 몇몇 직원은 퇴근도 마다하고 사무실에 남아 타자 연습을 계속했다.

우리는 조금씩 돈을 모아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 깜짝 선물을 했다. 

  드디어 결전의 시합 날이 왔다. 이것도 나름 대회라고 직원들 간에 보이지 않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진 장문의 글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치느냐로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다들 긴장해서 그런지 키보드를 치는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얼마나 손떨림이 심한지 옆에서 지켜보는 나한테까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처음에는 열 손가락을 활용해서 타자를 치기 시작했지만, 종료 시간이 다가올수록 급한 마음에 갑자기 독수리타법으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청소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랜 시간 타자 연습을 하던 마리아를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었다. 내심 기대를 해보았지만 결국 마리아보다 키보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리아의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었다.


  “불시에 대회를 또 개최할 예정이야. 그러니까 계속해서 열심히 타자 연습을 하도록 해.”

  약속한 시합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를 포함해서 세 명의 타자 우수자에게 소정의 상금을 지급했다. 한국에서라면 타자는 기본이라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몇 분이면 끝낼 수 있는 문서 작업도 독수리타법이 익숙한 직원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불필요한 작업 시간이 추가로 소모되다 보니 일의 능률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아주 기초적인 부분의 컴퓨터 교육까지 챙겨야 하는 것 또한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사무소에는 20대 초반의 운전기사인 샤하르가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일이 있을 때만 출근하고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버스를 운전했다. 점점 일이 바빠지고 직원들의 외근이 잦아지면서 그를 자주 활용하게 되었다. 샤하르는 기초적인 인사말을 빼고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샤하르 덕분에 오히려 내 스와힐리어 실력이 늘어나고 있었다.


  “샤하르! 네가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뭐니?”

  나는 어설픈 스와힐리어로 그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았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요. 잔지바르에 놀러 오는 관광객을 태우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관광버스 기사가 되길 원해요.”

  그는 관광기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버스를 운전하면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잦은 외부 회의로 인해 샤하르랑 함께 하는 기회가 잦았다. 한 번 회의를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샤하르는 차 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찍 사무실에 나오는 날에는 다른 기관의 운전기사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샤하르! 네가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차에서 대기하는 시간 동안 영어 단어 하나라도 외우는 게 좋지 않겠니? 오늘부터 남는 시간에 이 책으로 영어를 공부하도록 해. 매주 영어 단어 시험을 볼 거니까 잊지 말고. 시험 성적이 좋으면 매달 네가 원하는 걸 사줄게.”

  귀중한 시간을 왁자지껄 떠드는 데 낭비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어린이용 영어 교재와 연습장 공책을 한 권씩을 사서 건넸다.


  샤하르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갖고 있었지만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아직 어리고 철이 없던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켜 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가 영어를 잘해서 더 좋은 일자리를 갖길 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로 시간을 소비했다. 


  “샤하르! 내가 영어책을 사주면 공부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자꾸만 나를 실망시키는 거니?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하고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다음 주부터 사무실에 나올 필요 없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도록 해.”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정말 따끔하게 혼을 냈다. 그의 생활 습관을 올바로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샤하르가 차 안에서 핸드폰을 보거나 밖에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웃으며 좋게 타이르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게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샤하르가 다른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대신 차 안에서 영어책을 펼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단어를 공부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노트를 내게 펼쳐보며 자랑을 했다. 주말에는 아는 친구한테 영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도 전해줬다.


  “네가 아주 대견하고 자랑스럽구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조만간 영어로 대화를 나눌지도 모르겠어.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난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아.”

  그의 긍정적인 변화와 태도를 칭찬해주었다. 그의 얼굴에 비로소 함박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약속한 대로 그의 실천에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가족들과 같이 먹을 수 있도록 피자 한 판을 사주었다. 순수한 표정으로 선물을 건네받은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밝은 미소로 말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워크숍을 진행할 때면 야외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행복한 모습이었다. 

  사무실 워크숍을 갈 때도 되도록 청소부 아주머니와 운전기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도록 배려했다. 나에게 익숙한 워크숍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접해보는 귀중한 경험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청소부 아주머니와 운전기사를 우리 직원들과 똑같이 대우해줄 수는 없었다. 다만 말 한마디, 마음 씀씀이라도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보살핌이 익숙지 않았는지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마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이에요.”

  청소부 아주머니가 내게 오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저 집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에 마냥 기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단 한 번도 입지 않던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나는 회의를 하러 온 것인데,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한창 멋을 부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렸다.


  “혼자만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오다니 이건 반칙이에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양복을 빼입고 오는 건데.” 

  그녀가 민망하지 않도록 농담을 던졌다. 조그마한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녀를 보며 오히려 내가 부끄러웠다. 나의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 상사에서 인생의 멘토가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