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부터 작가가 되어 보려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작가란 무엇일까? 글을 많이 쓰면 작가인가? 아니면 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으면 작가인가? 남보다 잘 쓰면 작가인가? 어디서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오늘부터 작가입니다” 선언하면 되는 걸까? 갑자기 일어난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글이 처음부터 산으로 가려한다), 오늘은 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글을 쓰려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글을 잘 쓰거나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니 매우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반면 책 읽기는 좋아했다. 엄마 손을 잡고 서점에 가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책을 좋아했던 엄마는 책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동네 작은 책방에 가서 새로 들여온 책들을 신나게 둘러보며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각자 2-3권 정도씩 골라 쇼핑해오곤 했다. 새 책의 빳빳하고 깨끗한 표지, 갓 인쇄된 듯한 잉크냄새, 표지 속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들… 어린 나는 두근두근했다. 놀거리도 볼거리도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9시면 똥그랗고 조그만 브라운관 TV가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야 한다며 부모의 잔소리를 대신해 나를 잠자리로 보냈다. 밤에 책 보면 눈 나빠진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밤비가 그려진 황갈색 담요를 덮고 낮에 사 온 동화책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라떼는 국민학교였다)에 입학하며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책을 읽으면 ‘독후감’ 이란걸 써내야 했고, 나의 사생활을 '일기'로 써서 매주 담임선생님께 보고하고 승인받아야 했다(지금 생각해 보니 아동인권을 무시한 무시무시한 프라이버시 침해 아닌가!). 아무튼… 참 쓸게 없었다. 책은 재밌게 읽었는데 뭘 써야 하지? 늘 뭔가 교훈을 얻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권선징악의 전래동화를 읽고 “나도 흥부처럼 착한 일을 많이 하겠다”거나, 태어날 때부터 뛰어났던 각종 위인들의 전기를 읽은 후 “나도 강감찬 장군처럼 용감해지겠다”거나, 별다를 일이 없던 일주일을 돌아보며 쓸거리를 찾고 찾아(가끔은 지어내서) 일기를 쓰고는 “참 재미있었다”로 급마무리 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나의 진짜 글쓰기는 SNS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프리챌에서 시작해 싸이월드, 카카오 스토리, 밴드,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집착적으로 기록을 남겨왔다. 이렇게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치명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로 나는 기억력이 남들보다 월등히 떨어진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이름도 기억도 안 나고, 같이 갔던 여행도 기억 안 나고, 감명 깊게 읽은 책도 덮는 순간 기억이 안 난다. 봤던 영화를 또 보다가 중간에야 알아채는 일도 자주 있다. 조기 치매가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심각한 내 기억력은 나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누구를 만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싸이월드.. 또 문닫은겨? 내 기록 돌려줘
한번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하진 못해도, 내가 기록했다는 사실은 기억났다. 그 물건 산거 싸이월드에 올렸었는데, 그때 우리 놀러 간 거 밴드에 있는데… 그렇게 다양한 플랫폼들은 나의 기억창고가 되었다. 처음엔 주로 사진과 짤막한 몇 줄의 기록 정도였지만 20년 넘게 쓰다 보니 점점 진화되었다. 내 감정이나 내 생각들이 들어가기도 하고, 좀 더 정확한 기록을 위해 업로드한 뒤에도 (아무도 읽지 않아도) 계속 단어를 고치고 문장을 고치며 혼자만의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 재밌는 일이 생기면 아! 이거 글로 남겨놔야지 하며 더 기억했고, 글은 조금 더 다듬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이 재밌다는 얘기도 종종 듣게 됐다.
칭찬은 50살도 춤추게 하는 법이다.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작가해도 되겠어요”, “어우야! 너 글 너무 재밌잖아” 이런 얘기를 몇 번 듣다 보니 글쓰기가 더 재미있어졌다. 그래서 글은 점점 길어졌다. 최근의 나의 메인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인데 긴 글은 어울리지 않았다. 블로그나 브런치로 옮겨볼까 생각하다가 슬며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작가 해볼까?’ 괜찮을 것 같았다. 작가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고, 장소의 제약도 받지 않고, 사무실도 필요 없고, 잘하면 인세도 받을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러다가 사주를 보러 갔는데… 첫마디가 “혹시 글 쓰세요?”였다! 아니 이 집 너무 용한데? 내가 온라인에서 2025년쯤에는 유명해질 수 있다며 글쓰기를 계속해보라 했다(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집 정보를 알려드리겠다). 그러면서 이름을 지어야 한다며 “정서연”이란 이름이 떠오르는데 그런 예명으로 할 건지 좀 더 필명스러운 걸 할지는 다시 생각해 보자 했다(그렇다! 그분은 나에게 이름팔이를 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고, 역술가가 중얼거린 예명으로 4주간의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호기롭게 신청했다. 점 보러 갔다가 글 쓰게 된 작가라니! 유니크하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내가 왜 글을 쓰려하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는 나를 위해서다. 그동안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나의 기록들을 한데 모아 시리즈 별로 집대성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의 여행기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고 싶다 <가제:당장 떠나라! 내일은 늦으리>. 아이를 키운 이야기도 1년 단위로 정리해보고 싶다 <가제:엄마는 처음이라>. 4년째 빠져있는 등산기록들도 소재별로 보기 쉽게 요약해보고 싶다 <히말라야를 꿈꾸는 아차산토끼>. 그 외에도 쓰고 싶은 시리즈들은 무궁무진하다. 아줌마들의 춤바람 <춤에서 배우는 인생>, 디자인에 관한 <깔맞춤에 진심입니다> 등등…. 나의 기억 보물창고를 이곳에 다시 증축하려 한다.
우정과 환락의 섬! 45살에 떠난 이비자 여행
두 번째는 독자들을 위해서다. 현재 내 글이 재밌다는 예비 독자는 5명 정도이다. 특히 캐나다에 있는 나의 친구 W! 항상 별것도 아닌 일에도 깔깔깔 웃던 나의 귀여운 친구는 지금 타지에서 홀로 두 아이의 늦깎이 육아와 직장생활, 집안일까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W는 내 글이 너무 재밌다며 내 글이 기다려진다는 1호 독자이다. 친구의 행복한 월요일을 위해 캐나다 시간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글을 올려볼까 생각 중이다. 일상에 지친 내 친구에게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만약 지인 외에 독자가 더 생긴다면.. 나는 인스타의 그럴듯한 사진뒤에 숨겨있는 일상의 찌질함, 고단함과 기쁨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삶의 작은 조각들을 꿰어 내보이고 싶다.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은 큭큭 웃고, 가끔은 코끝이 찡해지는 선물 같은 일상의 소소함을 공유하며 100살까지 글을 써보고 싶다. 첫 이야기는… 45살에 떠난 친구들과 떠난 이비자 여행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보고 있니 W야? 정술술****의 이야기보따리 개봉박두!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이야기중 너희들을 내 글감으로 택하겠어!
* 엄마는 책에 돈 아끼지 말라 하셨지만 나는 책에 돈 아끼는 사람이다. 동네 도서관이 나의 서재이기 때문이다. 집이 좁다면 굳이 책을 사지 않고 대여해 볼 것을 추천한다. 내 세금으로 산 내 책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냈다면 희망도서로 신청해 제일 먼저 받아볼 수도 있다.
**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아내가 살해당한 충격으로 10분밖에 기억 못 하는 단기기억상실에 걸려 메모, 문신, 사진등으로 기록을 남기며 범인을 쫓는다. 나는 어릴 적 무슨 충격을 받았길래 기억력이 이모양일까!
*** 내가 참여한 글쓰기 수업은 <듣똑라>라는 팟캐스트의 김효은 기자가 진행하는 [시작은 글쓰기]라는 온라인 수업이었다. 4주간 처음 글 쓰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우며 매주 미션을 수행한다. 나는 미션에서 베스트 글 중 하나로 뽑혔다.
**** 역술가가 지어준 ‘정서연’이라는 이름은 예쁘긴 한데 꼭 커피를 마시며 예쁜 시를 쓸 것 같은 느낌이다. 술을 좋아하는 내게 남편은 ‘정 술’이란 필명을 권유했고, 나는 거기에 한 글자를 더해 ‘정 술술’이 되었다. 너무 힘주지 않고 오랫동안 수울~술 쓰고 싶다. 글이 안 써지면… 낮술을 마시며 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