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가 진짜 이비자를 가겠다고?” “응! L이랑 Y는 곧 회사 그만둘 거고, P는 다음 달에 귀국할 거야.”
어이가 없다는 남편의 반응을 귓등으로 들으며, 나는 노트북에 코를 박고 여행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도난방지 용품은 어제 샀고, 내일쯤 환전하고, 선크림이랑, 홍삼스틱은 면세점에서 사면되고, 젤라또 팩토리랑 우정반지… 또 뭐 사야 하더라? 남편은 뭐 어차피 말려도 바뀌지 않을 결정을 담담히.. 혀를 끌끌 차며 받아들였다. 저 또라이들이 한다면 하는 거겠지. 이비자 항공권은 벌써 1년 전 구매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편도 못 말리는 또라이같은 여행 동반자는 15살에 만나 45살이 된 나의 제명클럽 멤버들이다.
친구들의 블링블링한 손발톱을 위해 준비한 젤라또 팩토리
제명클럽이란 나의 중 2 친구들 모임을 부르는 명칭이다. 제명클럽의 친구들은 북한군도 무서워 벌벌 떤다는 중 2병 시기에 같은 반에서 만났다. 호르몬 과잉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우리는 떼로 몰려다니며 별것도 아닌 일에 울다 웃다, 싸우다 화해했다 하며찐한 1년을 보냈다. 거의 매일 집에 가지 않고 운동장 스탠드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 획.기.적.인 일(친구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쪽지 전해주기, 첫눈 오기 전 첫 키스 성공하기, 만만한 선생님 곯려 먹기 같은 것들)이 없을까 공모하던 우리였다.
그 후로도 끈끈한 우정을 강요하며 한 명이라도 모임에 빠진다고 할 때마다 “넌 제명이야!”를 외쳐대 모임 이름은 제명클럽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에 다니며 얌전한 척 엄마의 탈과 사회인의 탈을 쓰고 살고 있지만 함께 모이기만 하면 또라이 같은 옛날로 돌아가 무모하게 용감해지곤 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고, 몇 년 동안 모아 온 여행계로 어떤 여행지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가장 획.기.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비자가 낙찰된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회사에 다니는 결혼한 마흔 다섯살의 아줌마 6명이 열흘 동안의 해외여행에 다 같이 참여한다는 것부터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1년 전 비행기 티켓부터 각자 예약하기로 했다. 모두 우르르 따랐다. 거부하는 사람은 제명이었으니까. 그리고 항공권 취소는 각자의 자유지만, 그동안 모아 온 공동 여행경비는 이번 여행에서 다 써버리기로 했다. 빠진다 해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원칙에 모두들 동의했다. 뭐 1년 뒤인데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그렇게… L과 Y는 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고(여행을 정말 가고 싶었는지, 회사를 정말 그만두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년 동안 딸 두 명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나 있던 기러기 엄마 P는 귀국했다(아주 알뜰한 친구였기에 자기돈이 공중분해 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중고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G는 동네 엄마들에게 애들 학원픽업을 부탁했고, 역시 고등학생과 미취학 두 아이를 키우며 얼마 전 재취업한 K는 상사와 남편에게 욕을 먹어가며 휴가를 내고 언니에게 애를 맡겼다(모두들 내 돈이 헛되게 쓰이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엄마와 아내는 1년 연중무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몇 년에 한 번씩은 주부파업을 하고 일주일 이상씩 여행을 떠났던 나도 이번에는 여행지가 ‘이비자’라는 말에 약간의 저항을 겪었다(남편의 지인들이 거길 진짜 보내줄 거냐고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나만 내 돈을 날릴 순 없잖아?라는 명목으로 가뿐히 돌파했다.
급 다이어트를 시도했으나 실패!허리는 못찾고 보정앱을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6명이 다 함께 가기로 한 이비자! 막상 가려니 걱정이 몰려왔다. 이비자는 여름 내내 하루도 파티가 끊이지 않는다는 클럽과 환락의 섬이었다. 패리스 힐튼도 놀러 오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가 클럽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G는 그동안 살이 많이 불어 부담스러워했고, 한때 노는 언니였던 P는 지금은 성실한 종교인이 되어있었다. 유럽이 처음이라는 Y는 첫 여행에 이비자 4박은 너무 길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재취업한 K는 하루종일 피곤했다. 나 역시… 의지는 충만했지만 체력이 가늠이 안되었다. 시에스타를 즐기고 밤부터 놀기 시작하는 스페인 이비자 클럽의 골든 타임은 새벽 4-5시라고 했다. 밤 12시도 힘든데… 내가, 아니 우리가 그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잘 놀 수 있을까? 그렇게 이비자행 비행기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