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부터 잔류와 퇴사를 놓고 줄다리기하던 J팀장이 결국 퇴사하기로 했다. 회사에 여러 측면으로 도움이 됐던 그였다. 하지만 정작 팀장으로서는 회사와 팀원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회사의 안정을 위해 그를 잔류시켰다. 그러나 한번 떠난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그는 대표님의 추천을 통해 고객사로 이직했다.회사는 이제 그의 후임자를 빠르게 물색해야 했다.
이때 회사는 어떤 유형의 후보자를 찾을까? 교과서적으론 실력이 탄탄하고 리더십 있고 친화력 있으면서도 판단력이 뛰어난 후보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후보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설령 있더라도 채용 프로세스에서 이 모든 것을 검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 4년간 회사 임원으로 채용에 관여하면서 내린 결론은 회사가 채용하는데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유형이다. 구직자들이 이 유형에 모두 부합할 필요는 없다. 대신 지원하는 포지션에 맞게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강조할 수 있다면 본인을 보다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모두가 가치를 인정하는 성장 가능성
얼마 전 미국 프로농구(NBA) 드래프트가 있었다. 현역 선수 중에 레전드로 불리는 르브론 제임스가 신인이었을 때 그를 뽑는 팀은 향후 10년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웸반야마라는 르브론 이후 최고 신인으로 평가받는 선수의 등장으로 농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그를 지명하는 행운을 차지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웸반야마가 당장 NBA 올스타급들과 경쟁할 정도의 실력으로 평가받진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올스타급 선수들의 신인 시절 때보다 지금의 웸반야마가 실력적으로나 하드웨어적으로나 우위에 있기 때문에 높이 평가하고 또 주목하고 있다. 쉽게 말해 그에겐 역대급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냉혹한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도 성장 가능성은 철저하게 돈으로 환산되어 높게 평가받는다.
이는 실리를 따지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지원자를 선호한다. 지원자 입장에선 짧은 채용 과정에서 이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저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지원자입니다'라고 대놓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에서 지원자의 성장 가능성을 보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많이 쓰이는 방법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원자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한다.
"개발 3년 차인데 벌써 팀장을 맡고 있네요?"
"2년 연속해서 최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사내 강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발 강의를 하고 있고요. 그 결과 올해부터 최연소로 팀장을 맡게 됐습니다."
"회사에서 아끼는 인재일 텐데 굳이 이직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노력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 지원자에겐 성장 스토리가 있었다. 최근 3년의 이야기가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런 지원자라면 우리 회사에서의 미래 역시 성장 스토리가 쓰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지원자의 말대로 팀장급이었지만 우리 회사 주니어 개발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팀장급 지원자를 뽑을 수 있었고, 지원자는 본인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대우해 주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커리어의 키워드가 성장 자체인 지원자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차분한 인터뷰 가운데도 충분히 성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10여 년 전 외국계 기업 전략 포지션 임원 인터뷰 때 내가 받았던 질문이다.
"마크, 전략 업무를 하려면 아무래도 타 부서와 협업할 기회가 많은데요. 영업부서와 협업하는데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요?"
"무엇보다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 것입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듣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의사 전달이 제대로 됐는지 등을 살펴봐야겠죠. 전략 업무는 각 부서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는 우선 들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맞아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죠."
돌이켜보면 임원의 질문에 답변을 아주 잘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면접관이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했다. 면접관도 사람인지라 본인의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논리 있게 답변한 지원자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런 지원자가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아는 것처럼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른 모양의 성장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씩 인터뷰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단어 선택이다. 면접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머릿속으로 정리할 때 면접관이 듣고 싶어 하는 키워드를 뽑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본인이 지금까지 제대로 커리어를 쌓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할 수 있다.
둘, 남들에겐 없고 나에겐 있는 욕심
회사는 욕심 있는 지원자를 선호한다. 욕심이라고 해서 꼭 승진이나 성공, 또는 연봉에 대한 욕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열정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회사는 열정보다는 욕심 있는 지원자를 선호한다. 욕심이 열정보다 더 갖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10년 후 커리어 목표가 혹시 있나요?"
"지금 앞에 계신 대표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던 면접에서 만난 가장 당돌했던 지원자의 경우다. 결과는 물론 합격이었다. 이런 질문에 항상 저런 식으로 답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면접장의 분위기, 면접관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당시 지원자는 시원한 성격의 실무를 중요시하는 성공한 창업가인 대표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에 적합한 답변을 했다. 물론 그가 이 모든 것을 계산해서 답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회사 특성상 이런 욕심 있는 직원이 필요했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 지를 이 한마디로 보여줬다.
열정과 욕심의 차이가 있다면 욕심은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열정은 뚜렷한 목표 없이도 일정 수준까지 발휘할 수 있는 반면 욕심은 반드시 목표와 함께 한다. 이 경우 회사가 굳이 직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고 발전하고 또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인터뷰 시 욕심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욕심은 미래지향적일수록 좋다. 욕심이 과거나 현재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랑에 그치기 쉽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욕심은 면접관이 관심을 갖게 한다.
"해당 포지션은 개발자나 분석가 업무가 아니라 대표님 직속부서로 전천후로 뛰어야 하는 포지션이에요. 자신 있습니까?"
"대표님이 이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도 좋지만, 대표님을 옆에서 서포트할 수 있는 포지션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서포트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리틀 대표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노하우를 단기간에 배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다른 스페셜리스트 직원들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쌓고 포지션 이동을 목표로 해보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답변을 하는 지원자를 욕심이 많은 지원자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답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본인의 생각과 계획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목표지향적, 미래지향적이다 보니 욕심처럼 들리면서도 밉지가 않다. 그리고 기대하게 된다.
셋, 이것만 있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책임감
책임감은 주니어, 시니어, 임원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중요하다. 이런 책임감은 면접장에서 어떤 모양으로 보일까?
"출근 가능한 날짜가 언제인가요? 전임자가 곧 퇴사 예정인 포지션이어서 저희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다음날 중순에 종료됩니다. 이후 프로젝트 인수인계가 2주 정도 걸릴 것 같아서 다다음달 초부터 출근 가능합니다."
이 지원자는 면접관 전원 찬성으로 합격했다. 주니어임에도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지원자라면 우리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것 같았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이 지원자에게 마음이 갔다. 7년 가까이 다녔던 첫 회사에서 외국계로 이직했을 때 퇴사 시점을 컨설팅 프로젝트 종료 시점으로 잡았다. 대개 프로젝트 사이에 일주일 정도 정비하는 시간을 갖는데 그때를 활용한 것이다. 그것이 함께 프로젝트했던 동료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본인 커리어에서 책임감은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책임감은 '저 책임감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신 리더 경험이 있는 지원자의 경우는 리더십을 발휘한 경험을, 리더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본인이 담당했던 업무나 프로젝트의 성과에 대해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어필할 수 있다.
"저희가 채용하는 포지션은 팀장급인데요. 이력서에는 팀장 경력이 보이진 않네요?"
"팀장은 아니었지만 업무 특성상 프로젝트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팀장과 동일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력서 기입한 프로젝트 모두 제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역할을 한 것들입니다. 프로젝트 일정, 리소스, 고객사 관리를 리딩했습니다. 회사에 주니어 직원들이 많은 편이라 피플 매니지먼트도 일정 부분 담당했습니다."
"어떤 고객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난이도가 달라졌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고객사 프로젝트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 끝낸 S사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국내 최고 기업이다 보니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하우스 인력들도 기본적인 개발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저희가 평소에 하던 것보다 두 배 이상으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프로젝트 책임자이다 보니 초반에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했는데요. 이를 위해 초반 일정 관리, 고객사와 프로젝트 상세 사항 조율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세 번째 미팅에서 고객사 담당자로부터 '디테일에 강하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후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풀렸고 프로젝트 마지막 보고에서 내년 전사 프로젝트 파트너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이 지원자의 답변을 들어보면 '책임감'을 억지로 강조하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본인이 맡은 역할 자체가 책임감이 없이는 안 되는 포지션이었고, 이를 프로젝트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나갔더니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어필이 된 경우다.
이 세 가지 유형이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유는 생각보다 풀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인의 이력서를 꺼내보자.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빨간색, 책임감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파란색으로 강조해 보자. 이력서의 모든 내용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물들 순 없지만, 칠한 부분이 너무 적어도 문제다. 욕심은 미래 지향적이다 보니 이력서에서 드러내긴 어렵다. 대신 외국계에서 주로 요구하는 커버 레터(Cover Letter)의 경우 이력서보다 소프트한 내용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욕심을 드러내면 좋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했던 대로 세 가지 유형 중 지원하는 포지션에 맞게 하나만 잘 준비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