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현실. 직장에서 가까이하면 좋은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한다. 최악의 경우엔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사람은 어딜 가나 높은 확률로 존재한다. 하루 업무 시간 8시간 중에 7시간 59분이 좋았다가도 어느 한 사람과 함께한 1분으로 인해 퇴근길 내내 기분이 더러운 날도 있다.
후배들에게 듣는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업무와 진로,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다. 특히 사람 문제는 어렵다. 누군가 가까이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지만, 멀리하는 것은 본인이 선택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고, 업무적으로 계속 만나야 할 때도 있다.
직장에서 멀리하면 좋은 사람이 있다.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지만 직장에서 꼭 멀리하면 좋은 세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을 멀리할 수 있을까?
부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
스타트업에서 나를 무척 따랐던 후배가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 합류하기 전부터 내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함께 일하게 된 것을 기뻐했던 그였다. 자주 커피챗을 요청했고, 업무와 커리어 상담도 해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후배와 만나는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만날 때마다 그가 늘어놓는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구나 회사와 사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 방문해 거의 매일 찾는 단골 커피집에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의 상당수도 그런 얘기다. 하지만 어느 정도 껏이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후배 이야기의 8~90%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가 말하는 게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마치면 항상 기분이 안 좋았다.
나처럼 긍정적인 사람도 부정적 에너지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걱정됐다. 그가 내뿜는 부정적 에너지가 다른 직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실력적인 면에선 본인 몫은 하는 친구였다. 꼭 그가 아니어도 대체자는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나부터가 그를 멀리했다. 먼저 요청하는 미팅은 정기적인 평가를 위한 미팅으로 제한했다. 평가와 피드백을 거의 일방적으로 하는 자리였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일은 없었다. 반대로 그가 요청한 미팅은 시간을 짧게 잡았다. 스타트업 성격상 미팅을 짧게 잡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어서 15분 내외로 미팅했다.
효과가 있었다. 미팅 시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부정적 얘기만 쏟아낼 수 없는 노릇이었던 거다. 필수적인 업무 얘기도 해야 하고, 내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언급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이야기들의 우선순위가 밀려 비중도 함께 줄었다. 꼭 이러한 변화 때문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업무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지금은 더 좋은 회사에서 능력을 펼치고 있다.
반대로 그가 내 상사였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부정적 에너지를 쏟아내는 상사 말이다. 주니어 시절 경험했던 팀장 중 한 명은 이상하리라만큼 자존감이 낮았다. 팀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 후 목표로 잡는 것이 팀장 자리일 텐데, 그는 늘 불행해 보였다. 그래서 주니어였던 나조차 '아 이곳엔 미래가 없겠구나'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곳에서 5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팀장과 팀원의 관계로 제한하고, 나머지 시간과 에너지는 의욕이 넘치는 5년에서 10년 차 선배들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즉, 부정적 에너지의 상사는 완전히 멀리할 수 없기에 최대한 거리를 유지한 채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은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상대방이 사람으로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게 하는 류의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생각보다 곳곳에 존재한다.
알리: (주위 사람 다 들리게) 아니, 그게 그렇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인가요? 저 같으면 벌써 다 끝냈을 거예요.
알리와 미리암은 얼마 전부터 묘한 갈등 관계에 있다. 전체 프로젝트 운영을 담당하는 알리, 그리고 세부 프로젝트 진행을 담당하는 미리암은 상하 관계는 아니다. 다만 알리는 미리암을 비롯해 프로젝트 담당 직원들이 원활하게 업무를 진행하게 돕는 것이 업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잦은 편이다.
문제는 알리가 모든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미리암 본인이 느끼기에는 인격모독과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도 있고, 업무용 메신저로 할 수도 있는 내용을 굳이 주위 동료들 다 듣게 이야기했다.
참다못한 미리암은 알리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본인이 어떤 부분에서 마음이 힘든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왜 미리암의 기분까지 맞춰가며 일을 해야 하죠?' 되물었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달라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팀원 한 명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 조직을 좀 먹는 역할을 한다.
이럴 땐 무엇이 해피엔딩일까? 개인을 생각하면 더 괜찮은 곳으로 이직하면 그만이다. 실제 미리암 역시 바뀌지 않는 알리를 떠나 뒤도 안 돌아보고 이직했다. 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리는 제2, 제3의 미리암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을까.
물론 회사가 괜찮은 곳이라면 빌런 한 사람 때문에 멀쩡한 자신이 나가는 건 억울하다. 조직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데, 여러 회사에서 경험한 사례를 통해 조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스타트업 중 한 곳에서는 팀 리더를 통해 해결했다. 다른 팀직원과 갈등이 생기면 본인 팀 리더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면 팀 리더는 다른 팀 리더와 미팅을 통해 서로의 팀원 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결방법을 찾는다. 이후 다른 팀 리더가 그쪽 팀원과 얘기해 어떻게 다른 게 행동해야 하는지 얘기를 나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오해 소지가 없도록 객관적인 사실을 검토한다. 이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 잘 통했다. 이유는 C레벨에서 팀 리더들에게 이 역할을 매번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직접 돌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대가 같은 팀원이든, 상사나 부하 직원이든, 때론 직속 팀장이든 일대일 미팅을 해서 담판 짖는 것이다. 물론 리스크가 있다. 다만 경험상 절대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는 독불장군 유형이 아니라면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알리에겐 희망이 없었다.
외국계 회사 대표 중에는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은 직원은 인격모독에 가까운 말을 서슴없이 건네었던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표가 이렇게 행동했기에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다들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런 모습을 본 남은 직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직장인의 삶이 다 고단하고 외롭지만 이런 곳에서의 직장 생활은 늘 휴지 없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나온 기분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했던, 또는 경험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본인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 말 밖에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중요한 순간 뒤로 빠지는 사람
직장 생활에선 중요한 순간이 있다.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순간, 승진과 연봉인상의 순간, 인사발령과 해외파견의 순간, 퇴사의 순간까지 정말 많다.
자신에게 너무 중요한 순간, 내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또는 마땅히 도와줘야 할 사람이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첫 회사의 핵심사업은 식품사업이었다. 그러던 중 설치류 동물로 의심되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아수라장이 됐다. 방송사에서 찾아오고 온라인상에선 온갖 악성 글이 넘쳐났다. 이슈가 터진 첫날엔 수습하느라 첫끼를 밤 8시경 먹었다. 팀장님과 직속 상무님과 회덮밥을 먹은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상무님이 짧지만 강하게 말했다.
"마크, 최종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슈가 잦아들고 무혐의로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터널처럼 어두운 과정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든 대응 과정을 책임져준 상무님이 있어서다.
반대의 경우가더 많다. 외국계 기업 시절 본인 임원 승진에 목을 맨 팀장이 있었다. 한 번은 본인 팀에서 차장 진급 대상이었던 과장 세 명이 모두 진급 누락되었다. 내막을 들어보니 본인을 임원 만들기 위해 팀실적을 모두 끌어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본인도 팀원들도 모두 승진에 실패했다. 세명의 과장들은 팀장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팀장의 입김 없이도 승진할 수 있게 노력해서 그다음 해에 뒤늦게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자기 밥그릇이 우선인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남의 밥그릇엔 관심이 없다.
스타트업에 경험했던 C레벨 중에도 좋은 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역시나 중요한 순간 뒤로 빠지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시 만나서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지만 그 사람만큼은 예외다. 그는 회사가 위기에 빠지기 직전부터 가족 문제를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누구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연락이 끊겼다. C레벨이 잠수를 탄 것이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회생 불가한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한 차례 연락이 와서 본인의 생존을 알린 것이 전부였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늘어놨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그것조차 없었다.
중요한 순간 뒤로 빠지는 사람은 최대한 빨리 소위 '손절'해야 한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말하자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특히 주니어 시절에는 이런 사람들로부터 가스라이팅 비슷한 것을 당해 계속해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종종 본다. 회사를 옮기든, 부서를 옮기든, 아니면 그 사람과 크게 다투든 더 이상 그가 내 커리어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각자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다를 수 있다. 그만큼 직장에서 멀리하면 좋은 사람의 유형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들 때문에 버려지는 에너지 또한 상당하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들과 멀어지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리더들이, 회사가 조금 더 이 부분에 신경 써주고, 개인의 에너지가 아닌 조직의 힘으로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