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쥐와 보우네 - 다묘 가정의 시작, 람쥐 (5)
그랬더라면
봄에 보우가 산에서 하루만 늦게 출산했더라면, 아니면 막 눈을 뜬 꼬물이들을 데리고 나무 덤불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람쥐랑 보우는 단 몇 주 만에 다시 재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봄에 태어난 꼬물이들은 할머니 집으로 와서 무럭무럭 자랐을 터이다. 하지만 여름에 태어난 꼬물이들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겠지.
보우와 묘연이 엇갈리면서 봄과 여름에 태어난 꼬물이들의 운명도 엇갈리고, 그리고 람쥐와 엄마는 거의 두 달 반을 단둘이서 지내게 되었다.
(보우와 엇갈린 묘연은 따로 이야기를 풀 예정이에요.)
집냥이 두 달 차의 여유
람쥐가 다시 서글피 울기 시작하자, 이젠 무엇을 더 해야 람쥐의 외로움을 덜어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던 엄마. 밤마다 다른 장난감을 골라서 방석 위에 놓아주기도 하고, 직접 재배한 캣그라스 귀리를 간식으로 내주기도 한다.
몰래카메라 영상 속에서 람쥐가 싱크대의 창가에서 그루밍도 하고 잠도 자느라 한참을 내려오지 않자, 엄마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사용하던 주방 도구를 마저 치운 후 두꺼운 종이 상자를 깔고 그 위에 방석과 담요 등을 겹겹이 쌓았다. 가스레인지는 이제 요리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람쥐가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VIP급(?) 관람석으로 변신.
다음으로 람쥐와 사냥놀이를 제대로 해보려고, 엄마는 인친님이 추천해주신 슈퍼롱 낚싯대를 준비하였다. 우선 낚싯대와 비슷한 재질의 스틱 장난감을 방석 위에 두었다가 람쥐가 아지트에 들어간 사이에 낚싯대로 몰래 교체한다. 나중에 람쥐가 다시 나오면 갑자기 낚싯대를 흔들어 펄럭 펄럭 날아다니는 먹잇감으로 람쥐를 놀라게 해 주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미 방 안의 엄마라는 존재가 궁금해진 람쥐 덕분에 여러 날 허탕을 쳤다. 사냥놀이는 언제든 기회가 될 때 하면 되므로, 우선 람쥐가 하고 싶은 엄마와 숨바꼭질(?)을 하기로 한다.
먼저 람쥐가 서글피 울면, 엄마는 람쥐 이름을 부르며 달래 준다. 그러면 람쥐는 호다닥 싱크대 아래까지 도망을 가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기라도 하면 바로 아지트로 들어가 버렸다. 람쥐가 좀 더 여유가 생긴 후에는 도망가다가 멈춰 서서 엄마 방을 잠시 쳐다보거나, 아지트로 도망갔다가도 몇 분 만에 다시 나오고 또다시 나와서 계속해서 엄마를 불렀다.
밤이 깊어 엄마가 잠이 들면 숨바꼭질은 끝이 나고, 그제야 장난감이 눈에 들어온 람쥐는 신나게 던지고 굴리며 온 거실을 뛰어다닌다. 람쥐한테는 숨숨집도 장난감인지 우다다다 달려서 숨숨집 안으로 골인! 물론, 이젠 정기적인 일과가 된, 엄마방에 두세 번 들러서 몇 분간 머물기도 빼먹지 않았다.
비 오는 밤의 감상
아.. 그래서 아지트를 수시로 들락날락했구나.
사실 엄마는 처음에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밤마다 반복되는 람쥐의 행동을 관찰하다가 뒤늦게 람쥐가 잠시 눈을 붙이러 아지트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다. 이미 하루 종일 구석에서 불편하게 보냈을 람쥐인데 얼마 안 되는 밤 시간마저 다시 그 자리로 들어가 잠을 청해야 하다니.
그러던 람쥐가 처음으로 한 시간 가량이나 거실에서 편하게 잠을 잤다. 5월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비 오는 밤은 아직 제법 쌀쌀하다. 람쥐는 따듯한 전기방석 위에서 깨방정을 부리는가 싶더니,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구석에서 숨어 지내는 람쥐가 애틋했던 엄마는 거실에서 편히 자는 람쥐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래도록 람쥐를 지켜보던 인친님들은 다른 의미에서 뭉클해지신 모양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길에서 무겐님을 기다리던, 비 온 후 젖은 땅이나 눈밭 위를 가리지 않고 뒹굴던 람쥐. 그랬던 람쥐가 이제는 비 걱정 없이 따듯한 전기방석 위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엄마 시점 촬영의 시작
야생의 고양이를 집고양이로 순화시키려면 이 사람이라면 믿고 함께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데, 람쥐는 엄마가 잠들기 전에 숨바꼭질하듯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다. 람쥐와 엄마 사이에 신뢰의 마일리지가 쌓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러던 와중에 람쥐가 아침에 아지트 앞 싱크대 타일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엄마가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면, 그제야 아지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람쥐도 아지트가 불편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서 최대한 늦게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리라. 이번에도 람쥐가 안쓰러워진 엄마는 주방 도구를 좀 더 치운 후 거실에 깔고 남은 매트를 잘라서 아지트 앞에 깔아 주었다.
그런데 이 매트가 의외로 람쥐에게 큰 만족감을 준 게 아닌가 싶다. 그날 밤이 바로 거실에서 처음으로 잠을 청한 날이고, 다음날 밤에는 드디어 엄마 시점 ‘직찍’ 촬영이 시작된 날이다. 그리고 거실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지트로 들어갈 때면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열심히 매트 조각을 뜯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서, 나빠서, 그리고 적당해서 스크래칭을 한다’니 다양한 동기가 있을 텐데, 람쥐의 스크래칭 소리는 사냥에 성공한 기쁨이라도 표현하는 듯 경쾌하고 우렁찼다.
엄마 시점 촬영이 시작된 이후, 엄마와 람쥐는 더 이상 숨바꼭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열린 문 너머로 서로를 바라 보고 눈빛을 교환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밤마다 문틈 사이로 람쥐의 깨방정을 지켜보며 촬영하는 엄마, 신나게 놀다가도 엄마한테 폭풍 눈인사를 해주는 람쥐. 엄마 방을 향해 누워서 쉬고 있는 람쥐, 그런 람쥐를 위해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 자장가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잠이 드는 람쥐.
이제 람쥐와 엄마의 거리는 2미터 남짓. 금방이라도 다가가서 코인사를 나눌 수 있는 거리이지만, 사실 엄마는 방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뒤치락거리며 작은 소음이라도 내면, 람쥐가 화들짝 놀라 바로 아지트로 도망가거나 도망갈 자세를 취한 채 놀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달라진 람쥐의 아침
아침마다 엄마가 거실에 설치한 몰래카메라를 방으로 가져와서 지난밤 영상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larmge.bow)에 공유하느라 얼마간 방에 머물러도, 람쥐는 아지트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몇 번 불러내서 창문 구경을 한 적이 있으나, 람쥐의 아침 나들이는 드문 일이다.
그런데 입양 40일 즈음 람쥐가 새로운 결심을 한 모양이다. 아침에 아지트에 들어갔던 람쥐가 어느새 다시 나와서 관람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방에 있던 엄마가 놀란 눈으로 람쥐를 바라보자, 창문 구경을 하던 람쥐도 고개를 살짝 돌려 엄마를 엿본다. 첫날은 그렇게 잠시 창문을 구경하고 다시 아지트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엄마는 람쥐가 오늘도 용기를 내주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스르르 방문을 제치자, 이번엔 람쥐가 아직 거실에 남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가 내다보는데도 조금 더 놀다가 관람석으로 올라간 람쥐는 이번엔 엄마방을 향해 앉아서 눈까지 맞춘다.
람쥐의 밥상
람쥐가 아침에도 나와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니 식사량 조절이 필요했다. 그동안은 하루치 식사를 밤에 몰아서 했다면, 이젠 아침에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밤참을 줄이기로 한다.
처음엔 엄마가 아침밥을 챙겨주려고 싱크대 근처로 다가가면 아지트로 들어가 버리던 람쥐가 다음날은 엄마가 아침 밥상을 차리고 불러내니 다시 나와서 아침밥을 먹고, 그다음 날에는 아침 상을 세 번이나 받고, 다시 다음날에는 아침 식사 후 아지트에 들어가서 한숨 자다가 점심때 다시 나와서 관람석에서 쉬기도 한다.
이 무렵 엄마는 람쥐를 아지트에서 불러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반복해서 아지트 앞, 관람석 그리고 엄마 방 앞에 밥상을 새로 차렸다. 배가 부르면 시큰둥해서 잠을 자다가도, 배가 고파지면 힐끔힐끔 밥상을 보고 입맛을 다시던 람쥐. 엄마가 지켜봐도 맛나게 밥상을 비우는 람쥐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귀여운 사냥꾼 람쥐
이제 람쥐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낮 시간에도 나와 놀만큼 부쩍 엄마와 가까워졌다. 엄마와 사냥놀이를 해도 람쥐가 혼비백산할 일은 없을 그런 타이밍이다. 게다가 엄마는 그동안 인친님들의 추천을 받아 (람쥐가 멀리 도망가도 사냥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다란 낚싯대를 여럿 준비하고, 낚싯대 흔드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들어둔 터이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큰 애기 람쥐는 역시나 낚싯대에 매달린 먹잇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홀린 듯 먹잇감을 따라가다가도 무서워서 싱크대 쪽으로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람쥐. 낚싯대를 흔들려면 엄마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 앞에 앉아야 했기에, 람쥐는 조금이라도 겁이 나면 아지트로 숨어 버렸다. 엄마는 펄럭이는 소리가 제법 큰 슈퍼롱 낚싯대를 몇 분이고 흔들었다. 그러면 호기심을 참지 못한 람쥐가 결국 다시 나왔다.
고양이에게 사냥놀이는 강아지의 산책과 같은 활동이다. 되도록이면 같은 시간대에, 매일 15분씩 4회에 걸쳐 사냥놀이를 해주면, 고양이의 사냥 욕구도 해소하고 집사와의 유대감도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람쥐는 예외인 걸까. 사냥놀이가 시작된 후 긴장한 람쥐가 잠시 엄마를 멀리하기도 했다. 낚싯대의 흔들리는 먹잇감에 홀려서 사냥놀이는 열심히 했지만, 이후 한동안 엄마방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람쥐를 볼 수 없었다.
이 무렵 밤낮으로 사냥놀이를 했음에도, 조심성 많은 람쥐이기에 엄마와의 거리를 완벽히 좁히지는 못했다. 그래도 산냥이 람쥐가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느끼는 외로움, 무료함을 달래주고 사람에 대한 공포심을 어느 정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되었겠지,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때론 엉뚱하게
람쥐는 낮에 활동하는 시간이 늘었음에도, 엄마가 본격적으로 거실 청소를 시작하거나 설거지를 하면 여전히 아지트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람쥐가 보여주는 엉뚱한 행동들 속에서 희망이 보였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일 뿐, 람쥐에게 사람과 지내는 집냥이 생활이 말할 수 없는 공포는 아니라는.
사냥놀이를 시작한 후에도 람쥐는 가끔 구슬프게 울었다. 아직 몰래카메라 촬영을 병행하고 있던 때라서, 엄마가 아침에 영상을 확인하던 중 람쥐 울음소리가 크게 재생된 모양이다. 람쥐는 자기 목소리인 줄도 모르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실로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거실에 고양이는 안 보이고 엄마도 방에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한 람쥐는 ‘방금 그 소리가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 듯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앵앵 울었다.
한 번은 엄마가 거실 가운데에서 람쥐 밤참을 차리느라 사료며 습식이며 잔뜩 펼쳐놓고 부스럭거릴 때였다. 도자기 밥그릇에 사료 알갱이 떨어지는 소리, 습식에 조제약을 넣고 나무 숟가락으로 섞는 소리 등 람쥐가 그간 많이 궁금했던지, 엄마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거실로 내려와서, 엄마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척하며 엿보는 게 아닌가. 물론 금방 아지트로 도망갔지만 람쥐도 가끔은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때가 있는 듯하다.
엄마가 람쥐에게 밥을 주려고 하면 람쥐가 아지트로 도망갔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해서, (람쥐 무릎 보호를 위해) 엄마는 미리 여러 접시를 준비해서 밀 박스에 담아두기로 한다. 생소한 밀 박스가 등장하자 힐끔힐끔 엿보던 람쥐. 엄마가 딴짓하는 사이에 엄마 방으로 들어와서 밀 박스를 구경하다 나가는 김에 앉아서 밥을 먹었던 건지, 어느 날 람쥐가 뒤돌아 앉아 밥을 먹었다. 사람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신뢰하기 때문이라던데, 엄마에 대한 신뢰의 의미였을까 아니면 밀 박스가 궁금해서 몰래 구경하다 그런 것일까.
밀땅 천재 람쥐
그간 람쥐와 엄마가 지내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감동의 순간이 참 많다. 기다림이 긴 만큼, 람쥐가 엄마 앞에서 잠을 자거나 밥만 먹어도, 낮에 거실로 나와 놀아도, 사냥놀이를 시작해도, 긴 낚싯대가 아니라 짧은 스틱 장난감이나 자동 장난감에 반응만 해주어도, 엄마한테는 모두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간 함께 하며 쌓은 추억이 많이 늘어난 만큼, 람쥐와 엄마 사이를 가로막은 불신의 벽이 허물어질 법도 한데. 사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엄마의 기다림은 진행 형이다.
지난번 글을 업데이트한 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입양 후 처음으로 람쥐의 얼굴을 쓰담 쓰담하기도 하고, 람쥐가 엄마 앞에서 편히 쉬는 모습에 뭉클한 날도 있었다.
이젠 되었다. 이대로만 하면 곧...
하지만 이런 바람은 그저 환상일 뿐 현실은… 엄마의 기대는 한껏 커져버린 반면, 람쥐는 왠지 더 친한 척하는 엄마가 부담스러워지는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한걸음 다가왔다가 두 걸음 물러서는 람쥐. 그래서 엄마가 실망하고 내려놓으려고 하면, 이번엔 람쥐가 다시 엄마 눈치를 보며 한 발자국 다가온다.
람쥐의 아지트가 그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람쥐가 거실에서 계속 지내면서 엄마랑 교감을 해야 하는데, 여차하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공간으로 도망가서 나오질 않으니… 엄마도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라고 동감하던 차에 아지트를 막을 기회가 왔다. 엄마가 방에서 조금이라도 나올 낌새가 보이면 화들짝 놀라 아지트로 도망가던 람쥐가 조금 긴장이 느슨해진 것이다.
어느 날 오전에 큰 창문에서 창밖 세상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은 람쥐, 엄마는 소리 없이 거실로 나와서 람쥐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사실 람쥐가 눈치채지 못했을 때 얼른 싱크대로 가서 이미 준비해놓은 상자로 아지트를 막으면 되는 일이었다. 엄마도 심장이 두근두근, 마음속으로 '해, 말아'를 반복하는 사이, 람쥐가 놀라서 뒤돌아 본다. 잠시 람쥐와 엄마가 마주 보고 흐르는 정적. 엄마는 '말자'로 마음을 정하고 촬영을 이어가고, 람쥐는 당황해서 멈칫멈칫하다가 ‘일단 튀자’로 정했는지 호다닥 도망을 갔다.
다시 열흘 남짓 흐른 후, 두 번째 기회는 밤에 찾아왔다. 이번에도 넋을 놓고 창밖을 구경하는 람쥐, 그리고 한걸음에 싱크대로 간 엄마. 하지만 엄마는 또 아지트를 막지 않았다. 당황한 람쥐를 보니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람쥐의 불안이 커져서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람쥐는 입양 후 100여 일간 아지트 생활을 유지하였고, 만 8개월을 넘긴 지금도 아직 엄마와 ‘밀땅’ 중이다.
어느덧 두 달 반이 지나고
입양 후 두 달이 지나자 이젠 짧디 짧은 스틱 장난감이나 오뎅꼬치를 흔들어 줘도 냥펀치를 날리며 놀 줄 아는 람쥐가 되었다. 거실에 고양이 용품이 가득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르던 람쥐가 여러 채의 숨숨집을 돌아보는 부동산 투어를 하는가 하면, 캣폴의 숨숨집에 숨어서 엄마를 엿보기까지 한다.
제법 집 생활이 익숙해진 람쥐를 보면서, 그리고 이미 두 달의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람쥐와 보우가 서로 기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면서, 보우 입양에 대한 고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대로 람쥐랑 엄마랑 둘이서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러던 와중에 흔들리는 엄마의 마음을 다잡기라도 하려는 듯, 람쥐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발단은 동네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 아마도 발정이 났는지, 창문을 모두 닫아도 동네 고양이 울음소리가 며칠 동안이나 크게 들려왔다. 입양 초기에 틀어 주었던 하프 음악을 다시 틀어야 할 정도로, 람쥐가 안정을 찾지 못했다. 한참 사냥놀이에 빠져 신이 난 람쥐였는데, 혼자 지내는 외로움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잠시 흔들렸던 엄마의 마음은 다잡았지만, 보우 구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봄에 태어난 꼬물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보우였기에, 만에 하나 봄비가 연일 내리던 산속의 나무 덤불에서 살아남은 꼬물이가 있다면? 수유를 해야 하므로 섣불리 보우를 구조할 수 없었다.
결국 두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마침 무겐님(인스타그램 @mugen_s)이 관리하시는 주택가의 밥자리에 보우가 ‘혼자’ 나타나서 (꼬물이들이 생존했다면 밥자리에 데리고 나왔을 텐데, 이미 고양이 별에 가지 않았을까 추측만..) 무겐님이 바로 보우를 구조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우한테 수유 중인 흔적은 없었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후 검사와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보우는 연이어 임신을 한 상태였다. 게다가 출산일도 임박한 만삭의 몸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부랴부랴 거실에 보우를 위한 산실(격리장)을 다시 조립했다. 보우 입양 전날 밤, 람쥐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 채 평소와 다름없이 천진난만하게 거실을 종횡무진했다.
둘이 서로 기억해야 할 텐데...
[ 람쥐의 집냥이 도전기 ]
D+76 보우 입양 전날, 산실(격리장)을 다시 조립함
D+75 자동 나비 장난감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음
D+71 스틱 장난감으로 사냥놀이 시작
D+67 밤에 엄마의 방 탈출 사건
D+63 드디어 엄마방의 람쥐 화장실 사용 개시
D+59 동네 고양이 울음소리에 다시 울기 시작한 람쥐
D+57 캣폴 숨숨집에 숨어서 엄마 감시하기
D+56 아침에 엄마의 방 탈출 사건
D+55 삐진 엄마 눈치보기
D+52 엄마한테 등을 보이고 밥을 먹는 람쥐
D+51 엄마방에도 람쥐 화장실이 생김
D+49 데빌 스네이크 낚싯대에 홀려서 엄마방 코앞까지 들어온 람쥐
D+45 엄마랑 제대로 하는 사냥놀이
D+40 아침에 아지트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람쥐
D+39 아침에 아지트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잠깐 관람석에 들른 람쥐
D+36 엄마 시점 촬영의 시작
D+35 비 오는 밤, 처음으로 거실에서 노곤노곤 잠이든 람쥐
D+31 싱크대 관람석에서 뒹굴뒹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