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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아빠 Oct 20. 2022

아빠 또 술 마셔?

새벽 5시. 눈을 뜨고 씻고 책상에 앉았다.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늘 그렇듯 방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한데 모았다. 둘째 정준이는 내가 없는 낮시간 동안 방을 항상 어지럽힌다.

따뜻한 물 한잔을 옆에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에 독서를 하니 집중이 잘 되었다.

한참을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제저녁 첫째 정운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 또 술 마셔? 오늘은 안마신다며!”


퇴근을 하고 거실에서 가족이 모여 TV로 유튜브를 보고 있을 때였다. 와이프와 저녁은 어떻게 할지 이야기

를 하다가.


“아 ㅇㅇ는 술안주라 안돼. 오늘은 술 안 마시니까 ㅇㅇ은 먹지 말자.”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한 채널에서 출연자가 회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정말 놀랍게도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은 까맣게 잊고 빠르고 열정적으로 회를 주문했다. 

자연스레 오늘의 저녁 메뉴는 회로 결정되었다. 

배달된 회를 식탁에 세팅을 하고 자연스레 나는 냉장고에서 술을 꺼냈다. 

기분 좋게 술을 한 잔 하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가 끝낸 정운이가 내 옆으로 왔다.

8살 아이들이 다 그렇듯 정운이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좋아한다. 

아마도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게임을 하라고 하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계속 게임을 할 정도이다.

그런 정운이가 게임이 끝났으니 이제 아빠랑 놀고 싶었나 보다. 내 옆으로 오더니 갑자기 나한테 말했다. 


“아빠 또 술 마셔? 오늘은 안 마신다며!”  


그리고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랑 맨날 안 놀아주고!”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그 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대충 넘기며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 갑자기 어제의 일이 생각이 났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정운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술을 자주 마신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마 검사를 받으면 알코올 의존증 진단을 받을 것 같다.

나름 다음날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고 즐기는 수준으로 마시는 거니까 괜찮다며 애써 포장을 하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 속으로는 술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그런데 어제 정운이가 "아빠 또 술 마셔?"라고 말을 할 때의 표정을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아 술을 마시면 안 되겠구나.'


정운이의 입장에서 정운이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빠랑 블록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싶은데, 아빠는 늘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나와는 놀아주지도 않고.

그리고 정운이가 술 마시는 아빠에게 할 수 있는 건 겨우 술 마시지 말라는 말 밖에 없고.


내가 아들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운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빠가 되어서 고작 술 때문에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속이 상하고 아빠로서 너무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정운아. 

아빠 이제 변할게. 술도 줄이고 너랑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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