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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May 05. 2022

오죽하면

 감정이 격양되면 차라리 말하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하라는 지침을 준다. 부모 교육에서나, 부부 또는 커플 상담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보다 날 것의 감정만 전달되어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기 때문이다. 평정심을 잃었을 , '할까 말까 싶은 말'이 생각나거든 일단 멈추라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나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화가 났을 때 내뱉은 말은 대부분 후회를 남긴다. 그래서 말을 줄이고, 쓰는 것도 삼간다. 익히지 않은 말과 글이 떠돌며 후회를 만들 가능성을 줄이고 싶어서다. 요동치는 마음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아서, 갱년 핑계로도 더는 이해를 구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물려고 노력한다.


  밥벌이 최소한의 역할을 빼고는  쉬며 지냈다. 언론 매체를 끊고 결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는 것으로 자극은 상당히 덜 했다. 고립이 잠시 위안을 줄지언정, 안정감을 지속시켜주지 않을 걸 안다. 단절하고 무시한 채로, 비슷한 사람끼리만 접촉하며 살 수 없다는 걸 나라고 모르겠는가.... 하여, 마음먹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극심한 피로 려왔다. 혹시 착오가 있나 싶어 눈을 심했다. 문화부도 아닌, 사회부 기자가 쓴 기사라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의도가 너무 빤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설마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게 그녀가 얼마짜리 옷을 입고, 무엇을 신고, 그 제품이 품절이 되었다는 소식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국민 수준을 그렇게 보진 않았을 테지. 이유가 있었겠지....


적어도  기자라면, 무수한 의혹을 품었던 주가 조작 사건, 논문 표절 문제, 잘 보이기 위해서 경력을 부풀린 것에 대해서라도, 아니면 모친의 잔고 위조 사건에 대서라도 제대로 취재해서 려줘야 하지 않을까? 팬심을 드러내고 싶다면 의혹인지 진실인지를 밝혀주고, 관련자가 줄줄이 구속되었음에도 그들만 법 앞에서 자유로운 이유를 말해줘야 하지 않은 말이다.


나는 자주 흔들리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기는 사람이라서, "네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앞장서 숨는다. 빠르게 좌절하고 고민 없이 포기하는 터라서, '어차피 다 똑같아. 그놈이 그놈이야'라는 물타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소심한데 겁도 많아서 "대통령 직속 ‘국가 사이버 안보위’를 신설해 '사이버전 전사 10만 명 육성'한다는 기사에 쫄보가 된다.


그런데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있어서 그냥 넘기지도, 조리 있게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한 채 괴로워한다. 이런 기분으로는 후회할 말들만 쏟아낼 것 같아서 브런치 글쓰기 페이지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함부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오해일까 봐 기자 이름을 검색했다.  <기자 수집가>라는 유튜브 채널이 나왔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내가 끝없이 가라앉아 날것의 감정만 풀어놓을 때, 나잇값 못 하고 불평하고 비난만 할 때,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것 같)다. 그에게 고맙다. 여전히 후회할 말이 불쑥불쑥 나온다. 능력이 부족해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할 것이다. 내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쓰고  남길 것이다. 기록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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