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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Mar 09. 2023

환장

22년 5월 10일, 박빙이라는 기이한 과정만큼 참담한 결과였다. 역시나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자신의 믿음이 정의이고, 진실이다. 나와 다르면 ‘가짜 뉴스’ 이거나, ‘음모론자’가 된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확증 편향의 무서운 힘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 뼈를 묻기 전까지 살아야 하므로 승복했다. 그저 ‘최소의 원칙만 지켜지길’ 바랐다. 이조차도 욕심이었을까,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견고하다고 믿었던 사회 시스템에 균열이 생겼다.    


'국민에게 청와대를 돌려주겠다.'고 국방부를 내보내고 집무실을 옮겼다. 언론에서는 비용 절감, 부대 이익을 칭송했다. 소수 매체에서만 순수 이사 비용만 496억이고, 천문학적인 연쇄 수반 비용이 들어간다고 썼다. 25평 내 집 이사와 정리에만 두서너 달이 필요했던 터라, ‘국방부’가 이렇게 쉽게, 이전할 수 있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열심히 하겠다니 필요한가 보다 했다. 현재 용산 집무실, 청와대 영빈관, 관저가 있는 한남동까지 곳곳을 사용하지만, 대한민국 1호 영업 사원이라니 세금 쓰인다고 문제 삼으면 되겠는가.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했든, 담당 업체가 어떤 곳이든, 비용이 얼마나 들었든,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돋보이기 위해 허위 경력, 논문 표절을 했어도,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에 가담한 정황이 있어도, 장모가 요양 급여를 불법으로 수급해도, 잔고 증명서 위조 관련 범죄 정황이 드러났어도, 관련자들은 처벌받고, 두 사람 면죄부를 받았어도, 대통령 당사자 일은 아니므로, -후일에라도 바로 잡힐 테니- 지켜보면 될 일이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22년 9월 22일, 미국 순방 중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 던 윤 대통령 영상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전 국민을 바이든 파와 날리면 쪽으로 나뉘어 싸우게 했지만, 김은혜 홍보 수석이 음해이므로, 국익을 훼손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바이든 이든 날리든 이든, 쪽팔리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자막을 달아 내보냈다는 이유로 MBC 기자를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시켰으나, ‘국익’을 위해서라니 입 다물었다. 내가 잘못 들었다고 치고, 없었던 일로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게 뭐라고.


 영국 여왕 장례식 조문을 했든, 늦어서 못 갔든, 그 일에 사이비 교주가 관여했든 말든 그러려니 했다. 동남아 순방 중 국빈 초청으로 방문한 캄보디아에서 정해진 일정 대신 연예인이나 셀럽이 할 만한 포즈를 취하고, 빈곤 포르노를 찍어 홍보 자료로 썼을 때조차, 대통령보다 더 관심을 받는다거나, 조명을 썼네 안 썼네 했을 때도, 돋보이고 싶은 분인데,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부인 자격으로 적절한 행동일까, 정치적 판단은 한 걸까 우려되긴 했으나, ‘대통령 처음이라 몰랐다는 마당에, 영부인 처음이니 몰랐나 보다 했다.


 친일 논란 문체부 장관에 이어, 법인카드 유용, 사학비리 옹호, 군 복무 중 대학원 특혜,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등 헤아릴 수 없는 의혹을 가진 김인철 교육부 장관을 지명했을 때도, 투기 의혹과 전 대통령을 향한 막말을 서슴없이 하던 김승희 장관, 음주 전력, 조교 갑질, 자녀 생활 기록부 대필 의혹이 있는 박순애 장관을 지명했을 때조차, 함께 일할 사람이니 알아서 해야지 싶다. 그의 뜻대로 지명하는 족족 ‘스타 장관’이 되었으니 원하는 바를 이룬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22년 여름, 수해로 서울 한 복판에서 사람이 죽었다. 침수 주택을 현장 검증하듯 찾을 때도, 10.29 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관련자를 벌하기보다, 감싸는 인류애를 보였을 때조차도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유족을 위해서라며, 위패와 영정사진 없는 추모 공간조차 서둘러 철거하려 할 때도 뭔가 뜻한 바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니까, 10개월간 최대한의 인내력과 이해력을 발휘하면서 모욕을 견뎠다는 말이다. 말했듯이,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나라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길 바랐고, 그러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말 뒤 엔 왜 항상 ‘이런 취지의 말씀...’이라는 부연 설명이 따라와야 하는가. 그나마도 3. 1절 기념사는 설명서를 되풀이해서 봐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중략)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일제 침략이 내 조상 탓이라는 뜻인가? 일본에 우리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지 물어는 봤는가?


 기다렸다는 듯이 세종 시 한 아파트 주민은 대통령 뜻에 동참한다며 3.1절에 일장기를 게양했다. 항의하는 시민을 향해, 한국이 싫어서 그랬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으며, 간첩죄 운운하며 신고했다.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흉물스러운 소녀상 철거를 주장’했다. 유관순이 실존 인물이냐 따져 물었다던 말은 차마 못 들은 것으로 해야겠다. 3월 9일 신문에는 ‘친일파를 자처한 김영환 충북 지사’의 기사가 실렸다. 이 모든 일은 "치욕스러운 한일 협 굴욕 외교"로 마무리되었다. 진심으로 여기가 끝이길 바란다.   


 정의 기억 연대 이사장을 역임했던 윤미향 의원을 그토록 처참하게 밟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추락한 이미지로 더는 입을 열지 못할 테니,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대중 심리를 이토록 잘 이용하다니. 역시 디테일에 강하다. 집요하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흔적을 지우고, 기억을 훼손하고, 끊임없이 현혹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 사회의 윤리 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아직도 그들의 시간이 남았다니,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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