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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Mar 16. 2023

말장난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패자들의 정신 승리용 멘트. 그 오랜 거짓말.  익숙해서 당연한, 생각하면 기이한 사회의 속임수를  다행히 내 어머니는 강요하지 않으셨다. ' 싸움은 안 하는 게 좋지만, 싸워야 할 때는 기를  싸우고, 기왕 시작한 거면 이기라'는 쪽이셨다. 고요한 성품인 아버지는 어머니 양육 방식이 내키지 않으셨겠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걸 다행이라 여긴다.


 삶 전반에 침투해 있어서 너무 익숙하거나, 우아함에 홀려서 알아채기 힘든 거짓말. 이 지릿한 기분 소환한 건 얼마 전 머리기사로 본 '도덕적 우위'라는 낱말 조합 때문이었다. 나라 간에 도덕적 우위에 선다는 게 뭐지? 그래서 얻는 실익은 뭐지? 납득이 안 돼서 기사 몇 개를 찾아 읽었다. 물론 후회했다.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니 한국 언론의 속성을 아직도 모르는 건가.


 줄기차게 생각했다.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피해당한 내 나라가 가해한 나라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제1호 영업 사원'은 떻게 했다는 걸까? 그들이 닳도록 말하는 '국익'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문제의  3.1절 기념사는 한 인간의 일장기 게양, 충북 도지사의 친일파 커밍아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강제 동원 해법"이라며 굴욕적 태도를 보인 지 단, 3일 만에 일본 외무상에서는 '강제 동원은 없었고, 이미 다 끝난 문제'라고 발표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를 보였고, "한국정부는 양보 안을 착실히 시행해야 한다고"말했다. 이 과정 어느 지점에 내 나라가 우위에 있는가.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겐가?


 수치와 고통으로 이 과정을 지켜보는 지금, 23년 3월 15일 자 기사에는 '저녁을 두 번 먹었네. 돈가스를 어쩌네, 오므라이스는 윤대통령이 직접 주문했네 어쩌네'하는 무수한 기사가 쏟아졌다. 역대 누구도 두 번의 식사는 없었다거나, 오므라이스는 친밀감의 뜻이라거나 구역질 나는 글을 쓴 기자를 입에 올리고 싶진 않다. 다만, 최소한 일국의 수장이 해서는 안될 말과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국익, 도덕적 우위, 가짜뉴스, 왜곡. 만능키로 쓰이는 전정부 탓, 문대통령 탓, 북한의 지령. 여론 몰이용 고소, 고발, 압수수색. 상황 수습용 격노, 한 나라가 이 몇 개의 단어로 운영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가? 지금껏 투표의 기준, 정치권력에게 바라는 건 아주 단순했다. 내 이익을 대변하거나, 내 자존감을 지켜주거나.  제발 되지도 않는 말장난은 그만하고, 제대로 일 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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