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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Oct 20. 2023

18층 아저씨

 달리기를 시작해 겨우 호흡을 다스릴 즈음이었다. 늘 마주치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18층에 사는 아저씨였다. 달리기 대신 걷기를 선택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나만큼이나 아침이면 빼먹지 않고 개천 변에 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도 학생들이 흔히 실내화로 신곤 하는 샌들에 가벼운 배낭을 멘 차림이었다. 난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가볍게 인사 하면서 스쳐 지나갔다. 그 역시 손을 들어 올리며 답례를 해왔지만 그 표정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얼굴이 약간 부은 듯한 데다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고 손동작 역시 아주 힘겨워보였다. 뿐만 아니라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있었으며 곁에는 부인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내가 아저씨에게 관심을 두게 된 건 비단 아침운동 길에 자주 만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성당에서 미사가 끝났을 때 그곳에서 그들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도 성당을 다니는 신자였다. 그날따라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도 동승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우리 집의 층수뿐 아니라 18층 역시 활성화되어 노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 같은 아파트 동, 같은 종교. 다 늙어가는 마당에 그것들은 동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요소들이었다. 좁은 공간 속에서 달리 시선을 둘 곳이 없었던 우리는 자연스레 눈길이 마주치면서 서로 목례를 나누었고 그것이 만날 때마다 수인사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서였다. 얼마 전에도 그와 비슷한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우리가 만난 건 아파트의 산책로에 마련된 벤치에서였다. 그때도 아저씨 옆에는 부인이 서있었다. 늘 혼자서 아침산책에 나서던 모습과 달라 옆을 지나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등 뒤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기 이렇게 가만있으면 안 돼. 정신을 차리고 걸으려고 해야지. 무언가 병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심상치 않았지만 난 일시적으로 기력이 떨어져 그런 것이려니 여기며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고 그리곤 잊어버렸던 것이다.  

 갑자기 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아왔다. 나를 바라보던 아저씨의 흐릿한 눈빛이 목구멍에 커다란 가시가 걸린 것만큼이나 마음에 걸렸다. 분명 어딘가 많이 불편한 것이 틀림없었다. 부인이 곁에 있기는 했지만 만약의 경우 여자 혼자 몸으로 남자를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게 뻔했다. 더구나 차량의 통행이 불가능한 곳일 뿐 아니라 인적 또한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었다. 달리기를 포기하고 도로 돌아가야 하나. 갈등에 빠졌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록 여자라 해도 엄연히 보호자가 있는 마당에 내가 나서는 건 괜한 오지랖이려니. 만에 하나 다급한 일이 생긴다 해도 결국은 119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고보면 내가 있으나 없으나 그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으려니. 그렇게 난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그 장면을 지우려 노력했다.  

 어느새 반환점에 도달했다. 기대와 달리 그때까지 난 아저씨 생각으로부터 좀처럼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설마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몇 번이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불편한 사람을 애써 외면했다는 자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한참 힘들어 숨이 가빠왔을 테지만 그것마저 그런 생각들로 상쇄되어갔다.  

 마침내 아저씨와 만났던 지점에 도달했다. 두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회복이 되어 돌아갔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난 자신을 구제하려들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마음은 당체 편안함을 되찾지 못했다. 구급차에 실려가 지금쯤 응급실에 누워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엄습해왔다. 그럴 일은 없다며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하려해도 결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은근히 그곳에서라도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주머니를 본다는 건 아저씨의 상태가 그리 위급하지 않다는 말일 테니까.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18층에 가까워질 때도 난 포기하지 않고 아주머니가 멈춰 세워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단 한 차례의 멈춤도 없이 26층까지 직진했다. 아마도 아저씨의 상태가 확인될 때까지는 계속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오늘의 일이 생각날 것 같았다. 그러게 남의 힘든 상황 앞에서 왜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고 외면하기 급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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