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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Dec 04. 2023

잊으려 하지 말고 이기려하자

 5,60대 남자들의 우울증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의욕까지 잃으면서 그것이 병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 역시 종종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아마 그 나이대가 되면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증상인 모양이다. 그러기에 그건 질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성장통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그 단어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지만. 

 그들은 대부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라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우울증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런 환경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조직이나 공동체 생활에 젖어 있다가 관계라는 틀에서부터 고립되면 낯설음에 직면하게 되고 동시에 외로움에 휩싸인다. 외로움은 금방 불안감으로 발전한다. 그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태생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체는 자정작용이라는 신비한 기능도 보유하고 있다. 어딘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자동적으로 그 기능이 활성화되어 안정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동호회나 친목회 등을 만드는 건 이런 작용의 일환이다.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누군가와 어울림으로써 불안감을 내쫓으려 하는 것이다. 성격상 또는 여건상 그게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는 나름 다른 대안이 마련된다. 등산이나 독서, 영화감상 같은 활동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 불안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목적에서는 동일하다.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같이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도서관을 생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도긴개긴이다. 

 그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거나 어딘가에 몰두함으로써 두뇌가 정신적인 고통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심지어는 견디기 힘든 현재의 상황을 아예 두뇌의 저장장치로부터 삭제시키려 애를 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어리석은 행위가 없다. 잊는다는 것이야말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단어다.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기억이 소실되는 순간이 아닌가. 삶이란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당장의 고통이 힘들어 그걸 잊으려고만 한다면 죽기를 원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최근 들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숨만 쉬는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나을 가능성이 있다면 모를까 기억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정지된 채 호흡만 유지하고 있다는 건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기억이 정지된 상태에서의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자기가 발을 디디고 선 곳이 개똥밭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게 아니면 오히려 남은 가족들에게 고통만 안겨줄 따름이다. 

 일부 순간을 잊으려는 행위를 두고 죽음이나 연명치료, 치매까지 연결시키는 건 너무 심한 비약일지 모른다. 그러나 5,60대라면 노화에 따른 망각이 한참 진행되는 시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안타깝게 여기며 단 며칠이라도 그 시기를 늦추려든다. 그러면서 무엇이 되었든, 그 양이 어떠하든, 잊기를 바란다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순이요 제 발등을 찍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하찮은 기억도 소중히 붙잡아야 할 마당에 잊히지 않은 사실들조차 굳이 나서서 잊으려 할 건 무언가. 

 또 한 가지, 분명히 말하지만 나이 들면서 행하는 여러 취미활동이나 운동 등을 내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아니다.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심신을 단련시키는데 그만큼 바람직한 것은 없다. 따라서 우울증을 이겨내는 좋은 처방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억지로 현 상황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그걸 활용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스레 하게 되면 오래 가지 못하고 곧 포기하게 된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되는 법이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희로애락의 순간들은 모두가 삶의 한 과정이요 일부분이다. 하나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런 만큼 즐겁고 기쁜 순간은 그것대로 즐기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은 또 그것대로 당당하게 맞서면 된다. 슬픔이 없으면 기쁨도 없으며 아픔이 있기에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한다. 잊으려 할 게 아니라 이기려해야한다. 우울증세가 심화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것이 최선의 치료요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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