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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Jan 04. 2024

모두 다 예쁜 말들 - 코맥 매카시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했다. 모든 면에서 그랬다. 공간적 배경이 미국의 텍사스에서 출발해 멕시코 국경까지 이어진다는 점도, 주인공 존 그래디 콜이 그 길을 말을 타고 오가면서 성숙해간다는 플롯도. 여행을 통해 한 사람의 성장기를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는 소설을 떠올리게도 했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도 헤르만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스쳐지나갔다. 소년의 성장, 사랑, 그리고 귀환. 모두가 이런 내용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주인공 존 그래디가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코맥 매카시를 처음 대하면서 과연 나의 취향에 잘 어울릴까 걱정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아니 오히려 그에 대한 호감은 더 생겨났다. 때문에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올 더 프리티 호시즈(All The Pretty Horses)’까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아울러 이 소설에 더해 국경삼부작으로 일컬어지는 ‘국경을 넘어’와 ‘평원의 도시들’도 곧바로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작가라면 그의 작품을 죄다 찾아 읽는 나의 독서습관을 고려하면 ‘핏빛 자오선’도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 

 소년에서 청년 또는 성인으로의 성장과정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좌상향의 비스듬한 경사선이 아니라 계단식의 선으로 표시되지 않을까 난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왜냐면 나 자신이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다 자라있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된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존 그래디 역시 마찬가지다. 집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품은 순간, 혹은 집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 소년의 티를 벗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물론 가출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부모의 이혼, 그리고 목장을 팔기로 한 어머니의 결정, 그런 것들이 그로 하여금 자립을 강요했다고 할 수 있다. 상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존 그래디가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다 롤린스라는 동반자가 나타나면서 더욱 용기를 얻게 되고 결국 현실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모험을 감행했을 것이다. 

 집을 떠나는 것이 성장계단의 한 단계라면 이동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몇 가지 사건들은 또 다른 단계를 형성한다. 지미 블레빈스라는 소년과의 조우가 대표적이다. 괜히 뜻하지 않은 일에 엮이어 곤란을 겪을까봐 염려한 나머지 그래디 일행은 블레빈스와 어울리지 않으려하지만 자꾸 마주치면서 본의 아니게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한 계단 위에 있는 타인과 함께 하는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농장에 취직하여 농장주의 딸 알레한드라를 만나는 것 또한 하나의 계단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노동으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해준 것이 농장이라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랑을 느끼게 해준 사람은 바로 알레한드라다. 알레한드라는 ‘겁에 질려서는 돈을 벌 수 없고, 걱정에 눌려서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한 아버지의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이야말로 성장의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고모할머니로부터 알레한드라와 헤어질 것을 강요받고, 그녀의 아버지로 인해 죽음에 직면하기까지 하면서도, 그는 알레한드라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점 역시 자신의 결정에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성장의 부산물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크고 높은 계단은 귀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잃어버린 말을 찾아 헤매던 그는 오히려 말 도둑으로 고발당해 재판을 받게 된다. 판사는 존 그래디의 증언을 모두 진실로 판단해 그를 말 도둑이 아니라 말 주인으로 최종판결을 내린다. 그로써 결백이 밝혀지지만 그는 구태여 판사를 찾아가 그 사건과는 관계없는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고백한다. 감옥에서 사람을 살인한 일과 블레빈스를 죽인 서장을 납치한 일 뿐 아니라 서장을 죽이고 싶었다는 사실까지 일일이 밝힌다. 그 모든 일들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행위로써 법률상으로 죄가 되지 않거나 설령 죄가 된다 해도 아주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는 일임에도 스스로는 살인죄를 저질렀다며 뉘우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진정한 성장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은 육체적인 성장만이 아닌 정신적인 성장이 함께 이루어졌을 때라야 행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도 꽤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건 인생에 있어 성장이란 한계가 없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앞으로 그 성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편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국경삼부작 중 남은 소설에서 그런 내용들이 다루어질지도 모른다. 은근히 기대가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묘사에 있다. 서두에 내가 로드무비를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인공이 지나는 길의 장면들은 마치 화면 속 그림처럼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펼쳐진다. 그만큼 표현이 섬세하고 서정적이다. 자신이 직접 지나지 않으면 표현해내지 못할 부분들이 도처에 숨어있다. 또 대화문은 아주 간결하고 깔끔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 중의 한 명이 되기에 조금의 손색도 없다. 그와의 만남은 실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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