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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Sep 16. 2024

밤이 아닌데도 밤이 되는 / 만날 수 있던 밤들에게

최리외 <밤이 아닌데도 밤이 되는>


만날 수 있던 밤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밤새 비가 왔는데, 눈을 뜨니 햇살이 가득합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네요.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겠지요. 그러다 가을도 떠나고 곧 겨울을 만날 겁니다. 사람도 계절처럼 와서 한 철 머물다 신기루처럼 흩어지곤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언제 알게 되었더라, 떠올려보면 아득한 기분이 듭니다. 묘하게도 그 감정은 과거가 아닌, 미래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실은 미래적인 일입니다. 나의 미래에 다시 이름을 새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아침에 글을 씁니다. 저녁이나 깊은 밤에 글을 쓴다는 사람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밤에 어울리는 것은 산책 혹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녁에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밤이 아닌데도 밤이 되는> 또한 저녁에 읽었습니다. 8월에 부는 바람의 속도만큼 더딘 독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3부 ‘곁’까지 읽다가 4부 ‘너’의 앞에서 나는 멈췄습니다. 세상에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고집불통의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저라서, 언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을 수 있을지 몰라 먼저 서평을 씁니다.


언젠가 유어마인드에서 최리외 작가의 소책자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붉은색 1100번 버스는 합정역부터 한강의 물결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달립니다. 푸른 멍 같은  여린 빛 속에서 사람들과 자전거들이 까만 그림자로 서성이는 강변을 30분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이따금 서울 야경을 뽐내기 위한 색색의 조명도 볼 수 있습니다. 차창에 어린 이제 만날 수 없을 이름들의 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소책자 속의 글도 그날 밤의 드라이브도 무척 근사했습니다.  


어떤 작가의 글을 읽고,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이따금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오해입니다. 특히, 제 경우는요. 갑작스러운 얘기입니다만, ‘좋은 부모’를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요. 윤회를 인정하는 가정 하에 불교적 판단으로 보면, 외려 내게 혹독한 시련을 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더없이 좋은 부모를 만났었습니다. 지금의 그분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지나간, 일어난 일의 현상을 분석한 것뿐입니다. 사람은 변하기도, 변하지 않기도 하지요. 그걸 지켜보는 게 ‘살아 있음’의 묘미 중 하나라 여깁니다. 그러니 모쪼록 모두 살아서 긴긴밤을 지나기 바랍니다.


‘다르다’는 왜 슬픔에 속하고, ‘같다’는 기쁨에 속할까요. 그럭저럭 사람과 잘 어울리고, 무난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나는 무척 고고한 인간입니다. 온전히 고고하기 위해 나이스한 인간을 연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선택한 극소수의 사람 외에 내 곁에 누군가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 편입니다. 집단의 힘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개인의 완성을 갈망합니다. 그럼에도 솔직한 글은 견고한 아성(我城)의 건너편을 바라보게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종종 나를 성 밖으로 걸어나가게 합니다.


우리는 어디선가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낭독하는 목소리를 들었고, 유튜브 영상 몇 편을 시청했고, 먼발치에서 소설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차츰차츰 자신의 빛깔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멋진 일입니다. 더 많은 이들이 그 곁에 동참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응원합니다.


변하고 변하는 우주 속에서 다시 마주칠 날도 있겠지요. 가령 ‘언젠가, 공항의 밤에’ 푸른 대합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첫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그때는 저도 변하고, 당신도 변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정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늦은 밤에 잠에서 깨어, 집의 옥상마당에 나온 일이 있습니다. 달빛이 사라진 밤하늘에 기다란 은하수가 흐르는 걸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만날 수 있던 밤들이 그렇게 지나가 버린 것인지…. 글이, 목소리가, 외로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저도 답을 찾고 싶습니다.


202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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