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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Nov 28. 2022

ㅇ+ㅅ+ㅁ

오타 아님!

동그라미, 세모, 네모, 직선, 곡선을 사용해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세요.
(18개. 제한시간 약 15분)



A4용지 3장에는 노란색 정사각형 포스트잇이 각 6개씩 18칸이 붙어있었다.


그림 수업을 듣고 있다. 눈앞에 풍경이나 인물을 보고 따라 그리는 스케치 수업은 아니다.

안 보고 그린다.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을 그린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보면 아는데 딱 맞는 레퍼런스는 없네 싶은 것들. 아니면 아직 본 적은 없는데 보여주고 싶은 상상의 나래들. 내가 보고 싶은 것들. 나도 모르겠는 내 생각들.

수업에서 글자는 금지, 설명도 금지다. 오직 그림으로만 말한다.



뭘 그릴까 하다가, 열림(<>) 닫힘(><) 엘리베이터 버튼이 떠올랐고, 삼각팬티 비키니, 100원짜리 동전, 볼펜, 선글라스... 한 칸에 모든 도형을 다 써야 하는 건 아니죠? 스마트폰, 냉장고… 너무 식상한데? 으 아까 자기소개할 때 광고회사 다닌다고 말하지 말 걸. 괜히 더 창의적으로 그려야 할 것 같잖아! 개기일식,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 태극기 음, 건곤감리 순서가.. 아 맞다 위 아래 위위 아래. 횡단보도와 신호등, 도로 위 뚜껑 열린 맨홀.. 은 좀 너무 갔나? 뭘 그리면 좋을까 떠올릴수록 생각이 막혔고 손도 멈췄다.



수강생들과 그림을 돌려봤고 각자 끌리는 그림을 다섯 장씩 골라 칠판에 붙였다.


명사 / 형용사 / 동사


선생님이 그림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명사를 그린 게 가장 많았다. 평소 생각하는 방식을 알아보는 간단한 심리테스트 같기도 했다. 조금 특별했으면 했던 내 그림들도 명사가 대부분이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꿔라!’ 자기계발서와 강연에서 유행하던 권고가 생각났고,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이름 긴 철학자의 꾸지람도 떠올랐다.

이런..  이제  막힌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실망했다가, 결국 남이 사고하는 방식 레퍼런스 수집 아닌가? 삐딱해지다가   그렇게까지 생각하나, 막힌  알았으면 뚫으면 되고 수집해서   만들면 되지 오히려 좋아 다음  수업도 출석이닷! 다짐으로  수업 소감을 마무리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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