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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씨 Oct 31. 2020

'육아'라는 넓은 바다

살림공부07


다행히도 오후 파트타임으로 마을에서 일하고 있어 오전과 저녁에 연필과 함께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할 수 있다. 시골로 내려오며 살림 꾸리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고통받거나 상처 받는 일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풀어가고자 생각했다.


자연주의출산, 산후조리, 모유수유, 수면교육, 육아템(?) 등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떤 정보를 취하고 어떤 환경을 조성할지는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고할 뿐 선택의 기준이 되진 않는다.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한다고 안심할 수 없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도 유난스러운 거 아닌가(?) 싶었던 건 우리가 하는 선택에 따라 책임지거나 뒤따르는 일들이 얼마나 되는지 참고할만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내 삶을 개척하듯이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쉽게 여기거나 쉽게 결정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어서다. 그리고 아이에 몰두하고 집중하며 보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아이와 우리 부부에게 정서적으로 충만함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모든 첫 경험은 낯설고 당혹감을 가져다준다. 즐겁고 환희에 찬 경험도 되지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감각을 끄집어낸다. 낯선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비슷한 경험을 검색하고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경험이 아니라는 건 위로가 되지만 그렇다고 그 비슷한 경험이 '똑같은' 경험은 아니다. 출산과 육아는 모두 그 자체로 '고유'하다. 모든 아이는 유사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른 속도와 다른 모양으로 자란다. 우리는 고유한 한 생명과 함께할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 '고유의 방법'을 찾고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내가 아무리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육아를 함께한다고 해도 짝꿍의 일이 줄어들진 않는다. 다만 짝꿍이 잠깐 쉬거나 육아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거나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런 시간들이 쌓여 우리 생활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 조정된다. 아이가 태어난 후 빨래를 돌리는 횟수와 양이 몇 배로 늘어나고 더 빈번하게 집 청소를 한다. 반면에 요리는 하기 더 어려워진다. 더운 집이 더 더워지고,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염려하게 된다. 덥고 습한 날씨에 환기도 어려우니 요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식사는 부실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틈나는 대로 음식을 해 먹으려다 보니 쉽지가 않다.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함께 영화, 드라마, 예능을 보던 시간은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고, 아이를 달래고, 재우고 먹이는 시간들로 꽉 채워졌다. 예전에는 내일로 미뤄둘 수 있는 일이었던 '가사노동'이 지금 바로 해야만 하는 가사노동이 되었다.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보다 우리 가정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감각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 세상의 가사노동, 돌봄노동이 고되지만 고달프고 고통스럽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 수고로운 일들을 직접 해내면서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생활을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시장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제시하는 '가치' 그렇게 교환되는 가치보다, 스스로 해내는 힘과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더욱 '가치' 있지 않을까. 어떤 가치보다도 실제적으로 우리 삶을 살피고 돌보는 일을 가치 있게 여겼으면 좋겠다.


 * 8월경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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