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기소개합니다
엊그제 직장에서 MBTI 검사를 유료로 진행했다. 지난 몇 년간 알고 있던 MBTI와는 다른 정체성이 내게 주어졌다. 그 결과에 따르면 나는 16개의 유형 가운데 가장 돈을 못 버는 유형이다.
피식거리며 웃다가 일하는 사이와 사이에 이 사실에 대해 점점 집착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는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어울리는 직업에 상담가, 작가 등이 써 있다고 해도 이런 순간에 위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
종국에는 이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며 이 사실을 농담으로 승화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역시나 많지는 않더라도 내 생활을 위해 내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라고도 생각했다.
언젠가 작가 김영하님은 한 프로에 나와서 “이 검사는 내가 생각하는 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약 친구들에게 검사 항목을 물어본다면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거다.
타인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간극이 우리에게 주는 건 상당히 많을 거다. 혼란과 오해와 재미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작년 옆자리 동료와 매우 잘 지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도 좋은 사람일 수 있었다. 대신 내가 내 MBTI에 큰 관심이 없었던 데에 비해 그는 MBTI로 설명되는 자기 자신을 매우 좋아했다.
지금으로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내 MBTI가 그녀가 최악으로 싫어한다고 말했던 유형이라는 점이다. 이미 시간이 흘렀고 그 동료는 떠났기에 이 사실을 언젠가의 마지막까지 말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나에게 있어 이런 상황은 참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MBTI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건 뭔가 정확히 잘 맞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는 정확히 맞는다고 생각했기에 이 화제를 즐거워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놀라운 점 중 최악으로 싫어하는 사람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람에게 기대가 없다는 게 원인인가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영위하지만 그게 상처받고 주기가 두려워서도 아니다.
비윗살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이럭저럭 편안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어떤 이의 이면에 대해 자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떠올리는 건 그런 거다. 누구에게나 불쾌함을 풍기는 저 사람이 모든 걸 다 내어줄 다정한 애인이 있다는 사실, 자기 몫을 야무지게 챙기는 사람의 바다 쓰레기 줍기, 밖에서 유능한 저 사람이 집에서는 다 먹은 토마토 꼭지를 싱크대에 버리는 습관을 고치지 못해 매번 혼날 가능성.
즉 아주 쓸모없는 상상들이 누군가를 다층적인 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돕는다.
꽤 버릇없는 표현일 수 있지만 나의 하루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귀엽게 바라볼 수도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나의 유약함과 물렁함은 그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상처에서 보호한다. 치열하게 싸우기보다는 내가 홀로 받아들이려는 폭을 넓힌다.
그게 좋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 것이다. 나는 그저,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
다른 방식이 좋아 보이는 때에 최선을 다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고, 지금도 그건 매순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저 깊은 내면에 있는 내 본질을 아주 바꾸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평균소득이 가장 낮다는 MBTI 유형 중 한 사람은 여기 앉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산다.
한편 바라는 바도 있다. 모두를 이해한다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에게만은 혹독하려고 기를 쓰는 어떤 사람도 누군가가 귀여워해 줬으면 하고 말이다. 그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도 당연히 나다.
늘 더 멋져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가 클로징은 올 것이다.
매 순간 노력하긴 하겠지만, 글태이와 현태이의 간극 사이에서 다소 부족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귀여움을 받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낭만이다.
220904 끝.
mbti가 나 자신을 대변해 줄 순 없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하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이번 검사를 통해 저도 mbti 밈을 찾아보고 있는데,
다소 과장해서 표현한 건 있지만 킬링 포인트가 있더라구요. ㅎㅎㅎ
이제서야 본연의 제 자신을 찾은 느낌입니다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주제로 매거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tae.i22 에서 더 자주 소통해요.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