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는 수고로움의 정체
엄마와 단 둘만 같이 있는 날에는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엄마는 식구들이 여럿 있을 때는 외식을 하자고 말해도, 아니라고 한다.
“집에 반찬 많이 있는데, 뭘.”
엄마의 요리는 너무나 충분하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웬만한 식당보다도 맛이 있고, 엄마가 해준 파전은 친구들까지 극찬할 정도다. 고맙다는 말이면 지금껏 나를 자라게 한 엄마의 요리에 충분한 보답이 되는 걸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에게 일부러 외식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는 거다.
“엄마, 우리 귀찮은데 짜장면이라도 시켜 먹을까.”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그럼 엄마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그래, 그럴까? 그러자. 그러자.”
엄마가 나에게 맞춰주는 기색이 있는지 살피다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몹시 기쁘다. 엄마도 딸과 둘만 있을 때는 때로 좀 인간적이 되는 모양이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기 전에 엄마에게 메뉴를 묻는다.
“엄마, 뭐 먹을 거야?”
“너는?”
엄마는 한참을 머뭇대다가 결국 짜장면을 고른다. 아무리 고민해도 매운 걸 못 먹는 엄마는 짜장면이다. 먹성 좋은 엄마를 위해서 탕수육도 말없이 하나 시킨다.
딩동. 짜장면이 도착하면 엄마는 먹으면서 일절 품평한다.
“양파를 많이도 넣었네. 돼지고기는 얼마 없다야. 탕수육 없었으면 서운할 뻔했네. 소스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다 먹고 일어나 그릇을 치운다. 다 먹은 접시를 차곡차곡 포갠 다음 담기 위해 배달 때 함께 온 비닐봉지를 펼친다. 엄마가 가까이 다가와서 말한다.
“이리 내.”
“아니야, 엄마. 다 했어.”
그릇을 담은 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다. 엄마는 그 사이 중국집 그릇을 몽땅 다시 꺼냈다.
“왜? 엄마? 뭐하려고?”
“응, 신경 쓰지 말아라.”
엄마는 중국집 그릇에서 잔반을 덜어내고 접시를 깨끗하게 설거지하고 있다.
“엄마, 안 씻어도 돼. 중국집은 그냥 그렇게 먹는 거잖아.”
엄마는 여전히 내 말은 콧등으로 흘리고는 쓱쓱 싹싹 접시를 물로 헹군다.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먹은 접시는 씻어서 줘야지. 사람이 자기 먹은 밥그릇이 어떤 모양인지 알아야 밥값을 하는 거다.”
내가 아무리 답답해하더라도 엄마는 엄마가 옳다고 여기는 행동을 한다.
취직한 후와 결혼하기 전. 거리낄 게 하나도 없던 시절에 엄마와 나는 단 둘이서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다. 둘이서 내가 취직하고 처음 샀던 경차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호텔 트윈룸을 예약하고 거기서 잤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연신 “내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거냐.”며 하늘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주책이야.”
눈을 흘겼지만 돈이 좋긴 좋았다. 아침밥을 차리는 대신 뷔페에 가서 조식을 먹었다.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셔틀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호텔 루프탑에서 수영을 했다. 엄마에게 수영복 따위 있을 리가 없어서 검정 수영복을 대여해서 엄마는 올록볼록한 배를 자랑하며 사우나를 신나게 했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마다 엄마가 했던 일이 있었다. 이불 정리와 쓰레기통 비우기였다.
“엄마, 호텔에서 아침마다 다 치워줘. 하지 마.”
“그래, 안 할게.”
“엄마, 하지 말라니까.”
“그래, 금방 해.”
엄마는 입으로는 안 한다고 하면서 부산에 머무는 4일 동안 계속해서 아침마다 이불을 정리했다. 하얀 이불을 쫙쫙 펴고 쓰레기를 하나로 모아 봉지로 묶어서 가져가기 편하게 입구에 모아두었다.
엄마는 예전에 우리 집이 갑자기 어려워졌을 때 호텔에서 청소부로 일한 적이 있었고, 아주 가끔 그때에 대해 지금도 이야기한다. 아주아주 일이 힘들었었다고. 체력에 부쳤었다고.
정작 엄마가 그 경험 때문에 호텔 방을 습관처럼 청소하는 건 아니었다. 돈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자리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서비스로 치환한다는 개념이 엄마에겐 생소했던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비용을 지불하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 지도 몰랐다. 그동안 그만큼의 사치는 부릴 수가 없어서 엄마가 이런 상황을 즐기지 못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와 같이 하던 여행의 말미 즈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방 하나 치우는 건 습관처럼 몸에 밴 일이란 걸. 엄마에겐 그저 청소는 살아가는 예의였단 걸.
엄마는 아침에 호텔을 나서면서 만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수고하시네요. 덕분에 편하게......”
그 후로는 나는 엄마가 하는 대로 두어야지 결심했으면서도 또 간섭하고 만다.
엄마는 물기 묻은 손을 수건에 닦고는 새 비닐봉지에 반짝반짝해진 짜장면 그릇을 옮겨 담는다. 그 봉지를 조심스럽게 입구에 내어놓고는 돌아온다.
“덕분에 잘~ 먹었다.”
엄마는 계산도 자기가 했으면서 어딘가를 향해 조심스럽게 인사를 한다. 냉장고를 열고 아무렇지 않게 과일을 깎는다.
나는 얼마나 많이 빚지고 살고 있는가.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마련하지 않고, 자기가 누운 자리를 타인이 대신 정리해주길 바라며, 내가 남긴 흔적을 고스란히 남이 치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컸는가. 이런 생각이 드는 날에 나는 몹시 내가 부끄러워지고 만다.
엄마와 나. 우리 둘은 이토록 다른 사람이다.
-22112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