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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로 Jan 09. 2018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을 위한 건축’을 했는가

아파트의 창시자, 르 코르뷔지에와 우리의 아파트

부모님이 우리 딸 셋을 낳아 기르신 지 만 23년만에 그 어렵다는 ‘내 집 마련’에 성공하셨다. 처음 집을 계약하던 날부터, 지금 살고 있는 집 창에서 멀리 보이는 이사갈 아파트를 아빠는 벌써 ‘우리집’이라고 부르며 하루가 멀다 하고 그 흐뭇한 뒷모습으로 창문 앞에 서서 바라보시던 것도 몇 달. 원래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고 나자 이제는 매일같이 퇴근 후에 그 집을 들렀다 오신다. 나는 거기 뭐 맛있는 거라도 숨겨 놓았냐며 핀잔을 주곤 하나 이제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기 시작한 나는(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 집’에 대한 간절함과 기쁨을 이해할 것도 같다.

요즘 부모님의 모든 관심사는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있는데, 그 때문에 싸우시기도 많이 싸우신다. 어깨 너머로 보아하니 아파트 인테리어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인테리어를 다시 하여 본래 집을 탈바꿈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많이 나오곤 하던데, 사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집을 정말 ‘나의 것’처럼 자유롭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서울이든 부산이든 어딜 가나 아파트의 구조는 거기서 거기다.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내 집인 것처럼 편한 것에는 획일적인 아파트의 구조도 한몫 한다. 거기에, 집집마다, 유행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으나 노란 장판에 천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달린 하얀 형광등은 그 오랜 세월 한국의 아파트를 상징해왔다.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이란, 그 본질적 가치를 넘어 사고 파는재화인 동시에 정부가 예의주시하는 대표적 투기 대상이기도 하다. 이 집, 저 집 전세로 전전하던 우리가족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이 재화를 되팔 것을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이 재화가 매력적일 수 있도록 유지해야 했고, 따라서 우리의 입맛대로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이었으며, 집 안에서 우리의 작은 행동(어린 동생의벽 낙서, 액자 걸기 등)이 재화의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새 주거 공간의 본질적 가치(입주민의 편안한 생활을 얼마나 보장하는가)와 투자 가치(미래의 거래로부터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얼마나 되는가)가 전도된 상황이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마포아파트 (출처: 국가기록원)

아파트. 한국의 아파트는 우리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하다. 196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서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대다수의 국민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정부는 주택문제를 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가 창시한 개념인 집합 주택 계획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 아파트(1962년 준공, 1991년 재건축 위해 철거.)는 6층 10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수세식 화장실과 발코니 등 서구형 양식 구조를 따르고 있었다고 한다.[1] 마포 아파트는 아파트에 고급 주거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며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는데, 한국의 도시 풍광을 혁명적으로 바꾼 이 프랑스 건축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에 필로티 양식[2] 을 도입한 아파트의 형태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 또한 르 코르뷔지가 빌라 사부아(1929~31)나 스위스 학생회관(1930~32), 마르세유의 유니테다비타시옹(1952)에 적용하고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하나로 삼은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베를린 유니테 (Proto: A.Savin)

2015년은 르코르뷔지에가 사망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나는 마침 1920년 프랑스로 귀화한 서른 세 살의 르 코르뷔지에가 정착한 프랑스 파리에 있었는데, 퐁피두 센터에서는 그의 회고전이 열리면서 다시 한 번 이 유명한 건축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다룬 책들이 출간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요지는 그가 파시스트가 아니었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르 코르뷔지에의 유명세는 그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건축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1930년대에는 그가 유럽의 유구한 건축의 전통을 부정하는 모더니즘의 선구자였기에 비난을 면치 못했으며(돌, 나무와 벽돌을 주요 건축 재료로 삼았던 유럽에서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그들에게 얼마나 흉물스럽게 다가왔을지 짐작이 간다.), 모든 모더니즘의 미덕을 거부하는 198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 안에서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3] 20세기 프랑스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앙드레 말로는 르 코르뷔지에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떠한 건축가도 건축의 혁명을 이처럼 강하게 의미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그 누구도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끈질기게 욕먹은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광은 모욕 속에서 지대한 광명을 찾는다.” 

르 코르뷔지에 (출처: Les Couleurs Suisse AG)

사람에 따라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비쉬 정부 가담, 극우파 인사들과의 관련성을 단순히 거대 자본과 정치적 지원을 필요로하는 건축가로서의 직업적, 수단적 선택일 뿐이었다고 옹호하기도 하며, 이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가 ‘인간을 위한’, 인류애적 차원의 건축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먼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의 기저에는 전쟁으로 망가진 도시를 마치 치료되어야 마땅한 병적 존재로 보는 전제가 깔려있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겉모습과 개미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집단 주택은 그 규모와 차가운 인상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며, 나치 수용소를 떠오르게 한다는 지적도 그리 생뚱한 것은 아니다. 넘쳐나는 도시의 사람들을 마치 크레파스 정리하듯 쓸어 담아 미관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접근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모듈러 이론도 마찬가지다. 르 코르뷔지에는고층 공동 주택을 설계하면서 신체의 척도와 비율을 토대로 황금분할을 찾아 모듈러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며 신장 175cm(미국 방문 후 183cm로 수정)를 기준으로 사람이 팔을 벌리고 움직일 때 불편함이 없는 ‘이상적’ 건축 비례를 도출한다. 진정으로 인간 개개인을 생각하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보기 어려운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이론이다. 그를 스승 삼으려는 학생들에게 오만하고 매몰차게 대했다는 증언, 조용하고 음침한 성격, 일에 있어서만은 욕심 많고 열정적이었다는 그의 태도 또한 르 코르뷔지에가 내게 박애주의자라기보다는 기회주의적인 천재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사실 한편으로는 아파트 평균 수명 30년인 한국에서 그저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부숴지고 다시 세워지는 삶의 공간들을 보고 있자 하니, 그 안타까움에 아파트의 창시자를 공연히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한국에도 ‘백년주택’[4]이 시공된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이는 분명 좋은 소식이다. 다음 세대는 비교적 적은 부담으로 아파트를 ‘나에게 꼭 맞는’ 집으로 바꿀 수 있기를.




[1]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보는 생활사”, 제16장.(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1499&cid=57618&categoryId=57622)

[2] 1층을 건물 상부를 지탱하는 기둥만으로 비워두어 주차공간, 보행자의 통로 등으로 사용. 최근 아파트에서는 행인 소음, 사생활 문제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아랫집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자녀를 둔 수요자 사이에서 로열층보다 인기를 끌기도 함.

[3] Jean-Louis Cohen, “Le Corbusier, facisteou séducteur ?”, Le Monde, 2015.06.03 (http://www.lemonde.fr/idees/article/2015/06/03/le-corbusier-fasciste-ou-seducteur_4646539_3232.html#VUpgkiUzqljpXz6J.99)

[4] 이윤희 기자, LH '백년 주택' 장수명주택 실증단지직접 시공, 이코노믹 리뷰, 2017.02.10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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