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우는 저를 본 친정엄마가
강제로 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어요.
차에 태워 멀리 가서
파스타 한 그릇을 사주셨어요.
"뭐 때문에 그렇게 운 거야?"
"몰라..
그냥 너무 무서워..
이런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 날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며칠째 씻지도 못하고
옷에서는 모유 비린내가 나고
며칠째 갈아입지 않아 흘린 반찬 자국 그대로..
더러웠어요.
얼굴도 형편없었고요.
"왜죠?
모유 수유하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면서요
왜 몸무게는 더 늘어난 거죠?"
혼자 아무리 질문해도 답은 찾을 수 없었어요.
연예인들은 출산 한 달 만에 예전 몸매를 되찾던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숱이 그렇게 많던 머리가 스트레스였는데,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휑한 앞머리..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 아이에게 집중해도 샘솟지도 않는 사랑..
나에게도 조금은 시간을 줘야겠다.
일단 하루 한 번 거울이라도 보자.
그리고 밖으로 나가볼까???"
그렇게 충동적으로 나를 돌보기로 결심했어요.
언제 또 정신줄을 놓을진 모르지만
'조금씩 천천히 해보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울을 보지 않고,
씻지도 않고,
나가지 않은 것도
육아서 영향이 커요.
"
엄마가 피곤에 쪄들고,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육아를 잘하는 증거다
어느 육아서 중 "
물론 그 맥락은
엄마가 육아에 집중하면
'꾀죄죄한 모습은 당연한 거다'
그러니 '괜찮다'라는
위로의 말이었어요.
문맥 따위 보지 못했던 저는
덜컥 그러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나'에게 전혀 상의도 하지 않은 채로요.
또 아이를 위해서라면
백일 정도는 현관 밖을 나가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둘이서 집에 꽁꽁 숨어있었지요.
초반에 저는 이 생각이 너무 강했어요.
'아이를 무조건 잘 키워야 한다'
아이를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몰랐죠.
그 말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걸요.
'아빠가 거울을 보면 깔끔한 거고
엄마가 거울을 보면 사치스러운 거고
시댁에 갈 땐 시어머니 눈치 보여 수수하게 입고
친정에 갈 땐 친정엄마 마음 아프니 꾸며야 한다.'
이런 시각이 깔려있는 사회
그대로 따르는 나
화가 났습니다.
그전에 읽던 육아서는 다 덮었어요.
그리고 실용적인 육아서를 펼쳤어요.
너무 뜬 구름 잡는
현자 같은 말만 하는 육아서는 다 덮었어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모유 수유하는 법
수면 교육하는 법
이런 책을 팠어요.
모유수유가 힘들 땐
분유를 먹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수면교육도 애착육아파에서는
몹시 반대하는 이론인데요.
저도 어느 정도 애착육아를 찬성했기에
이 야단법석을 떨었잖아요??
그런데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어쩝니까..
애엄마가 죽으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아이'잖아요?
나부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비행기 추락 안내에서도
구명조끼는 엄마가 먼저 착용해야 하잖아요.
아이를 돕기 전에 엄마가 산소마스크를 먼저 써야
아이를 구할 수 있어요.
육아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나'로 살아있어야
아이를 구할 수 있어요.
그렇게 저는 '수면교육'도 혹독하게 했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우울음 보이면
바로 안고
젖 물리고 둥가 둥가 했었는데...
나로 살기로 결심한 후론
아이가 울면,
그 울음이 무엇을 요구하는 울음인지 잠깐 지켜봤습니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
아이의 울음에 대한 반응
조금씩 달라졌어요.
어차피 안아줘도 울고, 젖 물려도 울어요.
물론 울 때 안아주면
제가 위안이 됐어요.
그런데 울 때 안아주지 않으면
미안하고, 초조했어요.
그래도 조금씩 다른 반응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를 보았습니다.
세수를 했어요.
얼마 만의 세수인지...
진짜 세수하는 것조차
이토록 낯설다니....
한술 더 떠서
선크림을 바랐어요.
그리고
립글로스를 발랐죠.
어색했어요.
허옇게 뜬 얼굴에
번쩍번쩍한 걸 발랐는데
전혀 조화롭지 않았죠.
그래도 꾸역꾸역 하기로 했어요.
임부 레깅스에
티셔츠 차림이었지만
스카프도 한번 둘러봤어요.
예전 옷 맞는 게 없으니
스카프가 가장 만만하게
스타일 변화 줄 수 있는 액세서리더라고요.
딱 요만큼 꾸미고
밖을 나갔습니다.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햇빛을 받기 위해
살기 위해
매일 나갔습니다.
큰 일 나지 않더라고요...
아기띠 해볼 만하더라고요.
동네를 돌았습니다.
다니는 건 상관없는데
수유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해졌어요.
수유 텀이 2시간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정말 잠깐의 외출을 끝내고 또 집으로 들어가곤 했어요.
그 잠깐이 엄청 도움이 됐어요.
무언갈 해낸 묘한 성취감이 생기더라고요.
왜 그런 말은 없었을까요.
'엄마도 거울을 봐야 한다.
엄마인 당신 먼저 돌봐야 한다'고요.
이젠 제가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해줘요.
우리 먼저 살아요.
그래도 돼요.
그래야 내 아이가 살아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