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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포크 Oct 21. 2019

아빠가 거울을 보는 건 깔끔한 거고, 엄마가 거울을 보

하염없이 우는 저를 본 친정엄마가

강제로 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어요.

차에 태워 멀리 가서

파스타 한 그릇을 사주셨어요.


"뭐 때문에 그렇게 운 거야?"


"몰라..

그냥 너무 무서워..

이런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 날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며칠째 씻지도 못하고

옷에서는 모유 비린내가 나고

며칠째 갈아입지 않아 흘린 반찬 자국 그대로..

더러웠어요.

얼굴도 형편없었고요.


"왜죠?

모유 수유하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면서요

왜 몸무게는 더 늘어난 거죠?"


혼자 아무리 질문해도 답은 찾을 수 없었어요.

연예인들은 출산 한 달 만에 예전 몸매를 되찾던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숱이 그렇게 많던 머리가 스트레스였는데,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휑한 앞머리..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 아이에게 집중해도 샘솟지도 않는 사랑..

나에게도 조금은 시간을 줘야겠다.

일단 하루 한 번 거울이라도 보자.

그리고 밖으로 나가볼까???"


그렇게 충동적으로 나를 돌보기로 결심했어요.

언제 또 정신줄을 놓을진 모르지만

'조금씩 천천히 해보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울을 보지 않고,

씻지도 않고,

나가지 않은 것도

육아서 영향이 커요.


"

엄마가 피곤에 쪄들고,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육아를 잘하는 증거다

어느 육아서 중 "


물론 그 맥락은

엄마가 육아에 집중하면

'꾀죄죄한 모습은 당연한 거다'

그러니 '괜찮다'라는

위로의 말이었어요.



문맥 따위 보지 못했던 저는

덜컥 그러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나'에게 전혀 상의도 하지 않은 채로요.


또 아이를 위해서라면

백일 정도는 현관 밖을 나가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둘이서 집에 꽁꽁 숨어있었지요.



초반에 저는 이 생각이 너무 강했어요.

'아이를 무조건 잘 키워야 한다'

아이를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몰랐죠.

그 말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걸요.





'아빠가 거울을 보면 깔끔한 거고


엄마가 거울을 보면 사치스러운 거고


시댁에 갈 땐 시어머니 눈치 보여 수수하게 입고


친정에 갈 땐 친정엄마 마음 아프니 꾸며야 한다.'




이런 시각이 깔려있는 사회


그대로 따르는 나


화가 났습니다.






그전에 읽던 육아서는 다 덮었어요.


그리고 실용적인 육아서를 펼쳤어요.






너무 뜬 구름 잡는


현자 같은 말만 하는 육아서는 다 덮었어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모유 수유하는 법


수면 교육하는 법


이런 책을 팠어요.




모유수유가 힘들 땐


분유를 먹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수면교육도 애착육아파에서는


몹시 반대하는 이론인데요.


저도 어느 정도 애착육아를 찬성했기에


이 야단법석을 떨었잖아요??


그런데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어쩝니까..


애엄마가 죽으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아이'잖아요?


나부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비행기 추락 안내에서도


구명조끼는 엄마가 먼저 착용해야 하잖아요.


아이를 돕기 전에 엄마가 산소마스크를 먼저 써야


아이를 구할 수 있어요.




육아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나'로 살아있어야


아이를 구할 수 있어요.




그렇게 저는 '수면교육'도 혹독하게 했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우울음 보이면


바로 안고


젖 물리고 둥가 둥가 했었는데...


나로 살기로 결심한 후론


아이가 울면,


그 울음이  무엇을 요구하는 울음인지 잠깐 지켜봤습니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


아이의 울음에 대한 반응


조금씩 달라졌어요.




어차피 안아줘도 울고, 젖 물려도 울어요.


물론 울 때 안아주면


제가 위안이 됐어요.


그런데 울 때 안아주지 않으면


미안하고, 초조했어요.




그래도 조금씩 다른 반응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를 보았습니다.








세수를 했어요.


얼마 만의 세수인지...


진짜 세수하는 것조차


이토록 낯설다니....




한술 더 떠서


선크림을 바랐어요.


그리고


립글로스를 발랐죠.


어색했어요.


허옇게 뜬 얼굴에


번쩍번쩍한 걸 발랐는데


전혀 조화롭지 않았죠.


그래도 꾸역꾸역 하기로 했어요.






임부 레깅스에


티셔츠 차림이었지만


스카프도 한번 둘러봤어요.


예전 옷 맞는 게 없으니


스카프가 가장 만만하게


스타일 변화 줄 수 있는 액세서리더라고요.




딱 요만큼 꾸미고


밖을 나갔습니다.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햇빛을 받기 위해


살기 위해


매일 나갔습니다.






큰 일 나지 않더라고요...


아기띠 해볼 만하더라고요.


동네를 돌았습니다.


다니는 건 상관없는데


수유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해졌어요.


수유 텀이 2시간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정말 잠깐의 외출을 끝내고 또 집으로 들어가곤 했어요.




그 잠깐이 엄청 도움이 됐어요.


무언갈 해낸 묘한 성취감이 생기더라고요.




왜 그런 말은 없었을까요.


'엄마도 거울을 봐야 한다.


엄마인 당신 먼저 돌봐야 한다'고요.






이젠 제가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해줘요.

우리 먼저 살아요.

그래도 돼요.

그래야 내 아이가 살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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