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성장

성장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갑자기 나의 성장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갑자기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어느 순간과 상황에서 알아차렸을 뿐 사실 갑자기는 아닐 것이다. 내가 버티고 견디며 보낸 시간들이 나를 자라게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알아차리는 순간은 늘 변화가 있을 때이다. 어떤 연유로든 관성 밖으로 나왔을 때,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할 때 나의 성장을 알아차리게 된다. 최근에 회사에 팀의 변화가 생겼고, 걱정했지만 (사실은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별로 미련이 없기에 걱정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 변화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요즘은 이전보다 꽤나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다. 

1년 전, 나의 의지로 익숙한 곳을 나와서 크게 한 걸음 걸어 이 곳에 왔을 때 난 사실 많이 쫄아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 지켜왔던 것, 인정받았던 것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거였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정석적인 가르침과 경험없이 어찌저찌 얼렁뚱땅 지금 하는 일을 이어오게 되었다는 자격지심 같은게 있었다. 나름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짬으로 떵떵거리며 일했지만 그 세계가 특수하여서 혹은 첫 회사 였기에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곳에 와서는 늘 긴장하는 상태였고 모른다고 하는게 자존심이 상해서 어떤 말도 잘 할 수 없었다. 당시의 팀이 너무 한 영역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 많아 더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나의 망상이었고, 사실은 이 세계 어디에도 정석 같은 것은 없었다. 나에게 없었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는 어디서나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눈치가 빨라 상대방을 빠르게 분석해서 영리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줄 알고, 내 영역에 있어서는 논리적인 생각과 의견을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거면 된 것이었다. 기술적 이해도와 회사마다 다른 문화는 배우고 터득해 나가는 것이며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1년 일한 사람이나, 10년 일한 사람이나 변화가 생긴다면 적응하고 배우는 것은 무조건 해야되는 일이었다. 이런 당연한 생각을 최근의 변화로 깨닫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팀이 세팅되고 나의 책임과 알아야 할 영역이 넓어지자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더 책임감있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자율과 책임이 보다 주도적으로 주어질 때 더 생기가 돌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근 1년 동안 나의 망상과 함께 우연히 녹녹치 않았던 업무 환경에 꽤나 수동적이고 생전처음 겪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조금씩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또 털어낸 만큼 나는 성장했다. 나는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정확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곤 할 순 없겠지만 시야와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쉽게 질리고 흥미를 이전보다 빠르게 잃는 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는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기에 문제없다. 또 헤쳐나가는 법을 배워가겠지.

한 동안 대기업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기계 부품처럼 느껴져 무기력할 때도 있었는데, 한결 상황이 나아지고 또 성장하게 되니 좋은 점도 많았다. 일단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범국민이 사용하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등에 엎고 서비스를 한다는 것에는 확실히 이점이 있다.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함께 해보자고 하는 파트너들도 많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 일이 확장되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할 때도 협상이 꽤나 용이하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쓰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실감할 수 있는 영향력과 파급력도 크다. 더 디테일하고 완성도있게 많은 것들을 돌보며 서비스를 해보는 경험은 늘 있는 행운은 아닐 것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직무에 전문성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멋진 부분이 있다.

어쨌든간 나는 계속 일을 할 것이고 다양한 분야와 환경에서 경험을 해보고 싶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일을 잘 배워나가고 싶다. 다행히도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달라진 환경에서 잘 배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괜찮다. 1년 여 전 큰 걸음을 걸어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나서 버티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떤 경험이든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앞으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데 돈과 시간과 마음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