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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Jan 06. 2021

vol. 68 - 가난의 평범성

오늘 아이들 고모가 장난감을 두 개 사왔습니다. 움직이는 토끼와 강아지 장난감이었습니다. 구성물도 몇 개 있었기에 포장이 컸습니다. 각종 끈과 종이로 단단히 고정하고 테이핑한 박스가 2개. 내용물을 제하니 쓰레기가 한 짐이었습니다. 상자를 버리러 집 앞에 나갔는데 어제 버린 박스 더미가 아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시청에서도,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가져가지 않은 것입니다. 겨울과 코로나가 한꺼번에 찾아온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을 본 후 재활용 쓰레기가 그냥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저것을 가져가 생계를 이을 걸 생각하면, 애써 찾아 다니느라 고생하지 말고 한 분만 지정해서 드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나마 안정성을 확보해 드리고 싶달까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겠지만. 


한편, 재활용품을 줍는 사람들이 값을 받기 위해 찾는 ‘고물상’은 건축법상으로 불법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주거지역 근처에 있어서는 안되는데, 이게 없으면 폐기물 처리 수요를 다 감당할 수도 없고, 기존에 장사하던 분들을 당장 나가라고 할 수도 없어서 법의 사각지대 안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고물상’이라도 없으면 재활용 쓰레기 수집하는 노인들이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벌 수가 없으니 사회의 역할을 암묵적으로 대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가난의 문법>을 읽고 있으면 ‘가난’이 내게서 멀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도 언제든 폐지 줍는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라고 보통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이 책을 보면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가난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운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자립과 자활만 외칠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회보장을 넓고 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구성원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의 문법>이란 어쩌면 ‘가난의 평범성’을 인지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 구조 하에서는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드러난 가난의 뿌리를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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