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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Mar 04. 2016

《당신에게 몽골을》::스물여덟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물여덟 번째 기록 - 바람 따라

 

   ‘아……. 도저히 못 가겠다.’  

  숨이 턱턱 막혔다. 산둔은 그야말로 모래사막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젊은 날과 같았다. 모래는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고 나는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앞서 가던 대기 언니와 은선 언니는 뒤처진 나를 위해 멈추어 주었고 각자의 숨을 골랐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가야 하는 걸까.

  걸어 갈수록 경사가 심해졌고 모래바람도 거세게 불어왔다.

   「하니, 은선! You can do it! You are the best!」

   「…….」

   「…….」 

  대기는 힘도 안 드나 보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려 해도 온 게 아까워서 그러지도 못 한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진짜 저 고개를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망의 고지에 도착해서 걸터앉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해냈다는 기쁨, 포기하지 않았음, 멋진 풍경, 내 생애 최고의 해 질 녘…….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함께 올라온 은선 언니도 어떤 울음을 토해냈다. 난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하고 이런 기쁨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해가 넘어가는 길에 함께 했다. 한국에서 봐온 우아한 해넘이와는 달리 고비사막에서의 해넘이는 아주 강렬했다. 끝까지 맞서 싸운 전사(戰士)가 맞이하는 최후처럼 그의 기운을 마구 뿜어냈다. 

  올라온 길과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너무나 가벼웠다. 모래가 만들어낸 물결 모양이 신기해서 바닥만 쳐다보고 갔다. 조금 더 가다 보니까 모래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람이 만들어낸 바람의 모습임을 깨달았다. 아까 고지에서 들려온 소리도 바람의 흔적임에 틀림없다. 어쩜, 몽골은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다. 같은 모습 하나 없고 자연을 거스르는 일 하나 없다.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부터 제 머리를 드러내는 달의 모습도 예술이었다.

  오늘 머무는 게르에는 전구가 따로 없어서 촛불을 켜놓고 지냈다. 은선 언니가 챙겨 온 맥주 덕분에 풍요로운 저녁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게르 문을 열어두고 그 앞에 간이 의자를 놓고 별들을 친구 삼아 한 잔 들이켰다. 이런 행복도 이런 행복이 없다. 이렇게 매일매일 지는 해를 보고 뜨는 별을 바라보니까 더할 나위가 없다. 나의 마지막 날을 정할 수 있다면 오늘 밤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인생에 바라는 것은 지는 해, 뜨는 별, 함께 하는 사람, 맥주 한 잔 정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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