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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적 독립운동가 Sep 07. 2020

내가 투자한 바이오벤처는 대박일까 쪽박일까?

바이오인더스트리 밸류에이션

[바이오 인더스트리 밸류에이션, 김명기, 출처: Yes24]


'바이오 인더스트리 밸류에이션'은 제목 그대로 바이오 인더스트리 내의 기업들을 밸류에이션 (Valuation), 즉 가치평가 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업 가치평가의 이유를 '투자'를 잘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 인더스트리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 책은 본인이 근무하고 있거나 취업하기를 원하는 기업의 현재 상태와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특정 기업에 몸을 담고 일을 한다는 것도 투자의 한 종류라 생각한다면 같은 이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개별 기업의 가치평가 방법을 소개하기에 앞서 바이오 인더스트리 전반에 걸친 가치평가 결과를 언급합니다. 저자는 의약품의 판매가격 결정 방법, 생산원가, 지속 가능성, 성장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어 바이오 인더스트리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또한 저자는 거대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그린 바이오, 가격 경쟁력 시장인 화이트 바이오 분야와는 달리, 아직 신규 진입자에게 문이 열려있는 레드 바이오 분야가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바이오산업, 출처: CJ 제일제당]


이어서 개별 기업의 가치평가 방법을 high-level 수준에서 설명합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해당 기업이 개발하고자 하는 의약품의 미충족 의료 수요 (Unmet Medical Needs), 기술적 우위와 사업 모델 (동물 모델, 임상 가능성 포함), 그리고 해당 기업의 경영진 (과학자문위원회, scientific advisory board, 이하 SAB 포함)을 언급합니다.


항체 의약품, 항체약물복합체, 제네릭 의약품 시장별 밸류에이션 포인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항체 의약품 밸류에이션의 핵심은 여전히 '새 항체 찾기'이다. 항체약물복합체 (antibody drug conjugate, ADC)의 핵심은 링커 기술이다. 제네릭 의약품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기업이 테바의 전략을 동남아시아 파머징 마켓에 적용할 수 있다면 밸류에이션이 높아질 수 있다.


항체 의약품 시장에서는 새로운 면역관문 조절 표적을 탐색하는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으며, 에이비엘바이오 등 이중 항체 기술을 내세운 기업들도 임상 시험 단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임상 시험 단계별 결과에 따라 기업별 밸류에이션은 달라질 것입니다. ADC 링커 기술로 밸류에이션을 높여가고 있는 기업의 좋은 예는 고유 ADC 플랫폼 기술 '콘쥬올 (ConjuALL)'을 보유한 레고캠바이오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셀트리온이 다케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18개 제품군 권리자산을 인수한 건이 파머징 마켓으로의 진출을 도모하여 밸류에이션을 높인 사례가 되겠습니다.


바이오 인더스트리 밸류에이션의 총론 격인 책입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밸류에이션 평가 방법을 국내 바이오벤처 및 바이오텍에 적용시켜 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 인더스트리 밸류에이션' 서평 작성 중 '국가항암신약개발사업단' 사이트의 '항암신약동향' 메뉴를 찾았습니다. 알찬 자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항암제 개발 동향 파악에 많은 도움이 니다.




p.24

CMC : Chemistry / Manufacturing / Control의 약자. 의약품의 원료와 완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개발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임상시험에 배치한다. 그런데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려면 임상시험에 사용할 약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CMC 전략이 필요하다. CMC 전략을 잘 짜면 신약이 개발되어 판매가 될 때의 생산공정 최적화 방법에 대한 데이터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다.

CMC의 주요 내용은 API 구조 분석, API 합성 방법 개발, 분석 방법 개발, 안정성 시험, 대량생산공정 확보, 안정정보 확보 등이다. cGMP 시설이 부족한 한국이나, 외국이라고 하더라도 소규모 바이오벤처는 임상시험에 필요한 CMC를 CMO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CMC 문제로 임상시험이 예상보다 길어지게 되면, 전체 개발 과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신약개발 초기부터 CMC에 대해 고려하고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다.


p.34

기술적 우위를 검토할 때는 임상 가능성도 확인해야 한다. 패혈증 (sepsis)은 감염 후 며칠 만에 환자가 사망하는 급성질환이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면역력이 떨어지면 패혈증에 걸릴 위험도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을 비롯해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곳에서는 패혈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글로벌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패혈증 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갖는다.

패혈증 치료는 과정이 복잡하다. 패혈증 의심 환자가 발생하면, 의료진은 고단위 복합 항생제를 집중 투여한다. 패혈증 초기에 이런 항생제 투여 치료를 받으면 생존 확률이 다소 높아지지만, 감염 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효과가 낮아져 의료진은 긴장한다.

치료제가 간절한 질병이니 패혈증 신약을 개발하기로 한 기업이 있다. 연구 끝에 타깃을 찾았고, 동물실험도 거쳤다. 이제 실제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단계다. 그런데 쉽지 않다. 일단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구하기 어렵다. 임상시험에 사용할 약을 가지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환자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찾아도 시험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환자에게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패혈증 진단이 내려지면 기존에 사용하던 항생제 등을 처방받는다.

문제는 더 있다. 임상시험 약을 환자에게 함께 투여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해보자. 다행스럽게도 환자가 살아났다면 임상시험으로 투여한 약 때문에 살아났는지 기존 항생제 때문에 살아났는지 알기 어렵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임상시험용 신약부터 투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쩌면 더 위험할지 모른다. 이런 임상시험용 신약으로 위험한 패혈증 감염 환자 치료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효과가 낮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환자를 살려본 경험이 있는 기존 약을 처방할 것인가? 의료진과 환자의 결정이 쉽지 않다.


p.36

타깃, 동물모델, 임상시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이오마커'가 주목받는다. 바이오마커는 '어떤 특징을 가진 환자에게 어떤 치료제를 처방했을 때 효과가 있을 것인지를 확인하는 표지 기술'이다. 현대 의학과 생명과학은 질병과 환자를 점점 더 세밀하게 구분하려고 한다. 질병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면서, 각각의 특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가능해진 일이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달해, 10만 원 정도면 몇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유전자 서열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질병과 관계된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어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능해졌다.

이런 기술적 진보를 이용해 어떤 치료제에 효과를 보이는 특징적인 질병과 특징적인 환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바이오마커 개념이 중요해졌다. 만약 질병과 환자의 분류, 타깃 선정, 동물모델 설계, 임상시험 대상 환자 선정까지 바이오마커를 적용할 수 있다면 더 빠르게 개발한,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신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마커는 임상시험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임상 3상은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신약의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다. 그런데 같은 질병을 앓고 있어도 환자들은 모두 같지 않다. 개발한 신약이 잘 듣는 환자가 있고 잘 듣지 않는 환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다면 임상시험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효과가 있는 환자에게만 처방해 불필요한 치료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마커가 밸류에이션에 미치는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p.47

바이오 산업은 농업 분야의 그린 바이오, 생물 공정 분야의 화이트 바이오, 의약품 분야의 레드 바이오로 나눈다. 기득권이 강한 그린, 화이트 바이오와 달리, 레드 바이오는 신규 진입의 가능성이 좀 더 높다.


p.50

그린 바이오는 거대 자본과 이미 주인이 있는 혁신 기술이 지배하는 시장, 화이트 바이오는 가격 경쟁력 시장이다. 그리고 현대 생물학을 바탕으로 바이오 신약을 만드는 레드 바이오는 신규 진입자에게 문이 아직 열려 있는 '독점 기술 시장'이다. 이는 현대 생물학이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한 지적 재산권의 독점성이 법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p.53

바이오 의약품은 좋은 약이지만 설계와 제작이 모두 어렵다. 아직까지 현대 생물학은 몸속 단백질의 기능 대부분을 알지 못한다. 케미컬 의약품은 적당한 화학 합성물을 만들어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부작용 대비 효과가 좋으면 약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바이오 의약품은 해당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알고 생산해야 한다.

생산도 문제다. 화학 물질은 합성 방법을 개발하고, 공정화 과정에서 수율을 관리하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오 의약품은 대부분 덩치가 크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합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특정 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배양해, 해당 세포가 단백질을 생산하게 만들고, 이를 다시 분리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p.54

대부분의 단백질은, 정확하게 기능을 발휘하려면 단백질 합성 이후에 변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 가운데는 당이 사슬 모양으로 단백질에 붙는 과정도 있다. 단백질인 바이오 의약품도 환자 몸에서 기능하려면 단백질 표면에 특정한 당이 사슬 모양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 이를 '번역 후 변형' (post translational modification)이라 부른다. 원핵생물인 대장균에서 일어나는 당의 연결과 진핵생물 세포에서 일어나는 당의 연결이 다른데, 대부분의 바이오 의약품은 진행생물 세포에서 일어나는 당사슬 연결 과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면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사람이다. 연구자들은 바이오 의약품 생산에 대장균 대신 햄스터 난소에서 유래한 세포 (Chinese Hamster Ovarian Cell, 이하 CHO 세포)를 비롯한 다양한 바이오 의약품 생산용 세포주를 개발했다.

CHO 세포는 쥐에서 유래한 진핵생물 세포라 당 사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CHO 세포는 암세포와 비슷해, 스스로 죽지 않는 세포다. 대부분의 세포는 몇 차례 분열하면 죽는데, CHO 세포는 그렇지 않다. 관리를 잘 하면 죽지 않고 계속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러 모로 유용하지만 단점도 있다. CHO 세포는 배양 기간이 길다. 최소한 15,000리터 이상 되는 바이오리액터를 채울 수 있을 만큼 배양해야, 실질적으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 기간만 대략 6주 정도 걸린다. 대장균과 비교하면 대략 10배 정도 오래 걸린다. 배양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영양분도 대장균에 비해 100배 이상 많이 들어간다.

(...)

바이오 의약품은 설계와 생산이 모두 매우 어렵다. 현재 생물학의 발전 수준으로는 치료제로 만들기 원하는 모든 바이오 의약품을 설계하고 제작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레드 바이오가 기회의 땅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전세계적인 제약기업의 거대한 연구실과 한국의 어느 생물학과 교수의 작은 연구실 모두, 현재까지 밝혀진 비슷한 수준의 과학적 성과만을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생물학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여전히 새로운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작은 발견 하나 새로운 지식 하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다. 레드 바이오 시장은 아직까지는 열려 있다.


p.60

유전자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병은 치료가 불가능했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기능을 못하는 유전자를 대체해 환자를 치료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여러 다른 조직 세포에는 모두 같은 유전자가 들어 있다. 그런데 각각의 조직이 다른 이유는 유전자가 필요한 부위에서 필요한 만큼 기능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수포성 표피박리증 (EB)은 환자에게 선천적으로 피부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는 희귀 질병이다. 몸을 보호하는 피부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환자는 유아기에 사망한다. 수포성 표피박리증의 원인이 유전자의 결핍이라면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유전자를 이식해주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세포에는 유전자가 있지만 피부에만 문제가 있으니 피부세포 유전자만 치료하면 된다. 즉 유전자 치료제에서의 밸류에이션 포인트는 '전달'이다.


p.64

의료 서비스 산업과 비교해 레드 바이오, 즉 바이오 의약품 산업은 전 세계 시장 점유가 가능하다. 2017년 기준 2,540억 달러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FDA로 대변되는 북미 시장이 40%, CE와 EMA로 대변되는 유럽 시장이 20%, PMDA를 통과하면 진출할 수 있는 일본 시장이 10% 정도로 이 세 곳의 시장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각 시장의 지적 재산권 현황을 아는 것은 신약개발 산업 전체에서 중요한 밸류에이션 포인트다.


p.70

버드나무 껍질에 열을 내리고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열을 내리고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인지 궁금해 하고 그 물질만 따로 추출하거나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비슷한 길을 걷던 동양과 서양의 약이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런 종류의 호기심과 행동의 차이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동양에서 약의 기원이 5,000년 전으로 올라간 것 못지않게, 서양에서도 약의 기원은 오래 되었다. 해열 진통제로 쓰고 있는 아스피린에 대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는 버드나무 껍질이 열을 내리고 고통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신농의 한약이나 파피루스에 적힌 버드나무 껍질은 근대 이전의 약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동양과 서양은 다른 길을 걷는데, 약도 마찬가지였다. 1829년 이탈리아의 화학자 라피엘 피리아 (Raffaelle Piria)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해열 진통 효과가 있는 살리실산 (Salicylic acid, C7H6O3)을 분리했다. 1897년 독일 화학 회사 바이엘 (Bayer)의 연구원이었던 펠릭스 호프만 (Felix Hoffmann)은 살리실산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1899년 3월 6일, 살리실산의 제조 특허가 등록되었고, 최초의 케미컬 합성 의약품 아스피린이 탄생했다.


p.74

- 타깃과 스크리닝

신약개발의 시작은 질병이다. 생물학적으로 질병을 '생체 내 조절 과정에 균형이 깨진 것'이라 정의한다면, 생체에는 다양한 조절 작용이 있을 것이다. 이 조절 작용이 작용하지 않으면 균형이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진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어딘가를 조절하려는 물질이 의약품이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조절의 타깃 (Target)이다.

(...)

타깃은 밸류에이션과 직접 연결된다. 암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한다면 어떤 타깃을 잡고 있는지 검증해야 밸류에이션을 추정해볼 수 있다. 초기 조절 작용을 타깃한다면 무너진 불균형이 적으니 병을 상대적으로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조절의 변화가 앞으로 어떤 일을 일으킬지 정확하게 모른다. 어쩌면 커다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즉 후기 조절 작용을 타깃한다면 잡아야 할 불균형이 너무 크다. 병이 이미 깊은 상태이니 병 자체를 잡는 것이 문제다. 대신 부작용 걱정을 덜 수는 있다. 환자의 병세가 심해졌을 것이니, 다른 부작용이 있어도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케미컬 의약품 신약개발 과정은 치료 타깃을 정하고, 타깃에 최적화된 물질을 찾는 것의 반복이다.


- 라이브러리

(...)

이런 이유로 스크리닝에 AI를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케미컬 의약품 신약은 타깃하는 단백질에 달라붙어, 타깃 단백질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한다. 스크리닝은 이 작업을 열쇠와 자물쇠와 같이 일일이 맞춰보는 것이다. 잘 맞는 열쇠를 찾으면 자물쇠가 열리는 원리다. 만약 이 작업을 AI에게 시키면 어떻게 될까? 타깃 단백질의 구조와 스크리닝할 저분자 화합물의 구조를 놓고, AI가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맞춘다. 물론 스크리닝 결과를 보고 직접 실험을 해봐야겠지만, 일단 1차 스크리닝용으로는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p.81

단 여기에도 밸류에이션 포인트는 있다. 타깃이 되는 항원이 세포 표면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항체는 세포막에 걸쳐 있는 항원과 결합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사실상 세포 표면에만 있는 항원을 스크리닝했다. 따라서 세포 안에서 질병의 원인이 되거나 증상을 일으키는 항원을 찾고, 여기에 결합하는 항체를 찾는다면 밸류에이션이 있을 것이다. 항체 스크리닝의 문제다.

(...)

다음으로는 바이오시밀러의 성공 여부가 중요하다. (바이오시밀러는 뒤에 가서 다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지만) 항체 의약품은 생산공정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복제약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만들어 오리지널과 효과를 비교하고, 규제 당국이 제시한 효과와 부작용의 기준선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바이오시밀러에서는 생산공정을 성공시키는 것 그 자체가 주목할 밸류에이션 포인트다.


p.84

- 항체약물복합체와 링커 기술

항체 의약품 이야기의 끝은 항체약물복합체 (antibody drug conjugate, ADC)로 이어진다. 항체약물복합체는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 (antibody)의 성질과 치료 효과가 높은 케미컬 의약품 (drug)의 성질을 결합한 (conjugate) 것이다. 암세포에 있는 항원에 결합하는 어떤 항체가 있다면, 그 항체에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케미컬 의약품을 붙여서 환자에게 투여한다. 항체가 암세포에 결합해 바로 그곳에 독한 약을 떨어뜨리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해서 볼 것은 링커 기술과 기술을 보유한 연구진이다. 항체를 다루는 곳이나 저분자 화합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링커는 다르다. 항체에서 붙이고 싶은 위치에, 붙이고 싶은 양만큼 붙여, 환자에게 투여하면 몸속에서 잘 붙어 있다가, 치료하려는 부위에 가서 딱 떨어질 수 있게 하는 링커 기술이 항체약물복합체에서 핵심 밸류에이션 포인트다.


p.89

한국의 제네릭 중심 제약기업이 테바의 전략을 선택한다면 밸류에이션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의약품을 뜻하는 파마슈티컬스 (pharmaceuticals)와 이머징 마켓 (emerging market)을 합쳐 의약품 수요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장을 파머징 마켓 (pharmerging marke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의약품 시장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중심으로 연 평균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제네릭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제약기업이 테바의 전략을 동남아시아 파머징 마켓에 적용해, M&A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하거나 제네릭 의약품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신규 시장에 진입하려는 전략이 있다면 밸류에이션이 달라질 것이다.


p.93

- 가격 경쟁력

(...)

더불어 충분한 규모의 투자가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 규모의 경제다. 설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규모의 경제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시밀러 생산 설비를 지으려면 , 최소 2,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이보다 투자 금액이 적어 생산 규모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이고 밸류에이션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추었다면, 밸류에이션을 가늠하기 위해 다음으로 점검할 것은 인력이다. 첨단 대형 설비는 스위치를 켜고 끄는 식으로 단순하게 운용할 수 없다. 2020년 현재 한국에서 이런 첨단 대형 설비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특히 대용량 동물세포 배양 바이오리액터를 운용해본 경험이 있는 인력은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기업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전부다. 만약 한국에서 신사업으로 바이오시밀러를 준비하는 곳이 있다면, 생산에 필수적인 인력 수급에 밸류에이션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바이오시멀러의 밸류에이션은 제법 단순하다. 충분한 설비 투자를 할 수 있는가? 설비를 운용할 인력이 구성되어 있는가? 바이오시밀러 라인업 확장성이 있는가? 바이오시밀러 임상을 어떻게 빨리 통과시킬 것인가? 이 모든 것을 넣고 돌렸을 때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30% 이상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p.125

- PDX (환자 유래 조직 이식 동물실험, patient derived xenograft, 이하 PDX)

PDX는 환자의 질병을 동물에 이식하고, 병에 걸린 동물에 약물을 시험해 약효와 독성을 실험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암세포를 쥐의 등이나 다리 같은 곳에 이식해 암이 자라게 만들고, 다시 신약 후보물질을 투여해 효과를 관찰한다.

(...)

그러나 '쥐의 등에서 자라는 사람의 뇌종양'은 미심쩍은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쥐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실험인데, 이제 등과 뇌의 차이까지 벌어진다. 등의 생물학적 환경과 뇌의 생물학적 환경은, 사람과 쥐의 차이보다 더 클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좀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교모세포종을 쥐의 뇌에서 발생시키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더 섬세하고 복잡하면서 난이도가 높은 PDX 모델 기술을 원하는 곳이 많으니 높은 밸류에이션을 창출할 수 있다.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중추신경계 질환도 마찬가지다. 알츠하이머 병, 파킨슨 병 등 중추신경계 질환은 아직 질병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진단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더 어렵다.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제 개발이 활로를 찾으려면 사실상, 믿을 수 있는 동물모델이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기업이 중추신경계 질환에 특화된 동물모델을 개발한다면 그것만으로 밸류에이션이 천문학적 수준이 될 것이다.


p.128

- KOL과 평가기준

(...)

그런데 알츠하이머 병 동물모델이라면 어떤 상황일까? 쥐에 알츠하이머 병을 걸리게 만든다면,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후보물질이 효과가 있는지 투여해볼 수 있다. 그런데 치료가 되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쥐한테 옛날 일이 기억나는지,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지, 친구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거나 답을 들을 수 없다.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행동 평가 시험이 있지만, 신뢰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알츠하이머 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 관련된 좋은 동물모델과, 이를 평가할 수 있는 마커 모델을 개발했다고 하면, 협업하자고 달려드는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이 줄을 설 것이다.


p.138

임상시험 기획은 전략이 중요하며, 전략이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준다. 의약품 산업에서도 북미 시장은 중요하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다. 중요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FDA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FDA의 높은 관문을 넘는 전략은 한 번의 도움닫기로 벽을 넘는 방식과 중간중간 사다리를 놓고 기어올라 넘는 전략, 두 가지다.

예를 들어 FDA에서 요구하는 임상 3상 환자의 규모가 10,000명 단위로 올라가면 사실상 한국 바이오벤처나 바이오테크는 자력으로 임상 3상을 끌고 갈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10,000명의 데이터지 그것을 어떻게 얻어내는지가 아니다.

같은 질환에 대해 한국에서 임상 3상을 신청한다면 수백 명 규모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다. 임상 3상을 통과해 한국에서 약을 판매하기 시작하고,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한다. 그리고 실제 환자들에게 처방이 나가는 시점부터 추적 임상에 들어간다. 임상시험 총괄 책임자 (principal investigator, PI)가 처방하는 의사들과 소통하며, 처방 후 추적관찰 연구를 진행한다. 약을 처방받은 수만 명에 대한 추적 관찰 자료를 논문으로 쓰고, 이를 다시 학술지에 발표한다. 이는 FDA 기준을 채울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제는 FDA 관문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물건이 되었고, 전 세계적 규모의 대형 제약기업에 라이센스 아웃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직접 투자자를 모아 미국 임상 3상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p.152

제넨텍과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성장 전략은 완전히 다르다. 제넨텍은 제품 개발 초기에는 일라이릴리와 같은 대형 제약기업과 판권 협의를 통해 제품을 판매했지만, 회사가 보유한 기반기술과 시장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꾸준한 신제품 개발, 자체 영업망 확보라는 성장 전략을 취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핵심 개발 영역을 선정한 이후 자체 연구개발과 동시에 시장성 있는 후보물질의 기술 도입, M&A를 통해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성장 역사는 M&A의 역사라도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로 든 두 회사 모두 초기는 보통의 바이오벤처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기반기술 또는 핵심 사업 부분을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초기 연구 개발을 진행했다. 빠른 IPO로 추가 자금을 확보했고 공모 자금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했다. 더불어 자체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한 사업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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