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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적 독립운동가 Dec 18. 2020

항암제의 역사와 최신 연구 동향 1

암 정복 연대기 - 남궁석

지난 '글감 구상'에서 다음 글의 주제 중 하나로 아래와 같은 카테고리를 생각한 바 있습니다.


1. Bio Industry의 이해

1) 항암제의 역사와 최신 연구 동향

2) 생물의약품 연구개발 프로세스와 바이오인더스트리 밸류에이션

3) 바이오사이언스 최신 연구 동향


오늘은 'Bio Industry의 이해', 그 중에서도 '항암제의 역사와 최신 연구 동향'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한 글감 창고입니다.


해당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한 독서 목록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 바 있습니다.

-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 도준상

- 암 정복 연대기, 남궁석

- 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찰스 그레이버


오늘은 그 중에서 '암 정복 연대기, 남궁석'를 읽고 '발췌', '요약'한 글입니다.




저는 바이오의약품 업계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과거 저의 관심사는 관여하고 있는 의약품의 기전 (Mechanism)보다 의약품의 성분을 분석하는 시험법 원리, 의약품의 생산에 필요한 기기, 설비 및 시험법의 검증 (Validation) 전략, 규제기관의 품질정책 준수 (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 등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는 국내 제약업체가 십수년 전에는 세계 의약품 시장에 데뷔하지 못하고 내수 시장에만 의존해왔으며,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 생산에 매진해왔기에 자연스러운 방향이었습니다.


위와 같았던 관심사의 방향이 의약품의 기전으로 확대된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국내 제약업체들이 속속 세계 의약품 시장에 데뷔하기 시작하면서 첨단 바이오 의약품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나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여겨왔던 신약 개발이 관심 영역 안으로 성큼 들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세계 제약업계의 분업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거대 제약회사가 개발 - 임상 - 제조 - 마케팅에 이르는 전 영역을 모두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개발, 임상, 제조 영역을 각각 전문으로 맡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메이저 제약회사들은 임상 성공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을 조기에 사들이고 임상 3상 및 신약 승인에 성공하면 해당 의약품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업화 과정에서 과거에는 메이저 제약회사들과 같은 'Big Player'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세계 의약품 시장에 국내 제약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국내 바이오업계를 이끌고 있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셀트리온의 경우 세계 제약업계의 분업화 추세에 따라 Bristol-Myers Squibb (BMS)과 위탁 생산 (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계약을 통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서정진 회장이 더 큰 성장을 위해 바이오시밀러 자체 개발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매출의 절반을 영업이익으로 챙길 수 있는 CMO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2019년, 셀트리온은 자체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중 하나인 램시마의 위탁 생산을 세계 3대 CMO 업체 중 하나인 스위스 론자 (Lonza)에 맡기게 됩니다. CMO 사업을 통해 세계 의약품 시장에 데뷔할 수 있었던 셀트리온이 이제는 'Big Player'에게 위탁 생산을 맡기게 되는 수준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MO 전문업체를 표방하며 세계 의약품 시장에 데뷔했습니다. 2017년 김태한 사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비전이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파운드리) 회사인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TSMC)와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20년 현재 TSMC는 세계 반도체 회사 중 시가총액 1위 기업이며 (약 489조원)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의 5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586조원 (4890억 달러)인 반면, 전 세계 처방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1,012조원 (884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 중 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연 평균 8.5%의 고성장이 예상되며, 2024년 시장규모는 약 456조원 (3,880억 달러)로 예상됩니다. 위와 같은 규모를 가진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TSMC와 같은 위탁생산 과점업체가 될 수 있다면 TSMC와 같은 시가총액을 달성하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세계 제약업계의 분업화 추세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또한 바이오 의약품 시장의 TSMC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암 정복 연대기 (남궁석)는 최초의 표적 항암제인 '글리벡'에서부터 '허셉틴' 그리고 최초의 면역관문억제제인 '여보이'와 이후 옵디보, 키트루다에 이르는 인류의 암 정복을 향한 여정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이며, 책의 '요약' 내용과 세계 의약품 시장에 뛰어든 국내 제약업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와 같은 '기획 독서'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부 글리벡 Glivec]


p.37

1970년 하워드 테민과 데이비드 볼티모어 (David Baltimor, 1938-)는 가설을 증명해줄 역전사효소 (reverse transcriptise), 즉 RNA를 주형 (template)으로 DNA를 만드는 효소를 발견한다. 하우스 사코마 바이러스로 레트로바이러스가 어떻게 자신을 복제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라우스의 주장대로 대부분의 암이 레트로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난다면, 그리고 바이러스 증식에 필수적인 역전사효소를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암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자리를 잡았다.


p.38

단 암 유발 레트로바이러스를 찾는 연구에 들어간 막대한 돈과 노력이 그저 낭비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쌓인 지식은 1980년대 초 갑작스럽게 등장해 공포를 불러일으킨 에이즈 (AIDS)의 병원체,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대한 대한 대책을 찾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HIV는 레트로바이러스였는데, 1970년대부터 쌓인 지식 덕분에 레트로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도록 역전사효소를 억제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도입된, 역전사효소 억제제와 다른 약물들을 섞어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는, 칵테일 요법 (cocktail therapy 또는 HAART [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r])이라 불리는 항 바이러스 요법 개발은 1970년대 연구자들의 연구에 기댄 것이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21세기의 페스트'가 될 것처럼 보이던 에이즈는, 당뇨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암과의 전쟁에서 얻는 레트로바이러스에 대한 지식 덕분이었다. 과학 연구가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다 준 대표적인 사례다.


p.43

바머스와 비숍이 발견한 v-src 유전자는 암 유전자 (oncogene)라고 부르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암 유전자는 정상 세포에 있는 원암 유전자 (proto-oncogene)가 변형된 것이다. (정상 세포에 있는 c-src 유전자가 원암 유전자, 바이러스에 있는 v-src 유전자가 암 유전자다.) 보통 원암 유전자에는 필요할 때만 단백질이 기능하도록,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브레이크 영역이 고장나면 (즉 유전자에 변형이 생기면) 암 유전자가 된다. 세포의 증식을 조절하는 단백질이 고장나면 활성이 조절되지 않아 브레이크 없이 폭주한다. 그 결과 세포가 무한히 증식하면서 암으로 자란다. 바머스와 비숍의 연구는 암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단백질 분자 수준에서 확인한 첫 사례였다.


p.50

자기 자신의 증식에만 신경 쓰는 단세포 생물과 달리, 다세포 생물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세포 증식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증식이 필요할 때는 세포분열을 시작하여 세포 수가 늘어나야 하지만, 성장이 끝나면 세포분열은 멈춰야 한다. 세포가 분열해서 증식하는 것과 증식을 멈추는 통제다. 이런 통제는 세포 외부 환경에서 온 '신호'를 감지해 세포 안으로 전달해주는 신호전달체계로 조절되며, 타이로신 인산화효소는 신호전달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유전자 이상으로 타이로신 인산화효소에 변형이 일어나 세포가 증식할 필요가 없는데도 증식하라는 잘못된 신호를 전달하면, 조절 메커니즘이 무너지고 세포가 무차별적으로 증식해 악성 종양이 된다. 이러한 암 생물학 패러다임은 1980년대 중반에 정립된다. 


p.53

단백질에 인산기가 결합되면 대개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스위치로 작동한다. 단백질 인산화는 인간을 포함한 진핵생물의 생명 현상을 조절하는 신호전달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복잡한 전자 기기가 제 기능을 하려면 여러 부품들이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조절해야 한다. 사람의 몸이라는 복잡한 생체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도 서로 신호를 전달하며 조절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단백질 인산화다.

(...)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src 유전자나 BCR/ABL 융합 유전자 등이 브레이크가 풀린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폭주를 불러와 암을 일으킨다면, 폭주하는 단백질 인산화효소에 인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 암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198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p.55

그러나 단백질 인산화효소가 여러 암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1980년대 중반에는 또 다른 사실이 알려졌다.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에는 최소 수백 가지의 단백질 인산화효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단백질 인산화효소에서 실제 단백질에 인산기를 붙이는 역할을 하는 부분인 키나아제 도메인 (kinase domain)은, 수백 종의 단백질 인산화효소에서 모양이 거의 비슷했다. 세포에는 화학적으로 거의 비슷하며, 인산화 반응을 수행하는 수백 종류의 단백질 인산화 효소가 있으니, 암 유발에 관여하는 단백질 인산화효소만을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기능을 억제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으려면, 단백질 인산화효소에서 실제 인산화를 수행하는 키나아제 도메인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효소의 기능을 막는 인산화효소 저해제 (kinase inhibitor)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키나아제 도메인들이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키나아제 도메인에 결합하여 활성을 저해하는 화합물은 다른 단백질 인산화효소까지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암과 관계된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저해제를 투여했는데, 원하는 단백질 인산화효소가 아닌 죄 없는 (?) 다른 단백질 인산화효소까지 저해할 수 있었다. 부작용과 독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연구에는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타깃하는 약물 개발에 부정적인 학자들도 많았다.


p.64

드러커의 연구실에서는 BCR/ABL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조작된 세포와 그렇지 않은 세포에 CGP57148을 처리했다. CGP57148은 BCR/ABL이 많은 세포에서는 세포를 죽이지만, 그렇지 않은 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 결과는 CGP57148을 세포에 처리하면,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가진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암세포처럼 BCR/ABL이 많이 만들어지는 세포를 선택적으로 죽여 항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p.69

1999년, 미국 혈액학회 (American Society of Hematology)에서 소개된 STI571의 임상시험 결과는 학회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고, 결과는 2001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되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에 대한 소식은 환자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

STI571은 임상2상을 끝내고 이마티닙 (Imatinib)이라는 성분명을 얻었다. 미국 FDA는 2001년 5월 이마티닙을 성분으로 하는 글리벡 (Gleevec)을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승인했다. 임상시험을 시작하고 3년 반 만에 FDA 허가를 얻은 것은 이례적으로 빠른 것이었다.

(...)

글리벡은 최초의 단백질 인산화효소 저해제이자 최초의 표적항암제다. 글리벡 개발을 주저하던 노바티스 경영진의 걱정대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미국 기준 전체 암 환자의 0.5%에 불과한 희귀 암이다. 그러나 글리벡은 암에 나타나는 특이적인 분자 타깃을 억제하는 화학물을 이용하면, 큰 부작용이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표적항암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개념증명 (proof of concept) 사례가 되었다. 


p.84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있다는 발견에서 시작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치료제인 글리벡이 등장하기까지 적어도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4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다른 암에 비해서 훨씬 상대하기 쉬운 적이었다. 글리벡은 표적항암제로 특정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지만, 다른 암은 상황이 더 복잡할 것이라는 것을 확인해준 계기도 되었다.


[2부 허셉틴 Herceptin]


p.105

노살과 레더버그가 밝힌 대로 한 종류의 림프구에서 한 종류의 항체만을 생성한다면, 어떻게 다양한 종류의 항체가 만들어지는 림프구가 생길 수 있을까? 1960년대가 되자 유전형질의 본체는 DNA에 저장되고, 단백질은 DNA에 저장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세포 안에 있는 DNA 총합인 지놈 (genome)은 이전 세대로부터 전달받은 제한적인 정보만을 저장한다. 그런데 어떻게 DNA에 수많은 종류의 항원, 특히 한 번도 접촉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항원을 인식하는 정보가 수록될 수 있을까?

(...)

도네가와는 B세포에서 항체의 본체인 면역글로불린 (immunoglobulin) 유전자를 연구했다. 그는 면역세포가 발달하는 과정에 B세포 면역글로불린의 헤비 체인과 라이트 체인을 구성하는 유전자 조각 (exon)에서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항체의 항원 결합 부위, 즉 변화영역에서 다양성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여러 항원을 인식할 수 있는 항체의 다양성은, 다양한 항체 유전자 조각들이 만나 수많은 조합을 이루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유전자 재조합에 의해서 생성된 항체 유전자의 다양성은, 항체 변화영역에서 돌연변이가 많이 발생하면서 더욱 다양해지고, 더 많은 항원에 결합할 수 있는 다양한 항체가 생겨나게 된다.


p.110

쾰러는 밀스타인과 함께 화학적으로 조성이 동일한 항체, 즉 단일클론항체 (monoclonal antibody)를 만들기 위한 세포주 제작 방법을 개발했다. 이들이 개발한 방법은 대략 이렇다.

우선 실험용 쥐에 양의 적혈구를 주입한다. 쥐는 양의 적혈구를 인식하는 항체를 만들어내는데, 쥐의 비장 (spleen)에서 양의 적혈구를 인식하는 항체를 만드는 B세포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비장에 있는 B세포를 추출해 쥐의 몸 밖에서 배양하려 했다. 문제는 B세포 수명이 짧아 몸 밖에서 배양하면 금방 죽는다는 점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쾰러와 밀스타인은 B세포 유래 암세포인 골수종세포와 쥐의 비장에서 채취한 B세포를 융합시켰다.

(...)

이렇게 만든 하이브리도마는 원래 B세포처럼 특정한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를 분비하며, 동시에 골수종세포처럼 계속 증식한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항체를 생산하면서 골수종세포처럼 무한히 증식하는 하이브리도마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원하는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를 만드는 하이브리도마를 찾아내면, 원하는 항체만 생성하는 세포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한 가지 항원만을 인식하는 항체를 단일클론항체 (monoclonal antibody)라 한다. 


p.116

반면 하이브리도마로 만들어진 항체는 한 종류의 세포에서 생성된, 화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조성을 가진 항체다. 이렇게 특정한 항원, 즉 단백질이나 생체물질 혹은 화학물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인 단일클론항체는 특정한 단백질이나 화학물질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재료가 되었다. 인산화 타이로신에 결합하는 단일클론항체를 생각해보자.

실험 용기 바닥에 인산화 타이로신에 결합하는 항체를 고정시킨다. 타이로신이 인산화된 단백질은 항체에 결합하여 함께 바닥에 붙는다. 그런데 항체에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의 양에 따라서 바닥에 결합하는 단백질의 양도 달라질 것이다. 이때 단백질이 얼마나 많은 항체에 결합했는지 알기 위하여 해당 단백질에 결합할 수 있는 또 다른 항체 (이 항체에는 양을 측정할 수 있도록 특정한 색을 내는 효소를 연결한다)를 넣어주면, 특정 단백질 양에 비례해 항체에 연결된 효소가 바닥에 붙는다. 효소와 반응해 색이 바뀌는 화학물질을 넣으면 단백질 양에 따라서 색이 변한다. 항체에 붙는 단백질 양을, 해당하는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로 잴 수 있다. 이를 효소면역측정법 (ELISA)이라 부르는데, 효소면역측정법을 이용하면 특정 단백질이 얼마나 있는지 간편하게 잴 수 있다.


p.133

분자생물학 연구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재조합 DNA 기술은 신약 개발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재조합 DNA 기술이 등장할 때 분자생물학 연구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을 예상했던 학자들이 드물었던 것처럼, 재조합 DNA 기술이 실용적인 (돈이 되는) 산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진핵생물의 DNA를 세균에서 복제하는 것 이외에 DNA로부터 만들어지는 산물인 단백질을 세균에서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DNA 재조합 기술의 실용적 응용은 전통적인 학계와 산업계의 경계면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 생화학과 연구실의 '공유 문화'가 이 모든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43

소마토스태틴은 그 자체로 실용성이 있는 물질은 아니었지만,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해 세균에서 동물 유래의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실증을 해낸 것이었다. 소마토스태틴 합성과 인슐린 합성은 기술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후 제넨텍은 인슐린 합성에 성공했다. 재조합 인슐린은 1982년 FDA로부터 판매 승인도 얻었다.


p.145

제넨텍은 1990년대까지 재조합 인슐린, 인간성장호르몬, 인터페론 알파-2A, 조직형 플라스미노겐 활성인자 (tissue plasminogen activator, tPA) 등의 여러 단백질 의약품 상업화에 성공했다. 제넨텍이 1980년대 중반까지 개척한 1세대 바이오 의약품, 즉 재조합 단백질 의약품은 완전히 새로운 약은 아니었다. 인슐린, 인간성장호르몬, 팩터 VIII 등은 모두 동물 조직에서 유래한 단백질이었고, 생물학적 효용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었으며, 의료 현장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제넨텍은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해 좀더 싸고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일종의 공정 개선 개발이었다.


p.155

1980년대에는 특정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를 찾기 위해, 유전자 라이브러리라는 전체 유전자가 담긴 집합체에서 이미 유전자 서열을 알고 있는 유전자 조각을 탐침 (probe)으로 활용했다. 1985년, 울리히 연구팀은 EGFR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EGFR) 유전자를 탐침으로 이용해 원래의 EGFR과 상동성 (homology)을 지니는 별도 유전자를 찾아냈다.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 (human EGFR 2, HER2)의 발견이었다. 


p.158

문제는 HER2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는 방법이었다. 울리히는 단일클론항체에 주목했다. 단일클론항체는 특정한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며,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일클론항체는 1970년대에 확립된 기술이었고, 의약품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전부터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항체가 과연 몸속에서, 특정한 단백질과 결합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약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단일클론항체는 단백질이다. 약으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저분자 화합물처럼 세포막을 뚫고 세포 내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따라서 암세포에도 침투할 수 없을 것이고, 세포 안의 단백질과 결합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HER2는 생체막에 위치하고 있고, EGF 등의 성장인자와 결합하는 부분이 세포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만약 HER2 생체막 외부에 있는 EGF에 결합하는 부위와 이를 특이적으로 인식하는 항체가 결합하여 EGF가 HER2와 결합하는 억을 억제한다면, HER2의 활성을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설을 확인하려는 연구는 계속되었다.


p.164

1986년, 영국 MRC-LMB의 그레고리 윈터 (Gregory P. Winter, 1951 - ) 연구팀은 쥐 유래 항체에서 항원과의 결합에 꼭 필요한 영역을 파악하기 위해 항체의 3차원 구조를 분석했다. 그리고 항원과 결합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 어디인지 관찰했다. 3차원 구조 분석으로 항원과 결합하는 데 꼭 필요한 영역인 상보성 결정부위 영역 (complementarity determining region, CDR)이 어디인지를 파악하고, 인간 항체의 CDR 부분을 쥐 항체의 CDR 부분으로 대치하면, 인간 유래 항체에 쥐에서 분리한 단일클론항체의 항원 결합 능력을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항체의 대부분은 인간 유래 항체지만, 항원을 결합하는 항체의 극히 일부분만 쥐에서 유래한 항체로 이루어진, 인간화 항체 (humanized antibody)를 만든 것이다.


p.165

쥐에서 얻은 단일클론항체가 종양이 주입된 쥐의 암 성장을 억제하므로, HER2 항체가 적어도 동물실험에서는 암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해 약을 만들려면, 쥐에서 얻어진 항체를 인간화해야 했다. 그레고리 윈터 연구팀에서 항체 인간화 기술을 배운 제넨텍의 젊은 과학자 폴 카터 (Paul Carter)가 중심이 되어, 전에 발견한 HER2를 인식하는 쥐 유래 단일클론항체의 인간화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쥐에서 유래한 HER2 항체 4D5의 CDR 영역을 인간 항체에 도입하였다. 단순히 CDR 영역을 쥐 항체의 것으로 바꾼 항체는 HER2에 매우 강력하게 결합했지만, 유방암세포를 억제하는 능력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CDR 영역 이외에도 CDR 영역 사이를 연결하는 프레임워크 (framework) 영역의 아미노산 5개를 쥐에서 유래한 항체로 바꾸는 작업을 추가했다. 그러자 항체의 결합력은 약 250배 이상 강해졌고, 쥐 항체와 비슷한 수준으로 암세포의 성장이 억제되었다. 인간화된 항체의 성분명은 트라스투주맙 (trastuzumab)으로 지어졌다. 


p.178

제넨텍에서는 허셉틴을 개발할 때 허셉틴과 다른 방식으로 HER2에 결합하는, 2C4라는 단일클론항체도 같이 발견되었다. 퍼투주맙 (pertuzumab)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항체는 HER2와 결합할 때 허셉틴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합한다. 허셉틴이 HER2의 막 통과 도메인 바로 앞에 있는 부분 (juxtamembrane domain)에 결합한다면, 퍼투주맙은 HER2에서 세포 밖으로 노출된 부분인 엑토도메인 (ectodomain)에 결합하며 HER2가 HER3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막는다. 이 항체를 처리하면 HER2와 HER3 사이의 상호작용을 억제하고, 리간드 의존적인 신호전달경로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세포주와 유방암세포가 이식된 쥐 모델에서 2C4 항체 처리가 암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항체는 허셉틴과는 다른 방식으로 HER2와 HER3의 상호작용을 억제하여 암 발생을 억제한다. 과연 이 항체를 이용하면 HER2가 과발현되지 않는 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

(...)

2012년, FDA는 퍼투주맙을 허셉틴 및 택솔과 병용하여 전이성 유방암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게 허가했다. 퍼투주맙은 퍼제타 (Perjeta)라는 이름의 의약품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p.184

우선 암세포에 단백질을 인식하는 항체는 단백질과 결합해 식세포작용 (endocytosis)으로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세포 안에서 링커가 분해되면 약물이 세포 안으로 방출되고, 세포독성을 유발하여 암세포를 공격한다.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겨냥하여 암세포를 죽이는 항체-약물 결합체 (antibody-drug conjugate)다. 

허셉틴은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검증된 항체의약품이었다. 허셉틴을 이용해 항체-약물 결합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유방암 세포에는 HER2가 정상 세포보다 많이 발현되므로, HER2를 인식하는 항체인 트라스트주맙은 암세포만을 겨냥해 세포독성을 가지는 화합물을 배달하는 물질, 즉 항체-약물 결합체가 될 수 있었다. 제넨텍은 트라스트주맙에 강력한 미세소관 (microtubule) 합성 저해제인 메르탄신 (mertansine, DM-1)을 결합시켰다. 세포가 분열하기 위해서는 염색체를 두 개의 딸세포에 배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세포분열 직전에 방추사가 만들어져서 염색체를 배분해야 한다. 그런데 방추사는 미세소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미세소관 합성이 저해되면 방추사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허셉틴에 메르탄신을 붙이면, 메르탄신이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 미세소관 합성을 저해한다. 결과적으로 세포분열을 억제하고, 암세포의 증식을 막아 사멸시킨다.

(...)

그러나 동물모델 실험 결과, 항체와 약물을 안정적으로 연결할 때 효능이 더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항체와 약물을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링커를 이용해 트라스트주맙과 메르탄신을 연결하는 항체-약물 결합체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

2013년 FDA는 제넨텍의 항체-약물 결합체인 T-DM1을 허셉틴과 택솔로 치료받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캐싸일라 (Kadcyla)의 탄생이었다. 


[3부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 Yervoy, Opdivo, Keytruda]


p.201

(...)

2세대 항암치료제는 표적 치료제 (targeted therapy)다. 글리벡 (Gleevec, 성분명 : imatinib)이나 허셉틴 (Herceptin, 성분명 : trastuzumab)은 저분자 화합물과 항체라는 차이가 있지만,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원리는 같다. 암세포에서 더 많이 만들어지는 단백질에 작용하여 그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

표적 치료제는 암세포에 많이 있는 단백질에만 작용해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하고, 암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암의 원인은 매우 다양해 암세포들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한 가지 표적 치료제는 특정한 종류의 암에만 작용한다. 예를 들어 글리벡은 BCR/ABL 융합 유전자가 있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효과가 있고, 허셉틴은 HER2 많이 만들어지는 유방암에 효과가 있지만 다른 암에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표적 치료제가 큰 효과를 보여주는 암들은 대개 하나의 암 유발 단백질에 의해 지배되고는 하는데, 대부분의 암은 여러 종류의 유전적인 변화를 가진다. 한 가지의 암 유발 단백질을 억제하는 표적 치료제만으로 여러 종류의 암에 대응하기 어렵다.

화학요법제는 많은 종류의 암에 적용할 수 있지만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니 부작용이 걱정이고, 표적 치료제는 암을 특이적으로 공격하니 부작용이 적지만 적용할 수 있는 암이 적다. 3세대 항암 치료제가 필요했다. 여러 종류의 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사람 몸이 가지고 있는 면역기능을 활성화해 암 치료에 이용하는 면역항암요법은 많은 종류의 암에 적용 가능하면서도, 정상 세포와 암을 구별하여 암세포만을 특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3세대 항암 치료제로 분류된다. 이는 항암요법이 가야 할 궁극적인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겠다.

(...)


p.212

외부 침입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 메커니즘은 내재성 면역 (innate immunity)과 적응성 면역 (adaptive immunity)으로 구분된다. 내재성 면역은 특정한 병원체에 특이적이지 않은 방어 메커니즘이다. 즉 외부 침입자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메커니즘으로 병원체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물리적 장벽, 보체 (complement) 단백질 등으로 병원균 무력화, 식세포 작용 (phagocytosis)으로 병원체를 먹어치워 파괴, 염증 (inflammation)을 일으켜 감염된 세포로부터 더 이상 병원체의 감염이 퍼지지 않도록 장벽을 만들면서 식세포를 유도하는 등 여러 가지 방어 메커니즘을 포함한다.

적응성 면역은 특정한 병원체를 특이적으로 막는 메커니즘이다. 자기 몸에 원래 있던 생체 고분자 물질과 그렇지 않은 외부 침입자를 구분하고 기억해, 특정 병원체나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를 무력화시킨다. 적응성 면역은 주로 항체 (antibody)가 활약하는 체액 면역 (humoral immunity)과 세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세포 매개 면역 (cell-mediated immunity)으로 나뉜다.

체액 면역에서 중요한 것은 골수 (bone marrow)에서 만들어지는 B세포다. B세포가 항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B세포는 외부 단백질 (항원, antigen)을 인식하는 항체를 표면에 가지고 있다. 다양한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의 다양성은 B세포의 발생과정에서 확보된다. B세포 한 개는, 한 종류의 항원과 결합하는 하나의 항체를 가진다. 따라서 한 종류의 항원과 결합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나 암세포에 있는 항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B세포가 한 가지 항체만을 가지고 있어 한 가지 항원에만 결합할 수 있으니, 다양한 항원에 맞서 면역 작용을 해야 하려면 다양한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B세포의 종류가 많아져야 한다. 다양한 항체를 만들기 위해, B세포는 발생 과정에서 항체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체세포 돌연변이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항체 유전자를 가진 다양한 B세포가 생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B세포 항체 가운데 원래 몸에 있던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것들이 있다. 항체가 항원과 결합하면 해당 단백질의 기능을 멈추거나 저해한다. 따라서 우리 몸에 있는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를 미리 없애야 한다.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B세포 가운데 자기 몸에 있는 단백질을 항원과 결합하는 B세포는 사멸하여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한다. 대신 몸속에 있는 항원을 만나지 않은, 즉 외부에서 들어오는 항원을 인식할 수 있지만 몸속에 있는 항원은 인식하지 못하는 B세포는 살아남는다.

이렇게 살아남은 B세포 (naive B세포)는 몸속 이곳저곳을 다니며 인식할 수 있는 항원이 있는지 검사한다. 바이러스처럼 외부에서 몸속으로 항원이 들어오면, 무작위로 생성되었던 무수히 많은 B세포 가운데 우연히 해당 항원을 인지하는 수용체를 가진 B세포가 활성화되며 대량으로 증식한다. 활성화된 B세포는 형질 (plasma) 세포로 분화하여 항체를 생산한다. 일부 B세포는 기억 (memory) B세포로 바뀌어 몇 년 동안 몸속에 남아있다가, 똑같은 병원체가 다시 침투하면 빠르게 대응하는 항체를 생산한다.

세포 매개 면역 (cell-mediated immunity)은 다른 세포와 상호작용하여 이루어지는 면역 활동이다. 이를 매개하는 세포는 T세포다. 흉선 (thymus)에서 성숙해 T세포라 이름이 붙은 이 면역세포는 다른 세포들과 서로 반응한다. 체액 면역은 B세포와 항체가 직접 항원과 접촉하여 항원과 반응하는 항체를 생산하는 반면, 세포 매개 면역에서는 그 과정이 좀 더 복잡하다.

우선 외부 병원체 유래 항원은 B세포,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같은 항원전시세포 (antigen presenting cell, APC)로 들어가서 분해된다. 이후 항원전시세포 표면에 있는 조직적합성 복합체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에 항원 조각이 올라가 '외래 병원체가 침입했음'을 외부 환경에 알려준다. 항원전시세포가 세포 표면에 항원의 존재를 알리면, T세포는 이를 T세포 수용체로 인식한다. 하나의 B세포가 한 종류의 항원을 인식하는 것처럼, T세포도 한 종류의 항원 조각이 결합한 MHC를 가지고 있는 세포를 인식한다.

이후 T세포는 T세포의 종류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진다. 항원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세포독성 (cytotoxic) T세포, 다른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보조 (helper) T세포, 다른 T세포의 활동을 제어하는 제어 (regulatory) T세포로 구분된다. 이때 다른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사용하는 신호전달물질이 사이토카인 (cytokine)이라는 단백질이다. 사이토카인은 보조 T세포 등에서 만들어져 분비되고, 다른 면역세포로 전달되어 다른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한다.

면역계가 주로 대응하는 상대는 외래 병원체다. 면역계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몸속으로 침투하면 이로부터 생물을 지킨다. 그런데 면역계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외래의 것'은 모두 공격하는 성질이 있다. 장기를 이식받았을 때 일어나는 이식 거부 반응도 면역계의 활동으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몸속에서 만들어진 암세포에 대한 면역계의 반응은 어떨까? 많은 암세포는 정상 세포가 일반적으로 만들지 않는 단백질을 대량으로 만들거나, 돌연변이에 의해서 특이적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가진다. 즉, 면역계가 흔히 접하지 못하는 항원을 가진 암세포도 타자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면역계, 특히 세포 매개 면역은 암세포를 타자로 인식하여 암세포를 없앨 수 있다. 만약 면역계가 암세포를 없앨 수 있다면, 왜 암이 생기는 것일까? 면역계에 대한 대략의 얼개를 그렸으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


p.229

린덴만과 아이삭은 바이러스 간섭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이들은 열처리를 거쳐, 죽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세포에 첨가했다. 그 세포는 나중에 살아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가졌다. 이들은 세포가 죽은 바이러스 추출물에 반응해서 어떤 물질을 분비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물질을 인터페론 (interferon)이라 불렀다. 여러 동물의 조직과 세포에서 인터페론이 만들어지는 것이 확인되었고, 인간 백혈구에도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인터페론이 세포 밖으로 방출되는 것이 알려졌다.

(...)

이렇게 여러 면역반응에 관련된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면역세포를 활성화하여 면역반응을 개시한다. 인터페론은 다른 면역세포에게 면역반응을 개시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는 전령 역할을 하는 셈이다.


p.234

갤로가 발견한 'T세포 성장인자'는 T세포뿐만 아니라 NK세포나 B세포 등의 다른 면역세포 성장도 촉진한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T세포 성장인자보다 좀 더 특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새 이름도 필요했다. 백혈구 (leukocytes) 사이 (inter)에서 성장 신호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인터루킨 (interleukin)이라는 이름이 제안되었으며, 갤로가 발견한 단백질은 인터루킨-2 (IL-2)라는 이름을 얻었다.


p.239

그러나 IFN-alpha를 이용한 치료제는 단점이 있다. IFN-alpha 투여는 몸속 모든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비특이적 면역항암치료였다. 모든 면역세포가 활성화하므로 부작용이 심했다. IFN-alpha가 투여되면 독감에 걸린 것처럼 발열, 근육통, 관절통, 두통 등이 나타났고, 투여량이 많아지면 신경독성도 나타났다. 심각한 부작용은 IFN-alpha의 활발한 임상 활용을 제한했다.

(...)

IFN-alpha는 유모세포백혈병 1차 치료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도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이 IFN-alpha보다 효능이 좋다는 임상 결과가 나온 이후에 IFN-alpha는 1차 치료제 자리에서 내려온다.


p.242

그러나 IL-2도 IFN-alpha처럼 비특이적인 면역계 활성화로 여러 부작용과 독성이 나타났다. 고농도 IL-2를 투여하면, 베타 체인 (IL-2Rbeta)과 감마 체인 (IL-2Rgamma)으로 구성되어 IL-2에 중간 단계 친화력을 가지는 IL-2 수용체가 있는 B세포나 NK세포 등 여러 면역세포가 동시에 활성화되었다. 이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p.243

사이토카인을 투여해 면역체계를 활성화하고, 암을 치료하겠다는 아이디어는 1980년대 항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사이토카인에 의한 비특이적인 면역계 활성화와 그에 따른 부작용 때문에 항암 활성을 유지할 수준의 고농도 사이토카인을 투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p.248

무수히 많은 항원에 결합하는 다양한 항체를 만들 수 있게 하는 핵심 메커니즘인, V(D)J 재조합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DNA를 자르는 단백질의 유전자인 Rag2 유전자가 망가진 쥐를 이용한 실험 결과는 종양면역감시 가설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Rag2 유전자가 망가진 쥐는 항체 및 T세포 수용체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B세포와 T세포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는 체액 면역과 세포 매개 면역 모두가 제거된 완전한 면역 결핍 상태가 된 것으로, 이전에 면역기능이 망가졌다고 보고된 누드 마우스나 스키드 (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 SCID) 마우스가 어느 정도 면역기능을 유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완벽한 면역 결핍 쥐가 만들어진 것이다. 면역기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Rag2 유전자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유전적으로 동일한 정상 쥐와 면역결핍 쥐의 비교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암 발생에 면역기능이 미치는 영향을 다른 왜곡 없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면역 결핍된 Rag2 쥐는 돌연변이원을 처리하자, 암 발생 비율과 자연적인 암 발생 비율 모두 Rag2가 정상적인 쥐보다 늘었다. 1950년대에 버넷과 루이스가 제안한 종양면역감시 '가설'은 2000년대 들어 비로소 '이론'이 되었다.


p.252

1980년대 초반, T세포 연구에 흔히 사용되던 T세포에서 유래한 배양세포주에서는 TCR/CD4-CD8이 MHC/항원 복합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활성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동물에서 바로 채취한 T세포가 활성화되려면 TCR에 의한 MHC/항원의 인식 이외에 추가 신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세포 활성화에 왜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이 필요할까? 이는 자가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면역관용 (immune tolerance)과 관계가 있다.

(...)

문제는 흉선에서 말초 조직으로 이동한 T세포 가운데 여전히 정상 세포에 있는 항원을 인지하는 T세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점이다. 만약 정상세포에 있는 항원이 MHC와 결합하고, 이를 인식하는 T세포가 아무런 제약 없이 바로 활성화된다면, 해당 세포를 공격하고 정상 세포는 손상을 입는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 별도의 보조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아네르기 (anergy) 현상도 보고되었다. 아네르기 현상은 외부 병원체에 감염되었을 때, 병원체에서 유래한 항원을 인식하는 면역세포가 있지만,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T세포가 MHC/항원 복합체를 인식하지만 T세포 활성화가 일어나지 않아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TCR에 의해서 MHC/항원 복합체를 인식하는 것 이외에 다른 조건이 있어야 T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p.255

1990년대 초반, 마크 젠킨스 (Marc Jenkins, 1955~)와 제임스 앨리슨 (James P. Allison, 1948~)은 각각 인간과 쥐 모델에서 CD28이 TCR과 더불어 공동자극인자 (costimulation)로 작용해야만 T세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B7-1 (CD80)과 B7-2 (CD82)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항원전시세포 표면에 있고, 이것이 항원전시세포의 MHC/항체 복합체가 T세포의 TCR-CD3과 결합할 때 CD28과 상호작용하여 T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공동자극인자로 작용하는 것이다.

TCR이 T세포의 활성화를 결정하는 주된 자물쇠라면, CD28은 보조 자물쇠이며, 이를 여는 주된 열쇠인 항원-MHC와 보조 열쇠인 B7-1/2와 상호작용해야 비로소 T세포 활성화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복잡해 보이지만 이것은 T세포 제어 메커니즘의 일부에 불과했다. 


p.257

그런데 연구가 진행되면서 CTLA-4 (cytotoxic T lymphocyte associate-4)가 CD28과 정반대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CD28은 T세포 활성화 이전에도 T세포 표면에 있지만, CTLA-4는 CD28에 의한 T세포 활성화가 되기 전에는 없었다. 그런데 T세포가 활성화된 이후에 새로 만들어져 T세포 표면에 나타난다. T세포 활성화가 이루어진 다음 T세포 표면에 나타나는 CTLA-4는 CD28과 경쟁하며 B7-1/B7-2와 결합하는데, 이 과정에서 T세포 활성화 신호를 억제해 T세포 증식과 세포분열을 억제한다.

T세포 활성화를 자동차 출발에 비유하자면, TCR에 의해서 MHC/항원 복합체가 인식되는 것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기 위해 열쇠를 돌리는 것이고, CD28에 B7-1/B7-2가 결합하는 것은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차를 출발시키는 것이다. CTLA-4에 의해서 T세포의 활성화가 억제되는 것은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CTLA-4는 T세포가 함부로 활성화되는 것을 억제하는 면역관문 (immune checkpoint) 단백질이었다.


p.261

제임스 앨리슨 연구팀은 B7 단백질을 발현하는 암세포를 쥐에 이식하면서 CTLA-4에 결합하여 CTLA-4의 기능을 억제하는 항체 (Anti-CTLA-4)를 함께 주입했다. B7 단백질을 발현하는 암세포가 작아진 것은 이전 실험과 결과가 같았다. 그런데 Anti-CTLA-4를 주입하자 암세포가 좀 더 빠르게 줄었다. CTLA-4의 기능을 억제해 암 억제 효과를 얻은 것이다. B7 단백질을 발현하지 않은 암세포와 Anti-CTLA-4를 함께 이식한 결과도 살펴보았다. B7 단백질이 발현하지 않은 암세포에서도 항체를 통해 CTLA-4 기능을 억제하면 암 조직은 완전히 사라졌다. 1996년, [사이언스 (Science)]에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T세포 활성화를 억제하는 면역관문 역할을 하는 CTLA-4의 기능을 억제하면, 면역기능이 활성화되면서 항암 효과를 보여준 첫 사례였다.


p.264

PD-1은 CTLA-4와 마찬가지로 T세포 활성을 조절하는 단백질이었던 것이다. PD-1 유전자를 발견하고 7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PD-1과 CTLA-4는 모두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CTLA-4는 T세포의 CD28이 항원전시세포의 B7 단백질과 결합해 T세포 활성화를 개시한 직후, T세포 활성화 단계에서 활성화를 조절한다. PD-1은 이미 활성화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의 T세포 활성을 조절한다. PD-1를 발견한 혼조 다스쿠도 자동차 비유를 사용했다. CD28과 CTLA-4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거나 주차할 때 사용하는 엑셀러레이터와 주차 브레이크라면, 이미 활성화된 T세포에서 작동하는 PD-1은 도로에서 달리고 있는 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다. 

(...)

공동 연구진은 B7 유전자와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진 유전자들을 골라서, 이 유전자들이 세포에서 발현시킨 단백질이 PD-1과 결합하는지, 또 T세포 활성을 억제하는지 확인했다. 이렇게 찾은 단백질이 PD-L1 (PD-1 ligand)이었다. 이후 PD-1의 파트너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찾은 단백질은 PD-L2로 이름이 지어졌다.


p.267

문제는 각종 암세포에도 PD-L1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있는 항원을 인지하는 T세포의 암세포 공격도 억제된다. 암세포 표면에 있는 PD-L1과 T세포 표면에 있는 PD-1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T세포 활성화를 억제하기 때문이었다. 바이러스 등 병원체에 만성적으로 감염되어 있는 상태에서 세포독성 T세포 (CD8 T세포)가 항원전시세포나 암세포로부터 계속 항원 자극을 받아도 T세포가 더 이상 활성화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도 PD-1과 PD-L1의 상호작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268

혼조 다스쿠 연구실에서 PD-1 연구를 계속하던 대학원생 이와이 요시코 (1971~)는 PD-L1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조작한 암세포를 쥐에 주입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PD-L1이 많이 만들어지는 암세포는 그렇지 않은 암세포에 비해 빠르게 증식했다. PD-L1으로 암세포는 면역 회피를 일으킨 것이다. PD-L1에 대응하는 항체를 같이 주입해 PD-1과 PD-L1의 상호작용을 억제하면 암세포가 빠르게 증식하지 않았다. PD-1 유전자가 망가진 쥐에 암세포를 주입하면 암세포는 빠르게 없어졌다. PD-1과 PD-L1의 상호작용 억제로 암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동물모델에서 입증된 셈이다.

(...)

단, PD-L1은 많은 암세포에 있고, PD-L1 발현 정도가 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마커로 사용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PD-1/PD-L1의 상호작용을 억제해 암세포에 의한 T세포 불활성화를 막고,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 활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p.281

이 임상시험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효능 비교 평가의 기준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기존의 항암제에서 적용하던 객관적 반응률을 적용했다면, 임상시험은 실패한 것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기존 항암제와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신약을 개발하려면, 신약의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도 새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11년, 임상3상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FDA는 BMS의 anti-CTLA-4 항체인 이필리무맙을 흑색종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게 허가했다. 최초의 면역관문억제제인 여보이 (Yervoy)가 탄생했다. 


p.288

머크는 2013년 1월 전이성 흑색종을 치료하는 치료 물질로 펨브롤리주맙의 혁신 치료제 지정을 받았다. 2014년 9월에는 이필리무맙으로 치료받은 전이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PD-1 항체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치료제의 이름은 키트루다 (keytruda)였다. 같은 질병을 대상으로 승인을 받은 BMS의 PD-1 항체인 니볼루맙이 옵디보 (opdivo)라는 이름으로 판매 승인을 받은 것보다 3개월 빨랐다. 


p.291

글리벡 같은 표적항암제나 허셉틴 등의 항체의약품은 대개 특정한 유전적 손상이 있는 환자에게만 작용한다. 글리벡으로 치료 효과를 보려면 환자에게 BCR/ABL 융합 단백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환자에게 BCR/ABL 단백질이 있는지 미리 확인한 후에 치료제를 처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BCR/ABL 단백질 유무는 치료제 처방을 위한 '바이오마커'가 된다. 허셉틴은 HER2 유전자의 증폭/과발현을 바이오마커로 삼는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전체 환자 가운데 약 20% 내외의 환자에게는 잘 반응하지만, 나머지 환자에게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 면역관문억제제도 어떤 환자에게 치료효과를 낼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즉 면역관문억제제의 효능을 미리 확인할 바이오마커를 찾아낸다면 1회 투여에 600만원, 1년 치료에 1억원 이상이 필요한 고가의 면역관문억제제를 약효를 볼 수 있는 환자에게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머크도 바이오마커를 찾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BMS의 니볼루맙 임상시험에서는 PD-L1 발현이 검출되지 않은 환자도 등록이 가능했지만) 펨브롤리주맙 임상3상은 암세포 가운데 PD-L1 발현이 1% 이상인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암세포 가운데 PD-L1이 50% 이상 발현되는 환자와 전체 환자를 구분해 보았을 때, 펨브롤리주맙은 PD-L1이 암세포에서 50% 이상 발현된 환자군에서 좀 더 확실하게 반응했다. PD-L1 발현 여부를 바이오마커로 삼아 임상시험 대상자를 선별하는 머크의 전략은 의미 있었다.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펨브롤리주맙이 니볼루맙보다 빠르게 승인받는 데 이 임상시험 결과가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두 약물은 같은 타깃에 작용하는 메커니즘도 거의 비슷했지만, 바이오마커의 기준을 세우고 임상시험 대상을 선정하는 것에 따라 1차 치료제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의 운명이 갈렸다. 이후 면역관문억제제를 처방할 환자를 선별할 때 암세포에서 PD-L1이 얼마나 많이 발현되는지는 치료 대상을 선별하는 중요한 정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PD-L1은 유방암 환자의 HER2 유전자 발현이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BCR/ABL 융합 유전자처럼 약효를 예측하는 확실한 바이오마커로 보기 어려웠다. PD-1 항체의 효과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할 바이오마커가 필요했다.


p.297

연구는 계속되었다. 여러 종류 암에서 PD-1 항체에 대한 반응률과 돌연변이 정도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돌연변이를 정량화한 수치는 종양변이부담 (tumor mutation burden, TMB; 암 조직의 시퀀싱 결과에서 1백만 염기서열마다 관찰되는 돌연변이 수)이라는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었다. 돌연변이가 암 조직에 발생한 정도를 정량화하면, PD-1 항체의 치료 효과를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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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 암은 한꺼번에 많은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고, 한 명의 환자에게 유래한 암 조직에서 발견되는 암세포들도 저마다 다른 유전변이를 가진다. 암 환자에서 발생한 유전적인 변화를 모두 다 알아낸다고 해도, 대응하는 약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운이 좋아 돌연변이로 변형된 단백질을 억제하는 약물을 찾아도, 암 조직을 구성하는 암세포들은 서로 다른 유전적 조성을 가지므로 해당 약물에 손상받지 않는 다른 유전적 조성을 가진 세포가 증식한다. 이렇게 되면 암 조직의 성격이 변해버려 어렵게 찾은 약물의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개인화된 암치료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한 치료법이었고,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p.301

면역관문억제제로 없어지는 종양 조직과 그렇지 않은 종양 조직은 종양미세환경 (tumor microenvironment)에 차이가 있다. 어떤 종양 조직에서는 암세포가 아닌 각종 면역세포들이 동시에 있다. 이런 종양 조직은 한 종류의 면역관문억제제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면역세포가 활성화되며 종양 조직이 제거된다. 어떤 종양 조직은 면역세포들이 많지 않고, 어떤 경우는 면역세포가 인식하는 암 항원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양 조직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는 면역세포가 종양 내로 침투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 한 가지 면역관문억제를 해제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메커니즘 (예를 들어 CTLA-4는 초기 단계 T세포의 활성화를 조절하며, PD-1은 이미 활성화된 T세포의 활성을 조절)으로 작용하는 면역관문억제제를 함께 투여해 T세포를 활성화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었다.


p.303

2018년 10월, 제임스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은 이들이 발견한 면역관문억제 단백질과 이를 억제하는 항체가 암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면역항암 치료가 암을 치료하는 길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면역관문억제제인 CTLA-4나 PD-1 억제제에 반응하는 환자는, 사용이 허가된 암을 앓고 있는 전체 환자의 30% 내외에 불과하다. 30%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 70% 정도의 환자는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더 많은 암 환자가 면역항암 치료로 생명을 구하려면 CTLA-4와 PD-1/PD-L1 이외의 새 면역관문 타깃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연구자가 면역체계를 운용하는 조절 단백질 쌍을 발굴하고 있으며, 새 면역관문 타깃을 억제하는 다양한 항체들도 개발 중이다.

(...)

바이오마커 부분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다. PD-L1 발현 수준은 면역관문억제제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처럼 사용되지만, 이 정도의 예측 능력을 지닌 다른 바이오마커는 없다. TMB처럼 전체적인 돌연변이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도 불충분하다. 새롭고 정확한 바이오마커 발굴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미 개발된 여러 항암 치료제와 면역관문억제제를 조합해, 더 높은 치료 효과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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