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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남 Jul 01. 2015

꿈도 야망도 야근 마치고

소처럼 일하는 그대여 꿈꾸라

 밝은 하늘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은 게  5개월쯤 지났으려나. 아침이 밝아오기 전 출근해서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고객과 밀당하고, 서류와 씨름하다 열두시가 되어서야 집에 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졸린 눈 비비며 허겁지겁 출근하고, 녹초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선 잠만 자고 나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도 안쓰러워했지만, 이 또한 어쩌랴. 그렇지 않은 직장인 어딨겠냐며 오늘도 버티는 신입의 일상이었다. 


 다 그런 거지 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머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냥 버티면 될 거라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은행을 들어오기 위해 공부했던 거시경제와 금융의 순환구조, 자본의 역할과 은행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은 단 한순간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신입행원의 가슴을 현장이란 날카로운 창대가 정통으로 꽂혀 들어왔다. 


시재도 못 맞추는데 신용평가는 무슨


 규정에 빠삭한 전임자가 한 시간이면 처리할 일이었다. 허나, 똑같은 일을 똑같은 자리에 앉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규집 찾아가며, 본부부서에 물어가며 두 시간에 걸쳐 보고서 한 장 만들어 내는 게 다였다. 심지어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면 딱 맞다는 시재가 왜 그렇게 안 맞는 날이 생기는지. 나도 내가 답답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내 도장이 찍힌 서류에  뿌듯해하며 책임자에게 결재를 올렸다. 물론, 다시 해야 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하나하나 검토해줘야 하는 책임자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래서 늘 끙끙 앓는 마음으로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았다.  


 '죄송합니다. 일 잘하는 계장이 있던 자리에 신입행원인 제가 와서 죄송합니다.'


 신입이라서 이해한다지만, 어느 정도의 실적이 나와야 하는 영업점에서 신입 한 명을 떠 안는다는 것은 서로에게도 부담되는 일이었다. 나로 인해 더 힘들어하는 주위 직원들을 매일같이 봐야 하는 내 마음도 죽을 만큼 미안했다. 모두가 겪어내는 평범한 사회초년생의 고민이겠지만, 모두가 겪는다고 해서- 당사자의 마음이 달래 지는 것은 아니기에 나 또한 똑같이 아파했다. 고민했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라던 직장인은 이게 아니었는데'


 정확하게 열두시가 되면 조용하게 야근하던 은행 객장너머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은행 입구에 있는 ATM 코너가 밤 12시면 자동으로 잠기는데, 혹시 그 순간 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고객이 있다면 얼른 나가시란 멘트와 함께 몇 분간 음악이 흘러나온다. 야근을 하는 직원에겐 그게 집에가란 알람이다. 그리고 여전히 생산성 부족한 내가 오늘 하루도 회사에 덜 미안할 수 있는 면죄부를 얻는 순간의 알림이다. 어쨌든 그때까지 회사에 충성을 다했다는 안도감으로 은행 문을 나서면 열댓 시간 만에 느껴보는 선선한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출근하면 퇴근할 때 까지 건물 밖으로 나갈 일 없는 내가 장작 열여섯 시간 만에 들이키는 바깥 공기. 우습게도 이 순간의 자유를 자유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나는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참 이상주의자였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시인이 되겠다며 고등학교 때 창틀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노래했었고, 세상을 온 가슴으로 품어보겠다고 대학교 땐 유럽으로 프리허그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건강한 삶을 살겠다고 보디빌딩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최연소 학부 학생회장으로 직설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엄청난 이상주의자 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퇴근 후 작은 일기장 펼쳐놓고 적어 내려가는 오늘의 나는 무섭도록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다. 


'나를 뽑아준 회사에 충성을 다해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지점에 와서 얼마나 싫을까. 나를 가르치는 차장님은 얼마나 답답할까. 더 많이 야근해서 하나라도 빨리  익혀야겠다.'


 순진하도록 현실적인 생각으로 버텼다. 어쩌면 수백 장의 이력서를 쓰고, 수십 번의 면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생겨버린 현실에 대한 강력한 방어기재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이 관념을 만들어 냈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리천장처럼 탄탄하게 내 사상을 지배하는 이 생각들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결국 나는 이 상황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없을 거란 두려움이 만들어낸 무서운 환영 덕분에 1년이 넘는 시간을 야근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은행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꿈을 꿀 시간


 입사 후 1년간 단 하루의 휴가도 쓰지 않았다. 월차도, 연차도, 여름휴가도. 쓰지 않았다. 지독하게 겁먹은 내 자아가 내 휴가를 막았다. 꼬박 1년이 지난 어느 날, 여느 때 처럼 야근했다는 뿌듯함을 등에 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눈물이 흘렀다. 하루 종일 부딫힌 업무의 부담감보다, 꿈을 잃어버린(사실은 모른 척 하고 있는) 나를 관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확실히 내가 어떤 꿈을 꾸던 사람이었는지 깨닫지 못했지만,  열여섯 시간을 사무실 책상에서 보내며 주눅 들어버린 직장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오랜 시간 책상 앞에서 버텼다는 야근의 뿌듯함으로 스스로를 달래 보는 비겁한 직장인의 형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꿈을 쓰기 시작했다. 이 꿈 들키면 직장에서 불순분자로 찍힐까 노심초사하며, 겁먹은 신입행원의 겁 없는 여행 프로젝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올 여름,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곳으로, 나를 데려가리.

아, 

일단

야근부터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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