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그냥 놔두거나, 바쁘거나, 다른 일에 집중하면 흘러가버리기보다는 꾸준히 머릿속에 맴돌며 이 생각은 한 편의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단순한 (잡)생각이라기보다는 글감에 가까운 생각들이다.
이런 글감들은 내 머리 안에서 생성됐지만, 그에 대한 지배력을 내가 갖고 있지 않기에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는다. 출근하다가, 일하다가, 자려다가도 문득문득 까꿍하고 고개를 든다. 이런 글감들을 없애버리는 방법은 바로 글로 써버리는 것이다. 머릿속의 글감을 물리적인 글의 형태로 전환한다는 건 그 글감을 ‘콘텐츠 생산’이라는 관점에 활용하는 것이자, 소비하고 소진하는 것이다. 하나의 글, 또는 하나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있는 글감(소재)이 죽어야 한다.
그 글감들이 영영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글감들도 사라진다. 활용되지도, 소비되지도 않고 그냥 잊힌다. 글감이 잊히는 걸 과거에도 지금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쓰일 글은 쓰인다고 믿으며, 잊힐지언정 그 글감은 증발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 어딘가에 그 글감들이 저장된다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 정녕 소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라지면 그만이다. 그건 내 게으름이나 무능 탓이 아니고, 그저 그 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운명이었을 뿐.
마음 한 구석으로는 소중한 글감을 쓸데없이 소진하고 싶지 않은 마음(또는 자위)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다. 글쓰기 소재는 한 번 소진하고 나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기에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기에 하루키는 비슷한 소재와 느낌의 소설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지만, 하루키가 그렇다면 그런 거라고 믿는다.
지금부터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감들을 길든, 짧든, 온전하든, 파편적이든 글로 전환하여 소진시키기로 했다. 그 글감들이 증발되는 게 아까워서도 아니고, 글을 쓰고 싶다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생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머리를 비우고 싶다. 생각을 덜 하고 싶다. 생각들을 글로 뱉어냄으로써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진부하지만,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가 됐다. 생각 탈출. 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