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바퀴벌레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바퀴벌레는 지구 최대의 청소부 집단이다. 바퀴벌레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순식간에 각종 시체와 썩은 나무로 가득 찰 것이다. 또한 매우 고단백(?)인 바퀴벌레가 사라진다면 바퀴벌레를 주식으로 하는 설치류(쥐)와 조류들도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다른 생물의 피만 빨아먹고, 멸종하더라도 세상에 전혀 지장이 없는 모기에 비하면 바퀴벌레는 지구 생태계의 최하층을 담당하는, 지구 입장에서는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밤 거실 천장에 붙어 있는 내 손가락 크기만 한 바퀴벌레를 발견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두 딸과 '너무 큰 거 아니냐'는 소리만 되뇌는 와이프를 뒤로 하고 사실 바퀴벌레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항상 우리 주위에 있으며, 지구에 매우 소중한 존재이며, 저 친구(=거실에 있는 바퀴벌레)는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 거실까지 들어와 길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라며 마인드컨트롤을 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다지 아낌을 실천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아낌없이 티슈를 꺼냈다.
"휴지로 잡으려고? 파리채 같은 걸로 잡아햐 하는 거 아니야?"
휴지로 잡다가 놓칠까 걱정이 됐던 와이프는 파리채(같은 걸)로 잡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 파편이 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바퀴벌레는 죽는 순간에도 알을 낳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 집 거실은.. 후아.. 이하 생략..
의자를 밟고 올라가니 아내의 말대로 바퀴벌레는 정말 컸다. 눈알까지 또렷하게 보여서 마치 나와 눈이 마주치는 느낌마저 들었다.
'도망가면 어떡하지? 내 쪽으로 날아오면 어떡하지? 아니 애들 쪽으로 날아가면 어떡하지? 아빠는 예전에 어떻게 그렇게 씩씩하게 바퀴벌레를 잡았지? 아빠는 바퀴벌레가 안 무서웠나?'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순식간에 손을 휙 뻗었고!!!
무사히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되는 바선생이지만, 제발 내 눈앞에서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