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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Dec 22. 2024

주차된 차 긁기

feat. 두 명의 남성 차주

역시 나는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푼다.
어제 받은, 아니 최근 받은 스트레스가 어쩌면
인식했던 것보다 상당했는지, 결국 또 적는 나.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꽤 좋아하는 장면이다.

누가 봐도 명장면 / 미녀는 괴로워

너무 웃겨서 한 번, 여배우가 예뻐서 두 번 보게

되는 장면으로, 아마도 사랑받는 장면이지 싶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니,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미리 짚자면 나는, 어떻게 생겼다 말하기 어렵다.


저렇게 생긴 미녀라면 남자가 다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분명 각자에게는 취향이란 것이 있고

나에게는 매니아가 간혹 있었던 듯 하기는 하나,

뭐, 영화에 비할 바 아니다. 생각이 났다는 것뿐.


지금까지 두 번, 모르는 번호로 전화해 사과했다.

부끄럽게도 남의 차를 긁었기 때문이다.


처음은 왕초보일 때였다. 연주 전 리허설에 가다

길치인 내가 네비를 헷갈려(초행에 무심코 가면

쉽게 헷갈릴 법 한 미묘한 길이기는 함)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믿기지 않게도, T맵이

새로고침을 셀프로 반복하며 말도 안 되는 화면과

안내를 하기 시작하여 소위 멘붕에 직면해 버렸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괜찮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주변에라도 방향을 묻고 싶었으나 허허벌판 같은

도로 옆, 심지어 건물조차 없었고 티맵은 미ㅊ..다.


그렇게 돌고 돌다 뒤늦게 방향이 제대로 잡혀 급히

목적지를 향해 유턴하던 중 방심한 나머지, 주차가

되어 있던 차를 긁은 것이다. 다만, 원래 그 장소는

분명 '도로'였고 그 차는 멀쩡한 2차선에 불법 주차

중이었다. 그래도 신경을 써서 차를 돌렸다면 물론

긁지 않았을 것이다. 별로 놀라지 않을 만큼 미세한

접촉사고라 당황만 한 채 확인하니 꽤 긁혀 있었.


그때부터 크게 당황했다. 왕초보의 첫 사고였으니.

전화를 걸자 남성이 짜증을 내며 기다리라고 했다.

왜 OO 시청 직원이 도로에 불법주차를 한 것일까.


"아니, 왜, 멀쩡히 서 있는 차를 긁고 하.. 나 진짜!"


화가 난 차주에게 무어라 사과를 해야 하나 보험사

직원은 언제 도착하나 곧 연주인데 직전 리허설은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차주

중년 남성이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차를

 천천히 돌렸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서.. 초보라..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는 나에게...

마디도 무어라 하거나 짜증도 전혀 내지 않고

멋쩍어하더니


"아, 괜찮아요. 어차피 보험 처리하는 건데요 뭐."

"그래도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럴 수도 있죠 뭐."


머릿속에 온통 리허설 생각뿐이라 딴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이 영상을 보자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며

그날의 연주 전 내 옷차림이 기억났다. 괜찮았나

눈썰미가 없어 잘 몰랐는데 후에  엄마가 그 옷을

보시더니 (옷이) 되게 예쁘다고 하셨다. 그랬나


사과를 많이 했기 때문에 화를 안 낸 걸까, 모르니

다음 사고로 넘어가자.



번째는 두어 달 전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미묘하게도 역시 연주 당일이었는데, 연주 날마다

머피의 법칙처럼 몇 년 중에도 없던 일이 일어나듯

그날도 그랬다.


물론 이미 페달링에 익숙하고 줄곧 고속도로에서

1차로 위 빌런을 피해 2, 3 차로를 오가면서라도

시간을 아껴보려 두뇌를 쓰며 운전하기도 하지만

남자들이 가진 뛰어난 공간감각은 나에게, 없다.


그렇다면 연습을 통해 발전시킬 수는 있을 텐데

상황상 연습에 충분한 공을 들이지는 않았으니,

주차를 못 하는 사람일 리 없지만 남자에 비하면

주차에 뛰어날 리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운전 잘하세요? 아주! 잘! 하세요?!"


주차 안내원이 여러 번 물었던 이유는 그 공간이

주차에 극히 까다로운 자리였기 때문인데 역시나

리허설에 미리 올라갈 생각에, 굳이 그 레벨 높은

자리에 바로 대겠다 답했고, 곧 차가 벽에 긁혔다.


'하....'


연주 전에 예민해져서인지 늦은 취침 이른 기상,

수면 부족과 서두르는 마음, 내 태도의 문제였다.

그래도 수년만에 혼자 긁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문제는 연주  발생했다.

엄청나게 지쳤고, 다 끝나니 긴장까지 풀려 매우

노곤한 상태로 차를 몰고 빠져나가려 하자, 그새

이중 주차한 차들이 많아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원래 나가야 할 방향이 다 막혀 다르게 나가려다

타인의 차에 닿는 순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오전에 벽에 긁고,

오후에 차를 긁다니..

오늘은 운전을 하지 말았어야 할 상태였다


라고 생각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전화했다.

참, 걸 데가 없어 차를 긁고 전화를 하네, 하면서.


5여분 뒤 차주가 내려왔다.


사과하며 어떻게 보상할지를 상의하려는데

아마 나보다 분명 어릴 것 같은 이 남성이 날

잘 쳐다보지 못하며 연신 괜찮다는 것이었다.


이날은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나른한 탓에

나의 태도는 사고 안 낸 듯 침착할 정도였으니

누가 보면 이 남자가 사고를 낸 줄 알 지도.....

(약간 산만..해 보였다. 내가 되레 침착하고..)


- 그냥 가셔도 될 것 같아요.

- 네?!

- 이 정도는 제가 한 번 알아서..

- 아니 그게 무슨...


오히려 이때부터 나의 당황이 시작되었다.

보상을 하겠다는데 안 받겠다니, 무슨 말인가.

누가 봐도 차가 긁혔는데 보상은 받아야 맞지.


- 세게 깊이 긁힌 거는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 그래도 긁힌 게 보이는데요...

- 괜찮아요.


안 그래도 나른한 꿈속 같은데 꿈인지 생시인지...


- 정말 괜찮아요, 그냥 가셔도 돼요. 괜찮아요.


이 말을 할 때에도 눈을 제대로 한 번도 못 마주쳐

내가 이 사람 얼굴이라도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뭐라도 선물해야 하나? 어떤 식으로 보상하지?

머릿속은 꿈결 물음표에, 상황은....


-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얼마라도..

- 아니에요, 정말 안 주셔도 돼요. 원래 기스 좀

 있었어요. 좀 더 났다고 어떻게 되는 것 아니고

 전화도 주셨잖아요.

- 어디에..(긁었는데 그럼 전화하지 튀겠니...)

- 여기 보면.. 여기 이 작은 거, 이거는 예전부터

 있던 기스에요.

 - (그것보다 내가 긁은 게 훨씬 잘 보이는데...)

- 괜찮아요. 별로 안 긁혔네요.


너무 착한 것 아니야...?

세상에 뭐 이렇게 착한 사람이 다 있지?

오늘 나 불쌍해서 하나님이 봐주시는 건가.

너무 고맙네.. 커피라도 사 주고 싶네.. 하지만

돌아서면 이제 얼굴을 잊어서(안면기억력최하)

나중에 여기에서 마주쳐도 보답조차 못할 텐데..

이렇게 저 남자애를 보내도 되는 건가..

내가 매우 잘못하는 기분마저 드는데.. 괜찮나...


결국 착한 인물은 조건 없이 날 집에 보내주었고

돌아오며 내심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은혜는, 작은 것이라도 갚아야 한다 배웠는데

안타깝게도 도저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글을 쓰면서야 깨달았는데,

문자라도 보내서 어떤 식으로든 보답할 생각은

왜 못했던 것일까... 그정도로 잠결에 흘러간듯.

올해 가기 전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려 찾아보니

문자는 보이지 않아 연락처를 이미 알 수 없구나.


죄송했고, 감사합니다.



정신이 매우 맑은 날에만 운전대를 잡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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