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함
성향상 더욱 그러한 것일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 아마도 성향이다.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
나에게는 '진실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
꾸준히 금전적 이익을 줄 수 있거나
호의를 베풀어 큰 도움을 준다거나
그저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advantage가 내게 압도적이라도
진실하지 않으면 결국 조용히 끊는다.
설령 그들이 내 곁을 원한다 하여도
끊어내는 그것이 적어도 그들을 향한
나의 마지막 예의이자 존중에 속한다.
앞뒤 다른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기만과 모욕이 아니겠는가.
다른 차원
물론 고마운 것은 고맙고 감사한 일이기에
그에 대한 보답이나 표시를 할 수도 있겠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을 수도 있겠으나,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다른 세계다.
모든 사람이 모든 시간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진실성'이란 기본적 마음을 뜻한다.
또한 이 '진실함' 에는 '신뢰'가 바탕이 된다.
아무리 친절해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딱 '지인'까지 일뿐.
이상주의자
나는 이상주의적 사고를 가진 편이기 때문에
MBTI의 자세한 설명 글에서처럼, 설사 내게
악행을 저지른 상대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좋게 해석해 보고자 열심히 애쓴다.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향이 그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유독 잘 보아서인지
한눈에 알아보는 어떤 것들이 늘 존재한다.
영적인 꿈을 미리 꾸면 꼭 그 일들이 일어나듯
내게 애초에 보였던 것들, 그래서 알았던 것은
한 번도 틀림없이 결국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맨 처음부터 알아본 그것'을 애써 외면해 왔다.
상대를 판단하지 않기 위해. 이상주의자답게.
긴 세월의 노력이 무색하게
단 한 명, 한 번도 예외나 착각은 없었다는
그 사실이 씁쓸한 미소를 가져올 때가 있다.
그렇다면 괜한 고생을 한 것은 아닐까.
무얼 그리 애썼을까. 무슨 정이 많다고.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노력은 해야 했다.
그래서 어렴풋 알면서도 그 어리석음을 종종,
혹은 생각보다 자주 반복하기도 해 온 것이다.
고마웠던 이유
오래되어 언제인지도 모르는 언젠가의 일이다.
옛 베프가 내게 전화해 버르장머리 없게 말했다.
"결혼했어? 너 아직도 기독교냐?"
상대는 예전보다 훨씬 망가지고 비뚤어져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노조, 둘째는 좌파, 셋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야.
그러니 네가 만일 아직도 기독교라면 예전처럼
우리가 가까운 사이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
내가 전화한 것도 아니고, 전화하라고 말한 적도
없으며, 다시 친구 될 생각도 없었기에 황당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혹은 명쾌했다.
저런 말에 무엇이 고마웠냐고? 유쾌할 리 없지만
적어도 진실했지 않은가. 그 애에게 가식은 없다.
가식 따위란 그 친구의 일평생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는 그것에 감사했다.
물론 그 인물을 다시 친구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 친구일 때에, 그렇게까지 비뚤지도 않았었고.
그러나 친구의 진실함 만큼은 지금도 인정한다.
그것이 우리가 한 때 가장 가까울 수 있던 이유.
그 친구는 적어도 뒤에서 구시렁대지 않으며
좋은 사람인척 안 하고 마지막까지 진실했다.
한때 내가 악담 같은 편지를 보낸 적이 있지만
.. 그것 아나?
지금도 누가 그 친구를 흉보면 내가 대변한다.
이미 충분
속 드러내기를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고
모두가 속을 드러내면 재앙의 시작일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친절이나 가식은 내 근처에도
가져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안 오면 되잖나.
나는 호의나 친절에 목마른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는 '다수'가 필요하지 않으며, 감사히도
가까이에 충분히 진실된 벗들이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일반치 보다는 아주 조금 더 지녔기에
처음에는 나도 오랫동안 모른 척해 주면서
이상주의자답게 최선을 다해 좋게 보겠지만
곧 감출 수 없는 결말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를 대하는 마음이 진실하지 않다면 말이다.
나의 선택
문득 생각했다.
착각에 빠져 헛소리를 하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어쨌든 나에게 사과는 한 그 인물에 대해
내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인가.
가만히 있어도 내 편이던 친구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설명해 줄 생각이 없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잘 지내면 된다. 그러나 나는 생각 중이다.
끊게 되더라도, 그리고 상대가 그로 인하여
여기저기 헛소리를 남발하는 일이 생긴 대도
나는 그에 맞서거나 해명에 힘쓰지 않을 테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었고
어차피 내 진짜 벗들은 여전히 곁에 있으며
이로써 입술과 마음이 정죄의 죄에서 벗어나는
특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유익하다.
경험상, 세월이 흐르고 나면,
설령 너무 그럴싸해서 내가 뒤집어쓴대도
진실하지 못했던 사람은 결국 외면당했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던 Mutual friends는,
'사실임에도' 욕을 안 한 내 옆에 남았더라.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선택은 변함이 없다.
부탁
나에게 진실하기 어려우면 원만히만 지내자.
만일 도움이 필요하면 딱 그만큼만 받아가고
친한 척, 생각해 주는 척, 착한 척하지 말자.
당신이 진실할 수 있는 이에게 가까이 가자.
모두에게 항상 착한듯한 사람은 문제가 있다.
사실은 누구도 완벽히 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 위선과 가식은 다르다.
그러므로 정중하고 단호하게,
이쪽에서 그 위선을 거절한다.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인내할 뿐.
때가 되고 선을 넘으면, 신의 특별한 명령이 없는 한,
가식의 세계로부터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I am sick of the hypocrisy.
I hate the polite insincerity.
Let's be honest. We are all sinners.
위선자는 자기 입으로 자기 이웃을 망하게 하나
의인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출되리로다.
Proverbs 11:9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Matthew 7:5
위선자가 비록 이익을 얻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의 혼을 빼앗아 가시면 무엇이 그의 소망이
되겠느냐?고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겠느냐?Job 27:8-9
내가 허탄한 사람들과 함께 앉지 아니하였으며
위선자들과 함께 다니지도 아니하리이다.
Psalm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