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족과 결핍

불편함 속의 진실

by Essie

카톡까지 탈퇴하고 답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 외에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여년 간 베프 자리를 차지했던 인물로부터 온 전화에 빨간색을 누르고 만남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이래야 했던 날이 얼마나 많았나. 진작 그랬어야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가 조금 전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말을 듣고도, "지금 이런 얘기해서 미안한데"라며 통화 가능한지 여부를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남자 고민 이야기를 하던 밤을 잊을 수 없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 없다. 사과를 듣지도 못했고, 나는 이미 알아버렸다. 아니, 이제야 알게 된 것일 테다. 내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는데, 아니, 넌 내가 아니라 '네 위안'이 필요했을 뿐이야. 당분간 아니라 앞으로도 볼 자신은 없다.


약 4개월 안에 베프가 될 뻔한, 아니 그 자리에 이미 들어앉았던 인물이 얼마전 나에게 진실을 말했다. 그간의 내 호의를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무엇이 나를 속상하게 하냐고? 혼자가 아닌 줄 알았다면 결코 그런식으로 챙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다 얘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더 일찍 알릴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됐을 즈음에는, 이미 무엇을 말해도 의미가 없는 시점이다.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상대의 진심을 기만할 수 있음을 이번 일을 통하여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심지어 모욕적이었고,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 상대의 기분 역시 처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참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신, 아직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지금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나도 본인도 여자베프, 남자베프라고 여긴 두 인물이, 비슷한 시기에, 내 삶의 특별한 영역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으려 했지만 그러기엔 나의 입장이 너무도 비참하므로 내가 정중하게 그들을 거절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내 대가리는 꽃밭이었고 '"강제 화단 정리"는 시작되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켜 줄 그 무언가를 찾아 헤멘다. 만족이란 없기에 찾는다.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이 믿어온 것, 선택한 것, 쏟아온 시간 - 모든 것이 붕괴되니
애써 부정하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난 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만족할 수 없단 걸. 남의 얘기가 아니라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이것은, 만 번 아니라 평생 반복할 문구였다.

만족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면서 만족을 배우는 거다.


어제 특강에서 한 남학생이 수줍게 질문했다.
나 개인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물었다.

"그건 마치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청중 웃음) 그래도 답을 드려 보자면, 일단 기본적으로는, 물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저의 구원자이시고 아버지이시죠. 이런 말 좀 거칠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면 일단 여기 없었을 거예요, 별로 이땅에서 살고 싶지 않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질문 주셨잖아요. 아주 개인적으로라면... 저에게 하나님은 연인입니다. Lover of my soul."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