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시원함
3일째 아침.
지난밤 블루라군에서의 휴식은 너무나 포근했다.
살짝 흐려 눈이 올 듯 말듯한 날씨가,
늦게 맞이할 수 있는 아이슬란드의 흐릿한 새벽이,
이불속에 웅크려서 바라보는, 푸른빛으로 다가오는 바깥 풍경이 더없이 고요하고 상쾌한 느낌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행복한 스트레스도 끊임없는 의사결정의 과정이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자연 속에서의 깊은 휴식은 너무나 평화로운 경험이었다.
이 평화로움을 뒤로, 갓 구운 빵 냄새를 따라 로비 라운지로 -
오늘의 소중한 일정을 위해 든든한 아침을 맞으러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은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귀여운 조식 세팅.
먼저,
향긋한 당근주스를 한잔 쭉 들이킨 뒤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접시에 담는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매일 요거트를 먹었는데-
아이슬란드 요거트는 산양이 만든 것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같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모든 음식들이 신선했고,
또 부족함 없이 가득 준비해주셔서 배부르게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여정: 셀랴란드스포스>
우리는 가장 먼저 셀래란드스포스라고 하는 가까운 폭포로 향했다.
멀리에서도 긴 물줄기가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 폭포는 특별한 것이 폭포 안쪽까지 들어가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폭포의 시원하게 꽂히는 물줄기와 에너지를 물병 가득 담아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우렁찬 소리가 우리를 압도했다.
폭포를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
점점 더 커지는 쏴아- 쏟아지는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시원한 소리.
드디어 마침내!
우리는 폭포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폭포가 보는 세상은 이런 모습일까.
아름다웠고,
신비했고,
물살에 여러 해 풍화된 자연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영화를 보면 남녀 주인공이 기찻길 옆에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고는 마구 용기를 얻어갔던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 또한 있는 힘껏 꺄아아아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좀 더 세게
꺄아아아아악!!!
바위를 맞고 또 한 번 튀는 물줄기를 맞으며-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꺄아아아아아아~~~~!
본인의 목청이 이 정도까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무척 시원했다.
무척 개운했다.
이 세상에 거리낄 것 없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막 달려 나가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이동하는 길은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멀리 있는 설산을 향해 내 달리다 보면, 눈으로 뒤덮인 화산 지대가 이 곳이 지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다른 행성에서 인간이 새로운 문명을 발견하면 이런 모습일 것만 같았다.
잘 닦아놓은 도로와 형언할 수 없이 신비로운 풍경들을 그렇게 지나쳐 아이슬란드에서 너무나 유명한 폭포인 스코가포스로 향했다.
새로운 감동을 발견하기 위해.
<두 번째 여정: 스코가포스>
와...
스코가 포스에 도착했을 땐 그저 넋을 잃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내가 만날 수 없는 거대한 것을 만난듯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경이로웠다.
물안개로 가득한 신비로운 자태로 우리를 반기는 스코가포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폭포 곁으로 가까이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의 멋진 모습을 계속해서 담는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자상하고 착한 남편.
누군가가 말하길, 사람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강에 떠내려오는 대바구니를 누군가가 건지는 것과 같다는데
정말이지 그때 건진 대바구니가 내 운명이었다니!
큰 폭포를 지나 가느다란 물줄기로 나눠져 또 다른 큰 물줄기로 흘러가는 모습과 남편의 모습이 절묘하게 우리의 연애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스코가포스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
폭포 위에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었다.
꽤 숨찬 걸음을 걸어야 볼 수 있지만!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제창하며 기쁜 걸음을 계속했다.
올라가는 중턱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처럼 작아질 만큼 올라왔을 때,
또 하나의 황홀한 광경을 마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
야호!
시원하게 떨어지는 포포수와
그 위를 보란 듯이 비상하는 흰새들의 모습.
그 아름다움을 연신 눈에 담고 사진으로도 남겨본다.
오전의 알뜰한 폭포 탐험 이후,
따뜻한 수프가 간절해질 무렵!
작은 레스토랑에 수프 + 빵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이슬란드의 노래가 나오는
따뜻하고 작은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기운을 가득 채웠다.
식사를 다 한 후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는,
펑펑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여정: 디르홀레이>
디르홀레이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구불구불한 산 중턱을 달려가야 한다.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인데,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디르홀레이를 정상에서 내려다보려면 올라가는 길마다 100m의 안전거리를 확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긴 시간마저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곳은 아이슬란드이기 때문이다.
거북이걸음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들으니, 영화 속 한 장면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여행 내내 들었던 노래를 함께 공유해봅니다 :)
James Vincent McMorrow - Glacier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아래로는 검은모래바다가 펼쳐져있고,
안갯속에서 보이는 검은흙과 흰 파도는 저 점이 될 때까지 이어져 있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눈으로만 바라보고 불어오는 바람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이 창백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날씨, 올 때까지의 어려웠던 여정의 생각은 다 사라지고
감동적인 느낌만 가득할 뿐이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그 날의 풍경에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아까울 정도.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디르홀레이!
와...
너무나도 많이 기대했던 코끼리 모양의 바위.
아이슬란드의 상징답게 육중한 몸체로 다가오는 물살에도 끄떡없이, 날아드는 작은 새들의 쉼터가 되어 주었다.
영상으로도 담고, 사진으로도 담을 시점.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다음 여정지인 피야드라그리우퓌르 (협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네 번째 여정: 피야드라글리우퓌르>
네 번째 여정지인 피야드라글리우퓌르는 빙하시대의 마지막인 약 9000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협곡이다.
정해진 위치에 주차를 하고 왕복 4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바람에 미친듯이 몸을 맡긴 억센 풀들과 우리뿐
여타 관광객의 발걸음은 없었다.
우리말 소리와 새소리 이외에는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는
길 위를 걸으며 우리의 만남과 결혼,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비는 그쳐 딱 걷기 딱 좋았고,
볼 위로 차갑게 닿는 바람도 참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볍게 걷는 이 걸음의 기쁨.
웅장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구불구불한 협곡과 지그재그로 굽이치는 강물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저 협곡 너머에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올법한 요정의 나라가 있을 것 같은 신비함이 가득할 것만 같은...
<마지막 여정지: 엘드흐뢰인>
해가지기 시작하는 아이슬란드는 좀처럼 시간을 우리의 마음만큼이나 길게 해를 붙들어주지 않았다.
갓길에 아무렇게나 차를 대어 두고, 마지막 여정지인 엘드흐뢰인에서 푸른 이끼 융단을 즐기기로 했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암괴석 위에 초록색 이끼가 두껍게 덮여있는 풍경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 중하나였다.
발이 푹푹 빠져 고급 페르시아 카펫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들도 달에 가기 전 이곳에서 문워크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눈 오는 날 강아지가 된 듯,
걷고 뛰고 눕고!
두 시간의 눈 오는 밤길 뒤로 우리는 마침내 무사히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일은 제일 기대했던 빙하투어가 있는 날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
신나게 자연과 놀고 어김없이 질 좋고 풍부한 연어요리와 양고기 요리를 잔뜩 시켜 허기진 배룰 채웠다.
맛있는 식사로 녹아드는 오늘의 고단함 그리고 내일의 기대감.
여보! 아이슬란드에 오길 너무 잘했어!!
아이슬란드 신혼여행기를 연재하는 작가에게 공감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곧 다음 편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