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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니바 Apr 13. 2022

옆구리 걱정 안해도 되는 김밥

얼렁뚱땅 만들어도 맛은 최고! 참 쉬운 당근김밥

바야흐로 봄이다. 요즘같이 날씨 좋은 봄날엔 학창 시절, 소풍 때마다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 생각이 간절해진다. 신기하게 소풍을 어디로 갔는지, 친구들과 뭐 하면서 놀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소풍날 아침에 먹던 김밥에 대한 기억만큼은 유난히 선명하다.


코 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김밥 냄새에 소풍날 아침엔 저절로 눈이 번쩍 뜨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엌에 달려가면 바닥에 잔뜩 신문지를 펼쳐놓고 햄, 계란, 당근, 오이 등을 올려 김밥을 말고 있는 엄마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같은 학교에 다녔던 오빠와 나는 소풍 날짜가 매번 같았다. 엄마는 오빠와 내 김밥을 싸면서 동시에 아빠의 출근 전 아침식사, 언니와 오빠의 봄 소풍을 내심 부러워할 어린 동생을 위한 김밥까지 준비하느라 아침 내내 김밥을 말았다.


엄마의 손끝에서 한층 한층 곱게 쌓인 김밥은 순식간에 거대한 김밥 탑으로 진화했고 김밥 탑 곁엔 호수처럼 잔잔한 시래기 된장국이 함께였다. 김밥 먹다가 목이 막힐 때쯤 된장국 한 입 쭉 들이키면 늘 먹던 된장국인데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껌, 젤리 등으로 소풍 배낭을 가득 채우며 갓 만든 김밥을 집어먹다 보면 소풍으로 들뜬 마음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독립을 했더니

매년 봄, 가을마다 찾아오던 소풍이 사라졌다.

자연히 엄마의 김밥도 사라졌다.


물론 어른의 세계에서도 소풍과 김밥을 대신한 것들이 있었다. 대학생 땐 엠티와 답사, 직장인 땐 워크숍, 사내 체육대회 등이 그것이었고 엄마의 김밥은 이들 자리에서 먹는 바비큐와 술로 대체되었다.


동기나 선후배, 교수님들과 함께 가는 대학시절 소풍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직장인이 되어 직장상사, 대표님과 함께 떠난 소풍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맨 정신으로 버텨야 하는 아침부터 맨 정신이 아님에도 버텨야 하는 저녁의 술잔치까지. 집에 돌아오면 숙취와 체력 고갈로 뻗었고 눈을 뜨면 월요일이 코앞임에 좌절했다.


출처 : 무한도전 - 야유회 편 캡처


친구들이나 연인과 함께하는 소풍에서도 김밥은 없었다. 김밥을 직접 싸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자칫 잘못하면 김밥 옆구리가 터져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어른이 되어 좋은 건 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공들여 직접 싼 김밥 보단 파스타나 치킨, 샌드위치 등 주로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때웠다.

 


만들기 정말 쉬운데
건강하고 이쁜 김밥 어디 없나?


모처럼 퇴사도 했겠다 백수의 남아도는 시간은 김밥에 대한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직접 김밥을 만들어보는 거야! 살 안 찌는 김밥으로 유명한 양배추 김밥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양배추만으론 건강함이 부족하니 브로콜리도 넣어야지 잔뜩 욕심을 부렸으나...


결과는 대실패!



망한 양배추 브로콜리 김밥의 흔적.  궁색한 변명 같지만 옆구리가 터져서 그렇지 맛은 좋았다


이후에도 수차례 김밥말기에 도전했으나 어설픈 김밥 초보에게 김밥의 벽은 높고도 험준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망한 김밥에 대해 토로했다. 엄마는 김밥의 달인다운 차분한 목소리로 문제의 원인을 잡아냈다.


김밥 속재료엔 물기가 없어야 해.
양배추, 단무지, 우엉 같은 애들
물기 잘 짜주고 만 거야?



옆구리가 터져 망한 김밥의 원인은 물기 많은 속재료였다.


실패를 딛고 일어나 다시 냉장고를 열었으나 슬프게도 김밥 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 많던 양배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텅 빈 냉장고 한켠에 당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생각해보니 물기가 적으면서 요리가 쉽고 건강한 김밥 속재료라면 당연 당근이 1순위였다.


당근 김밥으로 가자! 이번엔 욕심을 내려놓고 당근과 몸에 좋은 깻잎, 물기 없는 치즈를 넣어 최대한 옆구리 터질 걱정 없는 김밥으로 도전했다.


다행히 이번엔 옆구리 터짐 현상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김밥을 썰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손끝은 예리하게 김밥의 성공각을 재고 있었다.



[당근 김밥]


[요리 재료]  김밥 2줄 기준

당근 1/2, 계란 1개, 깻잎 8장, 슬라이스 치즈 2장 (자연치즈 함량 80% 이상 추천), 밥 200g, 단무지, 우엉, 김밥김, 올리브유, 깨, 소금, 참기름

(*재료의 정량은 참고로 보시고 먹고 싶은 만큼 취향 껏 넣어 드세요 :D)



[만드는 법]

1. 당근은 세로로 길게 썬 뒤 소금을 살짝 뿌려 간을 하고 팬에 볶는다.


2. 소금 한 꼬집으로 간을 한 계란물을 팬에 부친 뒤 길게 썰어준다.


3. 밥에 깨, 참기름, 소금을 넣고 잘 섞는다.


4. 단무지와 우엉은 물기를 꼭 짜주고 치즈는 반으로 갈라준다.


5. 김 위에 밥을 깔고 깻잎, 가로로 길게 이어 붙인 치즈,  당근,  단무지, 우엉, 계란 순으로 올린뒤 돌돌 만다.


6. 김밥과 칼에 참기름을 바르고 썰어준다. (참기름을 바르면 김밥이 깨끗하게 썰리고 김밥이 더욱 고소해짐)


7. 완성!! 아삭한 당근과 상큼한 깻잎, 고소한 치즈가 만나 환상의 맛이 펼쳐진다.



완성된 당근 김밥의 단면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주홍빛 당근과 대비되는 푸른 깻잎과 노란 치즈, 계란의 색감 대비가 예술적이었다.


드디어 나도 그럴듯한 김밥을 완성했어!


보이는 것만큼 맛도 좋을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김밥을 먹어보았다. 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맞다. 엄마 김밥 빼고 지금까지 먹었던 김밥 중에서 단연 베스트로 꼽을 만한 맛이었다. 아삭하고 짭조름한 당근이 고소한 치즈, 깻잎의 상큼한 향과 만나 입속에서 환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칼로리를 낮춘답시고 김밥 한 줄에 들어가는 밥의 양을 조절해서 망정이지 보통의 김밥만큼 밥을 넣었으면 어렵사리 뺀 살이 순식간에 컴백 할뻔했다. 이 맛난 김밥을 혼자서 먹기 아까웠던 찰나 마침 엄마가 서울에 올라올 일이 생겼다.


나는 내가 만든 김밥을 그동안 소풍 때마다 김밥 마느라 고생하신 엄마께 선보이기로 했다.



과거 엄마의 김밥탑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만큼 작은 김밥탑이지만 엄마가 맛있게 드셔주니 감개무량했다. ㅠㅠ


딸이 만든 김밥을 신기한 눈으로 감상하던 엄마는 김밥을 한입 꿀꺽하시더니 김밥을 향해 엄지척을 날렸다. 갓 만들어 뜨끈한 밥의 온기가 남은 김밥을 엄마와 함께 먹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른이 된 후 줄 곧 비어있던 소풍과 김밥의 빈자리가 비로소 채워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김밥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 봄 소풍은 이제 없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직접 만든 김밥을 엄마와 함께 나눠먹는 지금의 이 봄날도 다시없을 순간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소풍 같은 이 순간을 마음껏 누려야지. 김밥 초보의 얼렁뚱땅 김밥 도전기는 환한 엄마의 미소와 함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세한 요리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

김밥 말기  쉽네? 옆구리 걱정 없는 당근김밥

*이 글과 사진을 무단 도용하거나 2차 편집 및 재업로드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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