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쮸 Nov 06. 2024

끔찍한 괴담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이러니

미야베미유키의 에도 괴담 시리즈 '기타기타 사건부'


미야베미유키의 에도 시대 괴담시리즈를 아주 좋아한다. 괴담과 추리 형식을 빌린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아이러니....


요괴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인간적이고, 끔찍한 살인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류애가 넘쳐난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하거나 힐링이 필요할때는 이 괴담집들을 찾아 읽게 된다.


미야베미유키의 에도 시대 괴담 시리즈는 '오하쓰 시리즈(말하는 검, 흔들리는 바위, 미인)', '유미노스케 시리즈(얼간이, 하루살이, 진상)', '미시마야 시리즈(흑백, 안주, 피리술사, 삼귀, 금빛 눈의 고양이, 눈물점, 영혼통행증, 청과 부동명왕)', 기타기타시리즈(기타기타 사건부 , 아기를 부르는 그림)' 그리고 괴이와 같은 단편집 및 장편 소설들이 있다. 


나는 괴이부터 읽기 시작하여 푹 빠진 뒤, 미시마야 시리즈를 독파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새롭게 읽기 시작한 것이 기타기타 시리즈다. 주머니가게 귀한 아가씨인 오치카의 괴담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미시마야 시리즈와 달리, 기타기타 시리즈는 힘없는 청년 기타이치가 진정한 오캇피키(에도시대의...... 형사 같은 느낌?)이자 상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오캇피키가 주역인 만큼 미시마야 시리즈보다는 괴담 느낌이 덜하고, 추리 형식이 강하다. 요괴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인간이 벌인 범죄더라 ~라는 식의 스토리다. 캐릭터의 느낌도 상반된다. 미시마야는 잘 나가는 주머니가게라서 명망도 있고, 재물도 있지만 기타이치는 16살의 고아 청년으로 생계를 위해 문고(책을 담아두는 상자인데, 이쁘게 꾸며서 장식물로도 많이 구매함)를 행상하며, 하루라도 쉬면 굶을 수 있다.  직접 제작하는 미시마야와 달리 구박과 모욕을 참아가며 물건을 사입해야 하고, 오캇피키의 손에 길러져 그의 부하같은 역할을 하긴 했지만,  없어도 무방한 존재였다. 외모도 볼품없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 기타이치가 고운 심성과 성실함 덕분에 조금씩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조력자들을 얻게 된다. 그들이 기회를 주고, 힘을 빌려주면서 기타이치는 직접 물건을 제작하는 상인으로서도 커가게 되고, 오캇피키로서도 가능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 과정들이 너무 인간미 넘치고, 따뜻해서 다 읽고 난 후에는 무릎을 탁쳤다. 역시 미야베미유키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4편이나 되는 끔찍한 범죄들을 읽고난 후인데도 조금도 기분이 씁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건들과 대비되는 따뜻한 사람들의 모습, 정의를 위해 힘을 합치는 사람들의 모습, 정이 넘치는 모습들이 부각되면서 역시 인생은 살만하다, 인간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을 통해 선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능력은 미야베미유키를 따라올 자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덕분에 나는 한번 더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끔찍한 범죄가 뉴스에 오르내리는 세상이다. 최근에는 관악구에 사는 11살짜리가 70대 경비원에게 욕을 해서 50대 주민에게 혼이 나자, 그를 흉기로 찔렀다는 사건을 보았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중학생이 흉기를 20번 넘게 휘둘러 엄마를 죽였다는 내용을 보았다. 이유는 명절날 아파트 놀이터가 시끄럽다고 신고해서 '권리만 찾고 배려할 줄 모른다'는 훈계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나는 촉법이라서 괜찮다, 정신감정에서 이상하다고 나오면 그만이다, 라고 했단다....(하단 링크에 관련 내용 첨부)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가슴이 무거웠다. 지금은 엄마품에서 안전하게 자라는 아기지만, 이제 학교에 다니고 나면 뉴스에 나오는 것 같은 아이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폭력적이고 비열한 어른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기를 어떻게 지켜야 하나, 그저 운이 좋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건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은 우리 가정이 이토록 행복하고 평화롭지만,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부서져도 이상할게 없는 세상이다. 묻지마 범죄와 음주운전으로 인해 죄없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어나가고, 행복한 가정은 박살이 난다.... 그런 집들이 넘쳐난다. 


그런 와중에 기타기타 사건부를 읽고 나서는 설명할 수 없는 용기와 에너지가 다시 생겼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되살아났다. 에도시대에도, 현 시대에도 여전히 요괴보다 끔찍한 인간들은 많지만 반대의 좋은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다.


기타기타 시리즈를 누군가가 읽는다면, 착한것과 성실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이에게 권하고 싶다. 약간의 스포가 될 수 있겠지만 기타이치는 무예가 뛰어나지도, 엄청난 혜안을 갖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력과 지력을 가진 조력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조력자가 있다는 것이 바로 그의 능력이다. 착하고 성실한 그의 됨됨이, 그것이 많은 좋은 사람들을 끌어 당기고 그의 인생을 밝혀준다.


또한, 그의 숨은 조력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힘이 없어 보인다. 일종의 '힘숨찐(힘을 숨긴 찐따)' 들인 것이다. 다들 인맥을 외치며 조금이라도 힘이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안달이다. 하지만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겉만 번드르르한 사기꾼에게 걸려들 것이다. 착하고 바른 사람은, 결국 진짜를 알아보기 마련이다. 기타이치를 보면서 '능력'만을 외치는 이 세상에, 착하고 성실한 것이야 말로 진짜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착하고 성실한 것이 바보인 것으로 여겨지게 됐을까? 미야베미유키 여사는 흙이 묻은 진주를 닦아내듯 우리가 폄하하고 있던 진짜 가치를 보여주었다 생각한다. 


기타기타 시리즈는 두번째 권인 아기를 부르는 그림이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보았다.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사실,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기타기타 사건부'에 비해 약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타이치가 센키치 대장 못지 않은 오캇피키이자, 붉은술 문고의 진정한 계승자가 되어 오타마도 꼼짝못하게 눌러버리는 모습을 정말이지 꼭 보고 싶다. 벌써부터 주인공에게 큰 애정이 생겨버린 이 시리즈가 끝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moneyread_/22364958294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