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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픽 Jun 06. 2020

피칠갑 위로 뿌려진 금가루

영화 <프리다>, 색채를 중심으로 


 하얀색 교복 셔츠를 입고 마구 앞으로 내달리는 학생 시절 프리다는 마치 흰 도화지처럼 깨끗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순수함을 뿜어내고 있었다그녀의 당돌하고 자유분방한 매력과 멕시코의 풍요로운 풍경은 나를 매료시켰다버스가 충돌하여 피 칠갑이 된 프리다의 몸뚱이 위로 금가루가 흩뿌려졌을 때비로소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 혹은 성장영화가 아님을 깨달았다영화는 한 예술가의 처절한 고통으로 뒤덮인 삶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교통사고 쇼트의 칼라는 그런 그녀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흥건한 피의 붉은 색과 빛나는 황금색은 모두 강렬한 칼라였다그로 인해 사고가 더욱 충격적이고 끔찍하게 느껴지면서도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다가왔다왜 끔찍한 사고가 아름다워 보였을까나는 그 부분에 의문을 품은 채영화의 남은 부분을 감상했다.




 사고 이후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어두워졌다어두운 조명과 인물들의 무채색 의상으로 표현된 장면들로 사고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프리다는 재활치료와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통해 그를 극복해냈고영화의 칼라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그런 그녀의 의지는 한 마디로 빨강이라고 생각한다빨간 색은 정열’, ‘따뜻한’, ‘강한’, ‘자극적인’, ‘활동적인’, ‘흥분한’, ‘매력적인을 표현하는 색이라고 한다영화에서 그 색상은 주로 프리다의 의상에서 활용되었다디에고와 함께 간 파티에서 입은 붉은 드레스는 채도가 높은 순색에 가까운 빨강이었다그는 여성 파트너 티나와 함께 춤을 추던 장면에서 그녀의 당돌하고 매력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디에고와 결혼식에서 입은 붉은 숄은 역시 선명한 빨강이었는데보색 관계인 초록색 드레스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녀의 디에고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이 그만큼 선명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다어쩌면 초록색이 상징하는 평화와 여유와는 이질적인 미래를 암시했다고도 생각한다.






 그녀가 말하길그녀의 인생에서 두 가지 사고가 있었는데 하나는 차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를 만난 것이라고 한다결혼 생활 내내 공공연히 외도를 한 그이지만그 중 프리다의 여동생과 관계를 가진 것은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였을 것이다그 외도를 목격하는 장면에서 초반부의 교통사고 쇼트처럼 빛과 어둠의 대비가 또다시 두드러진다그를 목격하기 바로 직전에 그녀는 여동생의 아이들과 불꽃놀이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불꽃이 빛나는 모습은 마치 황금의 반짝임처럼 눈 부셔서미국에서 다시 멕시코로 돌아온 프리다가 오랜만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여동생과 디에고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말이다그녀는 신을 자기에게 해명할게 아주 많은 분이라고 일컬었다정말로 신이 장난이라도 치듯총명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는 틈 사이로 행복이 자리 잡을 적마다 고통이 헤집고 들어왔다금가루와 피 칠갑환한 불꽃놀이와 어두컴컴한 방이와 같은 색의 대비를 통해 그녀의 인생이 찰나의 반짝임과 긴 어둠으로 점철된 것을 느꼈다.


 이혼 직후 그녀는 스스로 긴 머리를 자르고 멕시코 전통의상이 아닌 검은 수트를 입는다이 때에도 셔츠는 붉은 색 계열을 입었지만이전의 선명한 빨강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명도와 채도가 조금 낮은 자주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전보다 빛바랜 붉은 색은 그녀의 기구한 인생사가 묻어난 것 같아 쓰라리고 공허한 심상을 주었다마지막 씬에서자신의 전시회에 침대 채 이동할 때도 역시 붉은 색이 돋보이는 의상을 입는다

붉은 단색 머리 장식은 그녀의 검은 머리칼과 대비되어 강렬함을 주었다또 붉은 계열 패턴이 돋보이는 검은 원피스는 마치 고통으로 얼룩진 인생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적인 사랑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을 담아낸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날 때쯤, 처음 가졌던 의문은 자연스럽게 풀렸다금색과 붉은 색밝은 색과 어두운 색붉은 색과 검은 색그 쇼트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들이 조화를 이루었다이는 그녀의 인생이 단순히 어둡거나 밝기만 한 게 아닌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프리다는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신을 그렸다그 암흑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만은 빛을 발했을 것이다그래서 그토록 불우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아름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살아야 했을 프리다 칼로그러한 환경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은 받아들이고자기 자신을 담담히 그려냈다이는 작은 고통에도 그를 회피하고 내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평생을 누군가에게 의미를 주며 그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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