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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5. 2022

사라진 자리에 누가 남을까

단편영화 <증발> 리뷰

 스스로 고립을 택한 청년들이 있다. 인간관계를 끊고, 외부 활동을 줄이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청년들. 일본에서는 이들을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히키코모리’,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 부른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6개월 이상 타인과 교류하지 않은 사람들, 즉 은둔형 외톨이를 30만 명으로 추산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가 심화된 지금 그 수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톨이들은 집 안이 아닌 사회 속에도 존재한다. 그곳에 있으나 그곳에 있지 아니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 존재감을 잃은 이들의 외로움을 단편영화 <증발>이 담았다.

 의류 쇼핑몰에서 일하는 사회초년생 수경(채서은 분)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혼자 사는 집,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한 수경. 어느 날, 유튜브 방송을 본 뒤 용기 내어 인스타 라이브를 켜는데, 유일한 시청자 정연(이하영 분)이 나타나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마침내 정연의 제안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 날, 정연이 감쪽 같이 사라지고 수경은 혼란에 빠진다. 


 <병구>(2015), <그 냄새는 소똥 냄새였어>(2016), <그녀의 이별법>(2016) 등의 단편을 통해 짠내 나는 현실 기반형 상상력을 선보였던 형슬우 감독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생활밀착형 대사들이 여전히 영화의 현실감을 책임지고 있으나 조금 낯선 냄새를 풍기는 것. 생생한 찌질함으로 무장했던 지난 작품들과 달리 <증발>은 여전히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으나 조금 더 서늘하고 날카로운 연출로 우리를 긴장시킨다. 또한 폐부를 찌르는 섬뜩한 입담과 예상하지 불가능한 아슬아슬한 전개가 감독의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증발>을 이끄는 수경은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의 모든 삶의 타인에게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인스타 라이브를 켜고 방송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소극적인 성격 탓만은 아니다. 수경을 삶의 주체에서 밀어낸 건 바로 그녀 안의 외로움이다. 이해받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삶은 그녀가 외톨이가 되도록 방치했으며 동시에 관심에 갈증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결국 지나친 외로움은 집착으로 변질되었고 정연이 사라졌을 때 남은 자리에 있던 수경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누구나 외롭다.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 이와 어떻게 지내는지에 따라 우리 삶이 송두리째 달라진다. 외로움에 삼켜지는 사람은 떠난 뒤에도 남겨둘 자리가 없다. 내가 있을 자리조차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는 지독한 외로움. <증발>은 그 씁쓸하고 고독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묻는다. “외로운 우리가 사라지면 누가 우리를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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