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어도 그저 괜찮았던 10년 전 그 때처럼
여행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떠나는 자체가 목적이라던가. 너절해진 몸과 마음을 다스리려 떠났다는 명분을 세우기엔 스페인행을 결정하고 떠난 이유는 심플했다.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완벽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주고싶다, 그리고 그저 스페인에 /돌아/가고싶다. 일상을 매일 여행처럼 아름답게 살아보려 노력해봤지만 일상적인 무언가를 낯설게 보기는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멘탈을 요구했고, 그렇다고 성격상 부족한 향상심을 하루 아침에 미친듯이 기를수도 없는 일. 무엇보다도 내게 부족한 무언가를 그렇게 밀어붙여서 살기에는 일과 삶은 녹록치 못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떠나는 것.
사람들은 종종 스페인 수도를 물으면 바르셀로나, 라고 답한다. 실제로 경제 규모나 관광 인기도만 따지자면 바르셀로나는 계속 떠오르며 이글대는 태양이고, 마드리드는 지는 태양에 가깝다. 그럼에도 비교할 수 없이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스페인 고유의 색과 냄새. 수도 도시로서 460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이유일까, 빈티지 샵에서 풍기는 묵은 옷이 쌓여 풍기는 퀴퀴한 냄새처럼 어디선지 찌든 냄새가 배여있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퍽 나쁘지 않다. 어딜 가도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유행하는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은 1도 없고, 야외의 테라스 자리에서는 누구든 담배를 입에 하나씩 물고 연초 냄새를 폴폴 풍겨댄다. 현지에서 일하는 친구피셜, 마드리드는 재건축은 금지, 리모델링은 가능한데 건물 겉면은 부실 수 없도록 법으로 지정되있다고 한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성형 금지나 마찬가지.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살짝 답답할 수 있겠으나 3자, 게다가 K부동산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한참 기막힐 결정이나 나는 이 정책을 뜨겁게 응원한다. 콘크리트 컬러의 서울과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유현준 건축가가 인종과 시대를 떠나 공통 분모를 건드려 주는 건축이 100년 뒤 천 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축이라 말했듯, 마드리드는 그 역사와 도시 공간을 다루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월이 보이고 시간이 피부로 닿는다.
아침으로 초콜라떼와 츄러스를 먹고 유학했던 도시로 떠나기 위해 버스를 탔다. 어쩐지 아침부터 마음이 묘하다. 10년 전 가장 행복했던 일상의 기억과 지난 인연과의 묵은 추억 등등, 많은 이야기가 담긴 곳. 그 곳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도시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날때 쯤 알 수 없게 와르르 눈물이 흘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생 많았다. 그 동안 어른 행세 하느라 고생했다 꼬마야"라고 2700년이 넘은 이 도시는 내게 말했다.
이 곳에 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겠다던 유학시절 약속은 잊혀진 지 오래다.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시절의 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의 굴레에서 마구 회전했고, 수없이 번민했다. 이 시간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시는 유학 시절의 풍광이 고스란하다. 그리고 그 풍광은 한낱 100년을 살아가는 인간을 위로한다. 변하지 않는 엄마라는 이름처럼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며 내게 읊조린다.
짧은 이틀간의 여정은 기억을 쫓아보기엔 부족했지만 아쉬워하기에 충분하다. 설령 한달, 아니 몇 년을 산다면 과연 이 곳이 아쉽지 않을까. 시절의 감상을 돌이키기에 2박 3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말할 수는 없다. 빛 바랜 기억 위 조촐한 시간을 더하고 도시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