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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

나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니고싶은 사람이지 말입니다. 


촉각을 다툰다. 분이 바뀔 때마다 알람이 울린다. '조회수 0회를 돌파했습니다!' 


다음의 모바일 메인 어디엔가 글이 노출됐다나. 급발진한 자신감으로 브런치 북이라는 온라인 책을 발간해봤다. 어디서 튀어오른 자신감인지 모르겠다만 일상이 콘텐츠 부자인데다 수려하게 글을 쓰시는 분들 사이에서, 별 일 없이 사는 아마추어 작가는 심이 돋았나보다. 그러자 이번에는 브런치 어딘가에 글이 계속 노출되고 있는지(도대체 왜 이런 누추한 글을...) 또 띠링띠링 알람이 온다. 신기하게도 이번엔 좋아요와 구독이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좋고, 서툰 글을 인정해주는 누군가의 관심은 매우 뿌듯하다. 한편 글 속 괜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두렵다. 


최근 MZ의 근속연수가 2년을 채 넘지 못한다는 통계를 봤는데 개인주의에 당돌한 성격으로 대표되는 MZ가 문제일지, 시대 정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조직의 HR과 시스템이 문제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년 퇴직은 생각도 어렵고 할 생각조차 없는, 바야흐로 퇴사의 시대다. 

어쩌다 퇴사라는 콘텐츠로 글을 쓰며 끽해봤자 8년 차 직장인인 나는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퇴사를 독려하고싶은 것도 아니고, 한 회사를 오롯하게 다니는 장기 근속자들을 조롱하고픈것도 아니다. 사실 말하자면, 본인이 잘 호흡할 수 있는 회사에서 균형을 잡고 견디며 오랜 기간 일해온 그들은 정말이지 부럽고 존경스럽다. 나는 그저 두 번의 퇴사를 거치며 그저 '직업'이라는 생의 필수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냐, 라는 아젠다를 열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살아있음과 젊은 지금의 에너지가 슬프도록 귀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는 와중에 '워라밸'이라는 표현이 꽤나 불편하다. 워크는 라이프가 아닌가. 왜 워크와 삶은 분리되는가. 출퇴근시간 포함, 퇴근 이후 그리고 주말동안 거래처나 매장에서 걸려오는 긴급 전화까지 포함해 평균 하루에 반나절정도 회사에 투자한다고 하자. 과장을 조금 보태면 우리는 100세 인생 중 50세의 시간을 살아있지 않은, '워크'의 시간으로 살아가는거다. 


워크는 라이프 안에 속하는, 라이프의 구성이어야한다. 회사는 왜 젊은이들이 '워'와 '라'를 분리하는 슬픈 지경에 이르렀는가의 원인을 파악하고, 직장인은 '워'와 '라'가 스며들듯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워라밸을 찾기보다 회사 속 내가 어떻게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호흡할 수 있는지, 내 업과 삶의 방향이 어떻게 잘 엮이며 굴러가게 만들 건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마음과 가치가 꼭 맞는 직장 어딘가에서 10년 근속 안식년을 갖게 될 지도 모를 먼 그 때, 신경 쇠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러 내 안의 작은 호수를 찾았다는 글을 쓰는 그 날까지 워와 라 사이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며 얻는 치열한 깨달음이 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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