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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연말 결산

혼란스럽다. 내가 결정해 이미 예정되있던 폭풍이었고, 충분히 가늠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음에도 어렵고 불편하다. 밀어드는 높은 파고의 파도를 모두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서퍼는 그저 눈 앞의 파도정도를 잘 타면 그만인 것을, 눈 앞과 그 앞까지는 알고싶은데 그 속도감이 내가 속단했던 것보다도 두배, 세 배 이상인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22년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보내지 못했다. 한낱 인간이 만든 시간의 틀에 좌지우지될 필요는 없다는 말은, 최소 마무리를 지을법한 타이밍을 주었으나 충실히 그것을 해내지 못한 자의 궤변이기도 하다. 감히 컴퓨터 앞에 앉아 22년 연말결산을 하는 게 겁이 났다고 해야하나. 분명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TV 리모콘만 만지작거리고, 유튜브만 꼼지락거렸다. 루틴도 세워야 하고, 목표도 고민하고싶은데 눈 앞에 새 회사의 적응이라는 큰 과제에서 난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22년 버전의 플랫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법] [세 번째 직장을 만나] 등 여러가지 아젠다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으나 실행을 할 수가 없었다. 전쟁같은 적응의 늪 속에서 나는 일상을 완벽하게 잡아먹혔고, 정신 또한 그 속에 갇혀버렸다. 새 회사에서 나의 리포트라인은 'ㅅㅅㅈ님의 스타일을 반영해 결과물을 만들어보세요'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스타일보다는 회사에 대한 내재화가 첫 번째 그리고 어마어마한 미션이다보니 차분한 생활이 어렵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내년에 한 발짝이라도 지금의 회사와 가까워진채로 여유를 찾은 내가 이 글을 보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간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 마음으로 반절 성의를 가지고 얼기설기 지난 22년의 시간을 회고해본다. 





올해의 키워드

잘 흔들리는 법. 

폭풍 사이에 뿌리내리는 법.


올해의 사람

오랜 친구 미진. 그리고 5년차에 다다른 내 연인.

친구는 워낙 오래됐고 삼라만상을 같이 겪으며 2030대를 같이 크고있는 느낌. 특히 외국에 살던 친구가 한국에 와서부터 우리 집을 세컨하우스처럼 이용하면서 피붙이처럼 함께하는 중이다. 

연인은 비로소 5년차에 접어들었다. 장기 연애도 이런 연애는 처음인데, 곧 연애의 종말이 대기중이다(두둥). 


올해의 음악

- 박주원 Eurasia Express : 여행 중, 그리고 용기가 필요할 때 하루종일 들었음. 

-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2 

: 삼고초려로 합격한 회사의 최종 합격 발표를 듣고 이 노래를 들으며 혼자 한없이 해변을 걸었던 기억. 광고에서도 쉽게 들을법 한 소위'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곡인데, 전 회사 친한 언니와 롯데콘서트홀에 가서 오케스트라로 직접 들었을 때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올해의 책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많이 읽었는데 어느 하나만 기억에 남진 않는다. 하나만 고르기가 애매하다면 모든 책을 애매하게 읽은 게 아닌가 어림 생각하기도 하지만, '왓칭'에서 읽은 대로 내가 생각한대로 길을 만들면 그것이 곧 길이 되고,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서 들었던 것처럼 도처에 죽음은 존재하며 그 안에서 현재 생의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생을 더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이 올 한 해를 지배했다. 같은 결의 여러 책을 읽었고, 더 충실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싶다. 


올해의 여행  

3번째 스페인. 가도 가도 새로움 투성이인 근사한 나라. con nostalgia.

캠핑의 시작. 도대체 어떤 이유로 캠핑을 가는건지 알아보자며 시작해 자리 폈다. 캠린이에게 산은 어렵고, 서해 바다 앞의 해풍이 덜한 곳이 적당하다. 찬 바람 맞으며 풍경과 호흡하는 근사한 경험. 


올해의 사건 - 진짜 많았음

1. 자차 모빌리티. 새로운 세상의 시작

- 다들 일찍 면허 따 놔라라는 말 하지 말고 일찍 차 사라고 말해줬어야지. 이동성이 생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세포와 뼈마디로 깨달음. 내가 원하는 이동을 고민 없이 가장 빠르게 이뤄낼 수 있다. 


2. (또 또또) 퇴사

- 놀랍지 않다. 신호등 노란불 켰고.


3. 세번째 스페인

- 놀랍지 않다2. 나이를 한살 한살 먹으며 다시 방문할수록 기억이 새로워지는게 좋다. 


4. 죽을만큼 아픈게 뭔지 경험함 (원인미상 장염과 사랑니+충치 염증 콜라보)

- 놀랍다. 수면마취를 처음 해봤고, 원인미상으로 인해 다양한 의느님의 가설과 실험(?)을 몸뚱아리가 견딘다. 건강하게 나가 놀고 마시려면 건강은 정말 평소에 존귀하게 모셔야하구나, 하고 생각함. 


5. (또 또또 또또또) 재취뽀. 이직, 거기에 첫 '성공'을 더해... 

- 플랫폼의 ㅍ도 모르지만, 엄한 욕심으로 플랫폼에 오게 되었다. 딴 세계고, 모르던 세상이라 적응이 너무 어렵다. 나름 10년을 바라보는 경력사원인데 랜딩이 이리도 각박한 환경일줄이야. 


올해 가장 아쉬운 일

운동을 하지 않은 것. 고작 요가 2개월로 무너진 신체밸런스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휴먼?


올해의 식생활 : 프렌치 

입짧남 남자친구, 1일 n끼 소량 자주 먹는 나는 프렌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고, 연말에는 와인의 바다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중. 양이 많지 않아도 한입을 베어물었을 때의 식감, 맛의 조화를 극대화하는 프렌치의 방식은 우리 둘의 입맛과 잘 맞다. 돈만 많이 벌면 되겠다 와~


올해의 식당   

장화신은 고양이 | 홍대입구   

con te (꼰떼) | 부암동 


올해의 공부 

이직 공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도끼 없다는 격언은 열번 찍고 넘어뜨려본 자만이 공감할 수 있다고...

삼고초려로 지금 회사에 입성했다.(자세한 썰은 다음 글에...) 그리고 이직한 회사의 리포트가 영문인 관계로 울며 겨자먹기 영어 공부중. 겨자 먹는 김에 아쌀하게 완성해야 한다. 


올해의 지름 

스페인 항공권과 마요르카에서 막 쓴 돈. 씀직했고 앞으로도 이렇게 쓸 데 막 쓰자. 


올해의 패션뷰티

- 편한 옷. 백수떄부터 현재는 재택근무중이라 특히나 바지는 늘 보아털 추리닝이다

- 피부의 회복력이 이전만큼 못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머리가 잘 빠짐. SOS. 


올해의 반성

몸과 외모를 소홀히하면 분명 댓가가 돌아온다. 적당히 봐 가며 놀고, 잘 꾸미고 돌보기. 운동할 것. 

어제의 적은 오늘의 아군이 되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 적이 될 수도. 친절은 기본이나, 거리를 적당히. 

책에 답은 없지만 확실히, 클루는 존재한다.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읽고 흡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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