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의 시시호시(时时好时) 골목 유람기 2
여행에서 음식을 빼놓으면 그보다 지루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번 여행은 먹은 걸 자랑하기 보다는 못 먹은 한을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빽빽한 메뉴판 앞에서 수능 문제를 풀듯 소심했던 나를 반성한다. 굳이 변명하자면 노안도 노안이지만 다양한 미각의 방식과 개성 존중이라는 타이완의 음식 세계관이 존경스러웠다.
그럼에도 아직도 입가에 맴도는 미식의 경험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길거리 노포에서 파는 타이난 전통 조식을 들 수 있다. 한화로 5천원 정도면 소(小)자 요리 세 가지 정도가 주문 가능하다. 튀김만두(煎饺)나 물만두(水饺)의 경우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다진 고기와 부추 등을 넣은 속은 방금 만든 것처럼 신선했고 밀가루 피 역시 기름칠을 한듯 부드럽게 입안을 감돌았고 씹을 때의 쫀득한 식감이 놀라웠다.
1895년에 개업한 유명한 담자면 식당인 도소월(度小月) 본점이 마침 타이난에 있어서 방문했으나 길거리 노포의 손맛을 이기지 못했다.식당 입구에서 옛 방식으로 국수를 삶아 그릇에 내는 오픈 주방이 볼거리를 선사하므로 여행의 그럴듯한 분위기를 내는 데는 손색이 없다.
골목 어디서나 파는 버블티는 눈에 보일 때마다 마시길 추천한다. 철관음 아이스크림이랑 화원 야시장에서 먹은 땅콩밀전병아이스크림, 탕후루도 하나만 먹은 것을 후회할 만큼 독특한 풍미가 좋았다.
첫날 찾은 일식당 십평(十平)은 타이완 전통요리가 아니라 일식 레스토랑이었지만 친절과 유니크한 운영방식, 최상급 식자재를 사용해서 본연의 맛을 살린 정갈한 음식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외진 식당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어렵게 찾아온 세 모녀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사케와 연어 튀김을 서비스로 내주었다. 어둠이 내린 골목에서 웨이팅 하는 동안에도 계속 밖에 나와서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건네주고 나중에는 모기약까지 바르라고 주었다. 식사하는 동안 그는 우리를 흐믓하게 지켜보았고 "타이완은 중국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계산을 마칠 때 그는 인스타 개인 계정을 알려주면서 원래는 현장 웨이팅이 원칙이지만 메시지를 주면 좌석을 마련해놓겠다고 약속했다. 타이난에서 지출한 비용 중 가장 큰 액수였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저녁 식사였다.
다음날 아침 8시, 노점에서 전통 조식을 먹은 후 6시에 좌판을 열어 10시면 다 팔리고 없다는 빙수 노포를 찾아 골목 탐방에 나섰다. 터를 이전한 건지 벌써 장사를 접고 사라진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근처를 돌다 문이 열린 점포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께 빙수 노점의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소통의 한계가 있었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자신의 조카를 불러 구글맵 지도를 켰고 급기야는 직접 내 손을 잡고 빙수 가게까지 함께 가주셨다. 덕분에 타이완 서민들이 즐겨 먹었다는 밍밍하고 무덤덤한 빙수의 세계를 영접하게 되었다. 아리산이 산지인 애옥(愛玉)이란 열매를 젤리형태로 만들고 얼음과 달짝지근한 시럽을 섞어서 먹는 옛 방식의 빙수 한 그릇을 먹고 나니 더위와 갈증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70년을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장사하는 이들의 성실함과 소박함이 대만이라는 나라가 가진 저력이 아닐까 싶었다.
2박 3일은 타이완의 미식을 모두 섭렵하기에 너무 짧았다. 다행스럽게도 공항 라운지의 딤섬과 우육탕이 훌륭했기에 그나마 아쉬움을 달랬지만 타이난은 소식좌에겐 너무 버거운 나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