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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닥의 생각 Jun 10. 2021

하루살이 때문에 생긴 일들

행복하지만 난감하고, 웃어넘기자니 너무 진지한 딸과의 대화

여섯 살 딸아이 나라는 제법 자전거를 탄다.      


아직 보조 바퀴 신세이지만 한번 달리면 왕복 5km는 넉넉히 달려 덕분에 옆에서 뛰는 나도 운동이 된다.      


지난 주말 아이와 중랑천에 나갔다. 초여름 해질녘의 시간, 신나게 자전거 타는 아이 옆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은 없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물 길옆 수풀 군데군데 모여있는 하루살이들이 난리였던 것이다. 딸아이는 얼굴로 달려드는 하루살이들에 기겁해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가까스로 모자를 벗어 하늘을 향해 부채질을 했다. 그제야 하루살이들은 도망갔고 아이는 진정했다.      


작은 벌레들은 아빠의 모자로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아이는 신이 나서 내 모자를 흔들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그런데 너무 자신만만해서 일까? 그만 수풀 한가운데 하루살이의 최대 군락지를 맞닥뜨리자 내가 봐도 어마어마한 하루살이들이 한순간에 아이를 덮쳤다.      


기겁을 한 아이는 다시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나는 '테이큰' 리암 니슨의 심정으로 아이를 안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눈앞에 보이는 하루살이에 아이는 어쩔 줄 몰라했다.      


겨우 달래 집까지 왔건만 하루살이에 대한 아이의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 아내의 말로는 자다가도 몇 번을 깼고, 잠꼬대로 허공에 헛손질을 하며 “하루 싫어”, “하루 무서워”를 외쳐댔다고 한다.     


행복한 산책이 공포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이 하루살이 트라우마를 빨리 극복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아내와 상의를 했다. 다음 날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동화책 한 권을 구해오라 했다. ‘하루살이의 내일과 메뚜기의 내년’이라는 책이었다.       


딸에게 성실한 아빠는 바로 책을 구해와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며 하루살이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동화책의 내용은 이랬다. 성실히 내일의 식량을 준비하는 개미에게 하루살이가 찾아와 묻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 개미는 대답한다. 내일을 위해서라고,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는다.

      

또다시 열심히 내년의 식량을 준비하는 개미에게 메뚜기가 찾아와 묻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 개미는 대답한다. 내년을 위해서라고, 그러나 역시 내년이 없는 메뚜기는 개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는다.

      

개미는 그렇게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와, 내년이 없는 메뚜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땅에 묻어주며 동화는 끝난다.      


효과는 있었다. 나라는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동정심을 품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의 의문은 다른 데로 번졌다.

      

“하루살이는 밤에 죽었고, 메뚜기는 겨울에 죽었는데, 아빠는 언제 죽어요?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하늘나라 가요?”

     

하루살이 때문에 산책이 공포가 됐는데, 이제는 하루살이 동화 때문에 침대맡 책 읽기가 휴먼다큐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금이 대화의 순간인 것만 같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빠는 아주 오래오래 살 거야, 나라가 아빠만큼 어른이 되고 운전도 하고, 엄마가 될 때까지 아주 오래 살 거야, 그러다 하나님이 부르면 그때 나라한테 얘기하고 하늘나라 갈게”   

  

나라는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 한다며 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었다. 그러더니 또 묻는다.      


“그럼 아빠가 하늘나라 가면 나라가 땅에 묻어 줄까요?”      


산 넘어 산이었다.      


“땅에 묻는 것도 좋은데 아빠는 하늘로 올라가게 불에 넣어줘야 해, 그리고 그전에 눈이 안 보이는 사람한테 아빠의 눈을 주고, 심장이 아픈 사람에게 아빠의 심장을 줘야 한다고 나라가 의사 선생님한테 꼭 얘기해줘”     


“불에 들아가면 아빠는 없어지잖아요, 그건 싫어요”     


“불에 들어가면 아빠는 작은 보석처럼 변할 거야, 그때 나라가 그 보석들을 모아서 땅에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줘, 나라가 아무 때나 와서 그네 타고 놀 수 있는 큰 나무로 심어줘”     


“코코 오빠처럼 해골 보석이 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런데 아빠 심장은 다른 사람 안 줄래요, 나라가 간직할래요, 소중한 거니깐요”      



그런 대화들을 하다가 나라가 잠들었다. 이 대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제저녁은 밥 먹다 또 이야기한다.      


“아빠가 죽으면 불에.... 눈은... 안 보이는 사람한테... 보석 해골..... 그다음은.... 아, 까먹었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하고 엎드려 운다.       


나라에게 좀 적당히 하자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그냥 안아주었다.  


행복하지만 난감하고, 웃어넘기자니 너무 진진한 이야기들을 여섯 살 딸아이와 며칠째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살이 때문이다.


오랜안에 나라와 코코를 다시 봐야겠다.


https://youtu.be/J-AMM7rDT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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