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짱고영화

꼰대와 영포티 사이에서 : 김부장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by 짱고아빠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라는 세간의 평가에 이렇게라도 발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그리고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 나 또한 걸어가야 할 김부장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스포주의


1. 김부장과 도부장


능력 없는 꼰대(사실 이 부분은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영업 능력은 이미 20년 전에 끝나버린 능력이고 이후 업데이트가 안된 듯하다),

숙제검사받는 것처럼 보고하는 사람, 일하는 기분만 내는 사람. 대기업 퇴출 1순위 김낙수 부장.

불행하게도 나 또한 이런 이들을 몇 알고 있다.

사람 됨됨이는 나무랄 게 없으나 일하는 능력을 시대에 맞추지 못한 사람들,

아직도 30년 전을 추억하며 주니어는 이래저래야 한다며 과거의 기준으로 대접받기 원하는 사람들.


그에 반해 2팀 도진우 부장은 매끄럽고 쿨하다.

실무능력, 팀원들을 챙기는 태도, 사내정치 뭐 하나 나무랄 게 없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정치적 욕심에 1팀 팀원들을 배제하기도 하고,

대리기사를 하대하는 등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역시 균열을 일으킨다.


나는 늘 도부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도부장 같은 사람과 일하고 싶었다.

일은 일이니까. 도부장의 말처럼 여기는 동아리가 아니라 회사니까.

드라마를 끝내고 난 이후에도 이 부분에는 일절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장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우리네 아버지 아니 이제는 우리네 형님들의 모습이 같이 밟혀서 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과 가치는 바뀐 세상에 부정 당했다.

나아가 그의 모든 말, 행동 하나까지 꼰대, 영포티란 이름으로 희화화되고 있는 세대.

개저씨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자신의 카드를 건네주는 것 이외에 낄 때도 빠지고 빠질 때도 빠져야 하는 세대.


다행인 건 그럼에도 드라마는 이들을 비웃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살아온 시대,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와 그들이 성취한 것들.

그리고 지금에야 느끼는 상실감을 조심스레 우리에게 알려준다.



2.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김부장은 오랜 시간 ‘대기업 부장’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왔다.

서울 자가 아파트, 근속 25년, 임원 진급을 앞둔 대기업 부장. 거기다 명문대 다니는 아들.


언뜻 보면 다 가진 것 같은 김부장이지만 늘 어떤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강남 신축이 아닌 것에, 아직도 상무가 아니라 부장인 것에, 아들이 서울대가 아니라 연세대인 것에.

그렇게 살아가던 김부장의 모든 것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단단한 자아가 아닌 콤플렉스 위에 지어진 허상과 같은 것이라 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는 진짜 자신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김낙수가 ‘내면의 김부장’과 마주 앉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그는 '진짜 그렇게 살 수 있어?"라고 물어보고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나는 질문에 그는 스스로 ‘지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뭘? 가족도 아이도 삶도.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그것이 사실 자존심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둘은 싸우고, 부정하고 결국 받아들인다. 그렇게 김부장은 떠난다.

낙수는 퇴직한 이후에도 놓아주지 못한 대기업 임원(진)의 김부장을 비로소 놓아준다.



3. 수고했다 김부장


공장 사람 20명을 자르지 못해 결국 희망퇴직을 신청한 그에게 아내 하선은 김부장을 가만히 안아주며 토닥여준다.

“수고했다, 김부장.”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사실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수고했다. 잘했다. 괜찮다.


사랑하는, 평생 그의 옆자리를 지켜온 이의 한마디면 된다.

잘 모르는 이가 내뱉는 수십수백 가지의 단어와 아이디어가 아니라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툭 던져주는 어떤 위로.



따지고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잘난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도 그리 많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를 응원하며 그의 손길 하나라도 붙잡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살아간다.




그는 ‘대기업 김부장’이라는 껍데기를 놓아주고 '김낙수'라는 개인으로 돌아간다.

평생을 자신을 옥죄던 껍데기를 내려놓는 순간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방 전세에 중소기업 아니 자영업 하는 김사장이어도 상관없다.

지금부터 그는 김부장이 아닌 김낙수로 살아갈 테니까.


* 그리고 나의 워너비는 회사에서 받은 만큼만 일하고 회사가 아닌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가는 송과장이 되었다.

* 눈치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드라마 속의 모든 인물은 <슬램덩크>의 이름과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의 시간은 얼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