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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숭 소피 May 23. 2023

NASA 청소부의 마음으로 Footer 만들기 -(1)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일에 몰입하기.

Footer를 만들어 주세요

처음에 푸터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묘하게 실망감이 들었어요.


푸터는 존재감이 희미한 영역이잖아요.

산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지듯이 페이지 아래로 내려갈수록 남아있는 유저는 희박할 거고, 페이지 바닥까지 내려온다고 해도 푸터를 유심히 볼 사람도 적을 것 같았어요. 일이니까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보통 푸터들처럼 11pt 글자로 필요한 정보들 쭉 써주지 뭐…’


이런 마음으로 제가 만드는 푸터의 가치를 무시하며 디자인하기 시작했어요. 괜히 옆자리 디자이너의 업무가 더 멋지고 재밌어 보여서 부러웠고요.

그러다 집으로 가는 어느 날, 유튜브 클립에서 NASA의 청소부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를 인터뷰하려고 나사에 방문한 한 기자가 화장실에 가게 되었는데, 한 청소부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을 보았대요.

최첨단 과학 기술과 엘리트들이 모인 곳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그 청소부를 보며 기자는 조금 짓궂은 마음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해요.


“이곳에서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 청소부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변했대요.


“저는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본 클립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하는 일을 가장 무시하는 사람은 바로 저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회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일만 맡을 순 없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남들 보기에도 중요해보이길 바랄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고, 인정받기에도 좋으니까요. 반면에 사소한 일을 맡고 있을 땐 괜히 서글픈 마음이 몰려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이런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NASA의 청소부가 큰 비전 속에서 자신의 일이 지닌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몰입의 즐거움을 느꼈듯이, 저 역시 같은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어요.


작은 업무더라도 제품을 조금 더 좋게 바꾸고, 이런 작은 개선이 결국 큰 가치에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중요한 일이더라고요. 옆자리 동료의 일거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요.


생각을 바꾸니, 틀에 박힌 영역이라고 생각한 푸터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죽 나열하면 끝인 영역에서,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와 논리가 필요한 공간으로요.


예상치 못했던 Footer의 중요함

-유저의 흥미를 다시 끌어내는 곳

푸터는 단순히 페이지의 끝을 알리는 곳이 아니라, 페이지를 끝까지 내렸음에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유저가 다른 페이지도 둘러볼 수 있도록 유저의 흥미를 유지시키는 영역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어요.


푸터에서 추천하는 콘텐츠가 뭔가 재밌어 보이거나, 유용해 보인다면 유저는 관심을 갖고 더 탐색하겠지요. 이를 위해 푸터에서 최대한 서비스가 담고 있는 정보나 기능들을 색다르게 모아 묶어 프레이밍 하는 것에 도전했어요.


푸터로 유저 액션을 심폐소생술하는데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더라고요. 위트 있는 UX Writting으로 재미를 줘보기도 하고, 콘텐츠끼리의 관련도를 재정립해서 새로운 우선순위에 따른 내용 강조를 시도해 보면서 Footer 만드는 일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Footer의 어려움

1.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정보를 파악하는 것

Footer를 만들기 전에 어떤 정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를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해요.


예를 들면 결제 API를 붙이기 위한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사업자 등록 번호와, 개인정보처리 책임자, 대표명 등 꼭 들어가야 할 정보들이 있더라고요.


서비스를 매력적으로 다시 소개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업적인 영역에서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정보를 디자이너가 잘 숙지하고 반영하지 않으면 서비스의 배포 자체가 늦어질 수도 있어요. Footer를 만들 땐 정보 제공 측면에서 최대한의 꼼꼼함을 발휘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긴장하며 임해야 합니다. 개발자에게 전달 전 더블체크는 필수고요!


2. 반응형 웹을 이해하고 만드는 것

두 번째는 반응형 웹서비스에서 Footer를 어떻게 보여주냐의 문제예요.


Footer는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다시 한번 요약해 줌과 동시에, 사업자 정보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굉장히 많은 정보를 처리하게 됩니다. 즉, Footer는 반응형 웹이라는 환경에서 대량의 정보를 어떻게 배열할지 연구하고, 반응형 웹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연습하기에 좋은 영역이에요.


보통 본문을 조판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이미 오랜 시간 디자이너들이 실험한 데이터가 쌓여있기 때문에 사람의 눈이 읽기 편한 글줄 길이와 글자 크기, 그리고 한 줄에 담으면 적절한 단어의 양에 대한 값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늘 종이 사이즈가 일정한 인쇄물과는 달리 반응형 웹은 콘텐츠를 담는 대지 사이즈가 가변적이라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의 규칙을 적용하기에 아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창의 크기대로 유저가 보고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유저가 어떤 디바이스로 보고 있느냐에 따라 화면 크기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내 모니터 기준으로 타이포그래피를 조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따라서 반응형을 고려한 Footer을 디자인하려면, 화면 사이즈 구간별로 Ui의 Min-Maximum 사이즈를 정해주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읽기 편한 문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개발자와 상의해가면서 디테일을 잡아나가는 게 중요하지요.




반응형을 고려한 Footer 만들기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고, 기술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번 글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보잘것없다고 생각되고 의욕이 떨어졌을 때 관점을 바꾸는 것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었어요.


출근이 우울하고, 오늘 내 업무가 지루하고,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는데 언제나 하고 싶은 것만, 자의에 의해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이런 무기력함은 오히려 인정욕구가 많고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 더 크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해봤자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데 지금 하는 일이 나의 커리어에 대체 무슨 도움이 되지?'하고 생각하는 순간 일은 정말 후딱 처리해버려야 할 쓰레기처럼 느껴지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자의식에 가득 자리 잡게 되니까요.


그렇게 꼬질꼬질해진 자의식을 툭툭 털어주는 방법은 결국 상황 속에서 최대한 내 관점을 바꿔서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다른 사람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저는 연료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보고 있어요. 내가 이 연료를 만듦으로써 간접적으로 회사에 좋은 영향을 주고 회사라는 큰 배에 타서 내가 더 멀리 항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즐겁게 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즐기다 보면 욕심이 나고 욕심이 나면 자연스레 성장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즐기세요.

-BTS 슈가


즐기게 되는 순간부터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에서 내가 했기에 남들과는 다른 디테일을 만들자는 욕심이 생기고, 여기에서 디자이너가 가진 크리에이티브 강점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1년에 약 1,920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일하며 보내고 있어요. 이 큰 시간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내가 어떤 인생을 살 지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일을 꾸역꾸역 처리하는 것으로 바라보며 1,920시간을 버티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은 것만큼은 명확해요. 일에 대한 좋은 관념을 바탕으로 그 위에 실무적인 지식을 쌓아 올리고 싶고, 언젠간 제가 살아온 궤적이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좋은 콘텐츠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굉장히 “디자이너스러운” 반응형을 고려한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그것보단 우선 'Footer 같은 걸 내가 왜 해야 돼!'라고 속상해하고 계실 디자이너분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글을 먼저 쓰고 싶었습니다 ^^ (다음글은 정말 본격적인 디자이너를 위한 글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에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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