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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03. 2023

호기심의 방 01. 환상 관람기

2023년 6월 3일 (토)

'쌀롱 드 무지끄 부암'에서 열린 <WUNDERKAMMER: 호기심의 방>이라는 제목의 호기심이 가득 생기는 음악회에 다녀왔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는 공연장, 콘서트홀 만한 곳이 없겠지만서도... 이런 공간 역시 너무나 특별하다. 소문으로 익히 들었던 통창이 가득한 부암동 작은 골목 안 공연 장소인 '쌀롱 드 무지끄'는 웬만하면 자차를 이용하는 다리 부실한 나로서는 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고... 택시를 타고 갔다..히히.. 사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어서 교통편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걷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버스에서 내리는 일'이라나 뭐라나...)



음악학자 박수인과 제레드 레드몬드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는 이번 공연은 해설과 한 시간 남짓의 피아노 독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항상 음악은 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이 그러하다. 다들 클래식을 어찌 듣냐 궁금해한다. 그런데 클래식이야말로 알면 알수록 재밌고 신기하다. 이번 프로그램은 얀 스벨링크, 로베르트 슈만, 존 코릴리아노, CPE 바흐, 스크리아빈 등의 작품을 연주했다. 


다들 슈만을 제외하고는 누군가 싶을 거다. 바흐? 이 바흐는 그 바흐가 아니다. 그 바흐의 아들이다. 뭐 어쨌든... 뻔하지 않은 프로그램들이었다. '환상곡'이라는 타이틀로 모인 이번 프로그램은 작품 하나하나가 굉장히 아름답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얀 스벨링크(1562-1621)의 <반음계적 환상곡>은 '이 시대에 이런 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고 신비로웠다. JS바흐의 작품에 '신비' 한 스푼을 담은 듯한 곡이었는데, 스벨링크는 JS바흐가 태어나기 120년 전쯤 태어난 훨씬 더 옛날 사람이다. 반면 존 코릴리아노(1938-)라는 작곡가는 현존하는 사람으로 5곡으로 이루어진 <환상 연습곡>을 만들었는데, 한 악장 한 악장이 너무 흥미로워서 '이 사람 천잰데?' 싶었다. CPE바흐의 C장조 환상곡은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재밌는 작품이 있다니! 모차르트가 '(CPE)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다'라고 말할만하다. 뭐 음악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음악의 아버지던 할아버지던 간에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임은 분명하다. 물론 그 스타일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뭐, 어쨌든 이렇게 천차만별 시대를 거스르는 음악이 이렇게도 하나로 통일되다니, 기획자와 연주자의 깊은 고심이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제러드 레드몬드는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줄여서, 대실작)에서 종종 연주자로 출연해서 피아노를 엄청 엄청 잘 치는 건 알고 있었는데, 60분 가까운 이런 대규모의 독주 프로그램도 이렇게 잘 진행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냥 피아노는 너무너무 잘 쳐서 이론도 공부하고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하는 그런, 살짝 재수없는 스타일의 사람 같았다. (성격도 좋아보였다. 제길...) 그의 연주는 엄청 섬세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그에게 내 피아노는 못 맡길 거 같았다. 정말 손가락 힘이 어마어마하더라. 피아노를 다 삼켜버릴 거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만의 연주가 돋보였다. 보여주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연주였다. 예전에 내 친구 입시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한 음 한 음 또랑또랑하게 치라고!!!" 제러드 레드몬드는 '또랑또랑'이 아니라 '뚜랑뚜랑'하게 친다! 정말 음정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살짝은 슈만 작품이 안 어울렸다. 슈만의 작품은 이중인격의 다중이처럼 쳐야 하는데.. 그는 모든 작품을 '제러드화' 시켰다. 어쩌면 요즘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임이 분명했다. 해설도 깔끔했다. 정확하고 분명한 느낌의 음악학자 박수인은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을 보여주었는데 결코 지루하고 늘어지지 않았다. 중간중간 관객들과의 교감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이번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지고 기획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음악을 경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혼자 음반을 듣는 것도 좋고, 큰 공연장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밥도 먹고 수다를 떠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공간에서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도 괜찮다. 중간중간 이상한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뭔가 싶었는데 바람 소리, 버스 소리,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거슬렸는데, 조금씩 익숙해졌다. 어두운 관객석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푸르른 하늘과 음악 소리가 함께 들려서 좋았고, 버스 소리와 함께 음악이 어우러져서 좋았다. 확실한 것은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분명 음반이나 유튜브로 들으면 그 속의 연주자의 기량이 훠얼씬! 훌륭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기에 오는 편안함이 있고, 함께 하기에 느끼는 따뜻함이 있다. 오랜만에 편안하고 따뜻하고 유쾌한 연주였다. 부디 집 밖을 나가서 어디든 가시길. 음악(=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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