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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23. 2023

랜들 구스비 바이올린 리사이틀 관람기

2023년 6월 22일 (목) 롯데콘서트홀

랜들 구스비! 96년생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의 리사이틀이라니 결코 놓칠 수 없는 공연이었다. 사실 나는 그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와 관련된 짧은 영문 인터뷰를 2년 전쯤엔가 번역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주 가끔 번역 작업을 하는데 그럴 때에는 그 작곡가 혹은 그 연주자의 음악을 계속 틀어 놓은 채로 작업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 괜스레 그와 직접 인터뷰한 것 같은, 그의 생각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잊지 못한 것은 그가 너무나 멋지고 영리한 연주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들려줬었기 때문에, 그의 첫 내한 소식은 정말 반가웠다. 이런 멋진 분들을 초청하는 기획자들 정말 감사하다!


그의 리사이틀은 피아노 연주자 주 왕이라는 중국출신 피아니스트와 함께 했다. 그의 이름을 꼭 밝혀야 한다. 이런 음악회에서 특히 이런 프로그램은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함께 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없다. 그리고 2년 전 내가 그렇게 듣고 또 들었던 영상에서도 주 왕 피아니스트와 함께였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아주 간단하게 1부에는 3개의 작품, 2부에는 1개의 작품만이 연주되었다. 1부에는 프랑스 작곡가인 릴리 불랑제와 라벨, 윌리엄 그랜트 스틸의 작품이, 2부에는 그 유명한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였다. 릴리 불랑제와 라벨의 음악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들으면서, 프랑스적인 유연하고 낭만적인 감성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청 테크닉적인 느낌의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감성적으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작품들이 분명했다. 라벨이 이 곡을 쓰던 당시는 프랑스에서 재즈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여서, 그는 이 작품에도 재즈적인 느낌을 듬뿍 담아두었다. 라벨만의 재즈를 우아하고 멋지게 랜들은 표현하고 있었다. 2부에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중의 명작이다. 오늘 들은 크로이처 소나타가 내 인생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크로이처였다. 너무나 명료하면서도 힘 있고 역동적이면서도 학구적이었다. 특히 피아노 연주가 대박! 특히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결코 바이올린만의 연주라고 볼 수가 없다. 피아노 부분이 정말 너무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도 바이올린 친구 반주를 덥석 맡았다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부분을 아주 달달달 외워서 겨우 반주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정말 내 실기 시험 곡보다도 열심히 한 거 같다. 결론, 진짜 어려운 작품을 랜들 구스비와 주 왕은 정말 훌륭하게! 연주해 냈다. 


공연을 보고 와서 내내 랜들의 바이올린 음악을 들으면서, 그 만의 또렷한 음색과 정확함에 다시 한번 감탄 중이다. 오랜만의 장거리 나들이가 아주 즐거웠드아!


추신 1) 1부의 마지막 곡인 스틸의 작품은 객석에서 듣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아이스 연유 라테를 먹었는데, 오랜만의 연유 섭취에 장이 놀랬나 보다. 라벨부터 뱃속에서 장이 걸쭉하고 힘 있게 "야! 야!! 야!!!" 하고 소리 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옆에 있던 친구도 들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라벨 2악장은 더 꿈속 같았으며, 엄청난 테크닉의 빠른 3악장은 내 뱃속 같았다. 조심히 나는 티켓과 핸드폰을 쥐고, 이 곡이 끝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에서 격렬한 전투를 하고 있는데, 스틸의 작품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호라! 이렇게 잘한다고?? 내 티켓도 꽤 좋은 자리여서 랜들이 엄청 잘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자리는 마치 막이 하나 있는 것처럼 랜들의 연주가 생각보다는 명료하게 들리지 않았다. 롯데콘서트홀이 엄청 멋진 공연장임은 분명한데, 좌석에 따라 음향이 다르게 들리는 매우 신기한 재주도 있다. 하지만, 이곳의 음향 맛집은 화장실이 아니던가? 무대 위 마이크로 바로 수음된 깨끗하고 선명한 랜들과 주 왕의 음악이 너무나 잘 들렸다. 덕분에 나의 전투는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결과를 전하며...


추신 2) 2부에도 복병이 있었는데, 앞에 앉은 커플이 정말 열심히 졸았던 것이었다. 차라리 앞뒤로 끄덕끄덕 했으면 좋았을 것을! 좌우로 도리도리 하는 바람에, 나와 내 친구는 덩달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공연을 봐야 했다. 물론 클래식 들으면서 졸 수 있다. 나도 정말 잘 잔다. 제발 부탁인데 끄덕끄덕을 부탁드린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다른 공연과 달리 한 자리에서만 연주를 하기 때문에, 앞사람이 너무 머리를 흔들어 대면 바로 뒷사람은 도대체 공연을 제정신에 관람할 수가 없다. 그 커플이 열심히 사진 찍어 대기 전에, 한 번씩만이라도 이 음악들을 들어보고 왔었으면 이 멋진, 내가 수십 년 만에 손가락 셋 중 하나에 꼽을 정도로 훌륭하게 연주한 이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면서 졸 수는 없었을 텐데...라며 1부에 이어 또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클래식 공연 가기 전에는 한 번씩만 프로그램 찾아보기끄덕끄덕 졸기를 꼭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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